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문제다. 숨은 전제를 파악하기다. 누가 잘못했지?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은 원인제공자가 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하고 관객은 박수치고 다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보자는 유책주의 사고다. 그러다 덧난다. 누구 잘못으로 몰아가고 싶지? 이게 맞는 거다. 보나마나 둘 다 잘못한 일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다보면 잘하게도 되고 잘못하게도 된다. 노동자가 노력하여 불량을 줄이는게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는가 아니면 이재용이가 경영을 잘하는게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는가? 둘 다 분발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수고 이재용은 한 명이다. 한 명을 설득하는 게 쉽냐, 백만 명을 설득하는 게 쉽냐? 노동자는 원래 말 안 듣는다. 말 들을 귀를 가졌으면 판검사 아니면 의사 하지 뭣하러 노동자 하냐? 그러므로 이재용 한 명을 갈구는 게 맞다. 그게 더 효율적이다. 허웅을 치는 게 대한민국에 이득이냐, 여친을 치는 게 대한민국에 이득이냐 이런 전제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제를 숨긴다. 그러므로 말은 통하지 않는다. 왜?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없다. 언론을 타면 망한 거다. 대화한다는 것은 제 3자를 개입시킨다는 것이고 문제를 확대한다는 것이고 일을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너죽고 나죽기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둘 다 죽는다. 그래야 전쟁이다. 허웅을 치는 사람은 한 명이니까 만만하다고 친다. 여친을 치는 사람은 그런 무개념이 대한민국에 백만 명 있다고 보고 한 명을 때려서 백만 명에게 교훈을 주니 이득이 백만 배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대의 흐름이 다르마가 된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 둘 다에게 해당된다. 답정너, 누구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싶은가? 언어가 잘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전제를 숨긴다. 숨긴 것을 들추지 못한다. 메타인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은 자기 생각이 아니다. 집단의 수요를 자기 생각인 것처럼 말한다. 집단이 갈팡질팡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