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가 착한 사람이긴 한데
교회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소.
예수가 결혼도 하지 않은 즐거운 사람이었으며
기득권에 대한 도전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게 종교권력의 한계.
카톨릭과 개신교가 예수의 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
링컨의 당 공화당이 링컨을 부정하고 흑인차별에 앞장.
노회찬의 당 정의당이 당명 바꾸고 노회찬 죽이기에 열심.
세상이 원래 그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아쇠는 내가 쥐었으니 낙담하지 말자.
진리가 총이고 총을 쥔 사람은 총의 논리를 따라가면 됩니다.
손에 든 무기가 없으니 논리를 끌어대며 비참해지는 거.
예수가 동성애를 비판하는 말은 없는데 비해(해석의 영역)
예수가 노예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은 매우 많지만
예수가 노예제 찬성론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이라는 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갖고 남자를 사랑하므로 이성애와 같습니다.
게이와 게이의 사랑.. 게이성애자.. 남자와 여자로 역할을 바꾸는 역할극.
게이성애는 남자와 남자의 동성애가 아님.
게이는 게이이지 남자가 아니므로.
게이가 여자의 마음(바텀)으로 이성애자 남자를 사랑.. 이성애의 변종
게이가 남자의 마음(탑)으로 이성애자 남자를 여자로 보고 사랑..
동성강간과 같은 이성애의 변종.
예수가 남색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여러가지 부도덕을 열거하는 과정에 끼어든 것이지
특별히 동성애를 비난한 적은 없음. 왜냐하면 비난하는 논리가 없기 때문.
받쳐주는 논리가 있어야 하나의 독립적인 주장으로 성립하는 거.
이는 예수를 노예제 찬성론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
왜 노예제는 유지되어야 하는가를 예수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남자 발을 씻겨주는등 동성애로 오해되는 행동은 다수. 대책없이 사랑하라는 말도 얄궂은 표현.
예수는 동성애를 비판한게 아니라 사회의 부도덕을 비판한 것이며
남색을 부도덕으로 간주하는 당시의 관습을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특별히 동성애를 연구하여 논리로 뒷받침되는 의견을 낸 적은 없음.
예수가 비판한 남색은 많은 경우 동성강간이므로 동성애가 아님. 교도소의 동성강간이 동성애냐?
일본 전국시대 무장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한 사람 빼고 전부 남색을 했는데 그것도 동성애냐?
목동들이 양하고 하는 수간을 예수가 좋게 보겠는가?
누가 예수에게 목동들은 광야에 살긱 때문에 여자가 없는데
양과 해도 되나요 하고 물으면 예수가 하라고 하겠냐?
종교의 목적은 극기복례에 있으므로 당연히
집단에 불화를 가져오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라고 합니다.
동성애 행동은 집단에 불화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경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집단의 불화와 평화라는 본질에 천착해야지 남을 괴롭힐 건수를 조달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현대사회는 과거와 달리 개인의 영역이 커져서 동성애가 집단을 파괴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옛날에는 작은 방에 식구 열명이 올챙이처럼 모여살았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빠구리 뜨면 난리가 나는 거.
동성애자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남에게 피해 안주고 하는건 상관없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대놓고 이상한 짓을 하면 당연히 제지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본질은 집단의 권력창출이며 현대사회라면 공동체와 시민단체와 정당이 하는 일입니다.
과거에 권력은 칼에서 나왔는데 예수는 믿음에서 권력을 도출한 것입니다.
예수가 만든 권력은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방어적 권력인데
동성애를 탄압하는 개독과 카톨릭의 범죄는 약자를 죽이는 공격적 권력인 점에서 그들은 명백히 예수의 적입니다.
한덕수를 정치판에 기웃거리게 하는 설문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