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기본원리는 마이너스다. 플러스는 없다. 만약 플러스로 보인다면 보이지 않는 상부구조가 숨어있다는 의미다. 그 경우에는 양파껍질을 한겹 더 벗겨야 한다. 숨은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이중구조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고, 상부구조의 존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하부구조만 바라보고 판단한 거다. 이 경우 보나마나 오판으로 귀결된다.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한다. 댐의 수문을 제거(마이너스)하면 댐 아래로 물이 쏟아진다. 하류의 물이 증가(플러스)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플러스 ‘될’ 뿐, 플러스 ‘하지’ 않았다는 거다. 즉 하느냐 되느냐다. 능동이냐 수동이냐다.
◎ 마이너스-한다.
식물이 자란다. 플러스 된 것이다. 플러스 한 것이 아니다. 태양빛이 마이너스 한 것이며, 그 결과로 식물이 플러스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플러스는 ‘되다’가 가능할 뿐 ‘하다’가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사건의 원인측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플러스는 항상 결과론이다. 원인론이 될 수 없다. 플러스는 항상 종속변수다. 주인이 아니라 종이다. 만약 플러스가 있다면 항상 위에 뭔가 있다. 그 위에 있는 뭔가를 건드려야 통제가 가능하다. 왜인가? 왜 세상은 마이너스인가? 에너지 때문이다. 에너지가 있어야 세상이 작동하는데 에너지를 공급받으려면 뭔가 효율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줄이는 것이다. 구조론은 역할을 겹치게 하는 방법으로 포지션을 줄여서 효율을 생산한다. 그 방법은 마이너스다. 다섯 식구가 있는데 한 명이 떠나면 1/5가 남는다. 그 잉여로 세상을 돌린다. 마이너스를 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채워져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다. 그것은 복제된다. 복제는 보이지 않는 상부구조에서의 만남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눈앞의 보이는 무대에서의 순수한 플러스는 전혀 없다. 내부에서 자가발전으로 플러스 되어 얻어지는 것은 절대로 없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바깥의 태양이 보내는 빛에 지배된다. 화석연료를 사용해도 과거에 저축해 둔 태양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원자력 같은 경우는 특수하지만 이 또한 넓게 보면 태양이 가진 자원이다. 지구 역시 태양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마이너스인 것이다. ◎ 플러스 되려면 반드시 이중구조여야 하고, 그 이중구조 중의 상부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깨달음에 의해서만 인식되며, 하부구조의 플러스는 상부구조의 마이너스에 의한 대량복제로 일어난다. 결국 인과율이다. 우리가 세상을 장악하고 통제하려면 사건의 원인측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 상대해야 할 원인은 항상 상부구조에 있고, 즉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계의 바깥에서 은밀히 틈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쓸만한 것은 거의 전부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쓸만한 법률, 제도, 자원, 기술, 유행들이 대개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물론 내부에서 낳아낸 것도 있지만 따져보면 그것도 마이너스다. 내부에서 자가발전하여 플러스 된다는 것은 실은 외국(상부구조)>한국(하부구조)로 전개하는 마이너스 원리가, 한국 안에서 한 차례 더 복제되어 전국(상부구조)>지방(하부구조)로 전개한 것이다. 외국에서 마이너스 된 것이 한국에 플러스 되거나, 중앙에서 마이너스 된 것이 지방에 플러스 되는 식으로 항상 마이너스에 의해 최초 격발이 된다. 플러스 효과는 항상 2차적인 결과론이다. 결과측은 개입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총을 쏘는 원인측을 제지해야 한다. 이미 총알이 날아오는데 그걸 피하려고 해봤자다. 원인을 내버려둔 채로 결과만의 통제는 실패할 뿐이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에너지 낭비다. 비효율이다. 상부구조에서 1로 통제할 것을 하부구조에서는 5로 통제해야 한다. 결과측은 무조건 5배 비용이 지불되므로 어리석다. 플러스 세계관에 빠지면 모든 것이 비효율로 된다. 지름길 놔두고 둘러 가기 때문이다. 경작면적을 늘리면 되는데 정성들여 가꾸기만 하는 씩이다. 물론 열심히 가꾸면 소출이 늘지만 경작면적 늘리기가 더 효율적이다.
