수박겉핥기 역사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구절을 참고하기로 하자.천지는 하느님이 창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태초는 누가 창조했을까? 하느님은 누가 창조했을까? 창조는 누가 창조했을까? 이런 의문을 품어봄직 하다. 천지는 공간이다. 태초는 시간이다. 공간은 하느님이 창조하고, 시간은 누가 창조했을까? 천지는 대상이다. 하느님은 주체다. 대상은 하느님이 창조했다면 주체는 누가 창조했을까? ◎ 주체 + 시간 둘을 창조가 엮어서 서로 대칭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창조는 누가 창조했을까? 대칭은 상호작용에서 나왔다. 주체의 시간과 대상의 공간이 상호작용하는 구조가 창조를 창조한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구조다. 창조는 구조가 창조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구조의 창조에 의해 주체와 대상이 하나로 엮이는 일의성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일의성에 의해 시간은 공간의 자궁임을 알 수 있다. 시간에서 공간이 나왔다. 그것은 에너지다. 구조에서 창조가 나왔다. 그것은 에너지의 상호작용이다. 일의성에서 하느님이 나왔다. 그것은 완전성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상호작용의 완전성에 의한 일의성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 대칭되는 주체와 대상, 시간과 공간, 구조와 창조의 상호작용에 의해 우주는 전개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프레임이다. 어떤 것이든 이 구조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역사 역시 일의성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모든 역사는 이 안에 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역사의 일의성을 알고, 역사의 완전성을 알고, 구조를 알고 상호작용을 안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쏘아진 화살과 같이 시작에서 끝까지 한 방향으로 일제히 달려간다는 것이 일의성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70억 인류를 엮어 거대한 하나의 지적 네트워크를 설계해 가는 과정이다. 역사는 영원한 순환이 아니며, 깊은 어둠 속에서의 밑도 끝도 없는 질주가 아니며, 맥빠진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라 정해진 궤도를 향해 맹렬한 달음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기록한다는 것이 완전성이다. 역사는 평가가 본질이고 사실은 평가의 근거를 대는 것에 불과하다. 평가할 가치가 있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 역사다. 한편으로 역사는 상호작용의 원리를 따라 아와 피아와의 투쟁의 기록이다. 아는 진리요 피아는 무지다. 아는 의사결정단위 의미에서의 민족이요 피아는 침략자다. 아는 진보요 피아는 보수다. 아는 문명이요 피아는 야만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진리가 무지를 극복해온 기록이며, 문명이 야만을 극복해온 기록이며, 민주주의가 독재를 극복해온 기록이며, 평화가 전쟁을 극복해온 기록이며, 진보가 보수를 이겨온 기록이다. 그것만이 살아서 호흡하는 역사다. 나머지는 역사의 서식지 확보를 위한 배후지 역할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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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
There is an answer!
Вот что такое История
в компактном изложении!
저는 시간은 구조론에서 보면 입자인것 처럼 보입니다.
공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시간이라는 에너지의 흐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기전에 태초라는 단어를 먼저 넣은 것은
질이라는 공간이 자발적인 대칭깨짐으로 에너지가 전개되어 시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면 공간이 시간의 자궁이 되는 것 같은데요.
시간은 공간의 연출에 에너지를 태우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