◎ 경작면적을 늘린다. - 에너지 투입 대비 효율이 높다.
물론 경작면적을 늘리기는 어렵다. 상부구조로 옮겨가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작면적을 늘리려면 전쟁을 해서 남의 영토를 뺏거나, 아니면 신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현대문명의 중심권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문명이 처음 어떻게 발아하는지 그 탄생의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리석은 플러스 세계관에 빠져 있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외국인이 보고 이건 농업이 아니라 원예가 아닌가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다만 침략하여 묵묵히 인디언 땅을 뺏는다. 물론 플러스는 있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증가(플러스)되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복제되는 것이다. 그 복제는 상부구조에서의 어떤 만남에 의해 성립되며 그 과정은 역시 마이너스(방해자의 제거) 형태로 일어난다. 우주가 처음 탄생했을 때 오늘날 지구와 같은 생명의 진화, 문명의 발달은 확률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140억년에 걸린 것은 방해자 때문이다. 그 잠긴 빗장을 제거(마이너스)할 때 마다 진보가 일어났다. 열심히 하자. 바보같은 생각이다. 막힌 데를 뚫자. 이게 맞는 생각이다. 물론 열심히 해야 하지만 막힌 데를 뚫어 성공모델이 제시되고, 동기부여가 되면 누가 안 시켜도 이미 열심히 하고 있다. 세상 일이 안 되는 것은 다 조(組)가 안 맞아서 안 되는 것이다. 포지션의 조합에 의해 가능한 것이며 그 조합은 방해자의 제거로 가능하다. 성차별, 학력차별, 신분차별, 지역주의, 편견과 고정관념 등 온갖 방해자들 말이다. 마이너스를 마이너스 하면 플러스가 된다. 방해자(마이너스)를 제거(마이너스)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발견은 마이너스고 발명은 플러스다. 발견은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는 것이며 덮혀 있는 거적을 벗겨내는 것이다. 마이너스 하는 것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동전의 양면이어서 플러스가 마이너스고 마이너스가 플러스임을 알 수 있다. 이쪽이 빈다면 저쪽이 채워지니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아닌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로 보는 안목을 얻으면 거기에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으며 상부구조에 비고 하부구조에 채워짐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엔트로피의 법칙이 적용되어 무질서도의 증가 곧 질서도의 감소(마이너스)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무엇이 마이너스인가? 포지션의 겹침이 마이너스다. 뭔가 발전한다는 것은 겹쳐져 있는 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대칭을 시켜보면 드러난다. 축구시합을 한다고 치자. 저쪽은 11명인데 이쪽은 1명이다. 혼자서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 다 해야 한다. 역할이 겹친다. 시합을 하다보면 지나가던 아저씨 끼어든다. 이때 어느 편에 끼어들겠는가? 포지션의 겹침은 자동으로 해제된다. 즉 하다보면 외부인이 끼어들어 11 대 11로 조가 맞아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포지션을 잃어먹은 것이 마이너스다. 여기서 선수가 늘었지만 그 증가는 저절로 된 것이다. 외부에서 걍 들어온 것이다.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역할을 늘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진보는 이 원리에 의해 일어난다. 당신이 만약 한꺼번에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당신의 역할을 뺏을 것이다. 그것이 발전이다. 역할을 계속 뺏기다 보면 CEO가 되어 있다. 아무 역할이 없는 남자가 길을 가다가 여자를 만나면 갑자기 역할이 생기는데 남편역할, 애인역할, 아버지 역할, 가장역할로 역할이 늘어난다. 그리고 자녀라는 것이 생겨나서 당신의 역할들을 하나씩 뺏어간다.
증가하는 것은 포지션 뿐이며 포지션은 만남에 의해 그냥 복제된다. 인생은 만남에 의해 포지션을 얻고 다시 조금씩 그것을 잃어먹는 마이너스의 과정이다. 그 포지션의 획득은 상부구조에서의 마이너스에 의해 일어난다. 당신이 아내를 얻었다면 상부구조의 장인은 딸을 잃은 것이다.
마이너스를 실천하라. 그러면 저절로 플러스가 될 것이다. 플러스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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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소.
빈자리는 신이 채워주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