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앞의 잣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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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928 vote 0 2008.12.29 (12:59:57)

 

신의 종교


하느님은 무슨 종교를 믿을까?

하느님이 교회를 다니거나 절을 찾지는 않을 거다.


하느님이 주기도문을 암송한다거나

관셈보살 하고 염불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이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은 무엇을 믿어야 할까?


식구들은 아빠를 믿는다.

그렇다면 아빠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하느님이 믿는 것

나는 그 종교를 믿는다.




“차나 한 잔 들게.”


신부가 새로 시집을 왔는데 시집온 첫날 아침부터..  “어라! 여기가 어디지? 이 남자는 또 누구야?” 이러고 어리둥절 해 있다면 참으로 딱한 사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태연하기만 하다. 자신이 시집을 왔다는 사실을 감지하지도 못한다. 그 집이 낯설은 집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이 남자는 누구야’ 하고 질문하지도 않는다.


대다수는 자기 뇌 속에 심어진 칩이 명령하는대로.. 익숙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 명령이 내려온다. “나는 새댁이야. 이 집은 신혼집이지. 이 남자는 내 신랑이야.” 그들은 눈꼽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고 시집살이에 잘도 적응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차나 한 잔 들게.”


이 말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원래 단어에는 뜻이 없다. 뜻에 뜻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를 백년 헤아려도 깨닫지 못한다. 끝내 자신이 이 별의 방문자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단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 자체가 자기 머리 속에 심어진 칩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의지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조주 앞에서 조주를 만나지 못한다.



“당신은 지금 이 곳에 있다.”






- 목 차 -



들어가기

두 번 생각하면 보인다


날개 잃은 새를 위하여

아담과 이브

인간의 값어치

왜 포기하는가?

생활의 발견

서커스단의 원숭이

신의 몫

바둑의 첫 한 점

굽은 철사를 펴는 방법

님의 침묵

기차는 7시에 떠난다는데

불쌍한 아기사슴

아이러니

왜 사는가?

오늘 하루를 살기

까뮈의 이방인

수영을 못하는 아이

아저씨 맥주 한잔 사주세요

농부의 사랑

미스터 빈과 레옹

자연의 분위기에 감응하기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

인생은 허무하다

빈센트 반 고흐

믿음과 사랑

행복의 감수성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1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2

사랑의 매

내리사랑과 치사랑

사랑한다는 것

한국인의 정(情)

선인장의 꽃

루쉰의 아큐정전(阿Q正傳)

미녀

바둑의 정석

이보게 그게 아니야

충고

질투

행복의 조건

화두(話頭)

심우(尋牛)

금강경

초등학생의 일기

학교 가기 싫은 날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타이타닉호의 침몰

원효와 의상

어린이는 순수하다

스승과 제자

어떤 대화

선문답

뜰 앞의 잣나무

덕산의 방, 임제의 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바둑의 이창호

말법시대

인연 혹은 업보

스님과 할머니

명사수

과학

웃음과 울음

인간의 얼굴을 한 예수

신의 뜻

황희 정승

궤변

법률

명가(名家)

충실한 개

아르키메데스의 미소

정신과 의사

신의 문제

뉴튼의 운동법칙

매운 맛은 없다

부정적사고의 힘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

신비한 암컷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는

언어도단(言語道斷)

산초판사의 법

불완전성의 정리

1999년 한 해의 극장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귀신은 없다

영구기관

참된 목수

추사와 석봉

화엄사 대웅보전 현판

칼릴 지브란의 우화

요지경 세상

빛과 어둠

명품족들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다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기

큰바위 얼굴

문명의 기획

스승

콜롬부스와 신대륙

금과 은

미개인

어떤 논술문제

승용차에 갇힌 어린이

고독한 우주비행사

소꿉친구

나사렛 사람 예수

정신차렷

불량배의 양심

명상하기

말 걸기

경주박물관에서

극단의 파산

첫 단추를 끼우는 문제

아이는 혼자 울지 않는다

키 큰 예술가

초면의 그대에게

침묵연습

사람을 구합니다

군자와 소인

한 잔의 포도주

참새의 지저귐

언덕 위의 현자

깨달음


이어가기

첫 키스를 추억함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들어가기


내가 좋아하는 책 세 권을 말할 수 있겠다. 이상의 ‘날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것이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첫째 두껍지 않다. 둘째 어느 페이지부터 넘겨보더라도 상관이 없다. 셋째 내게 와락 달려들어 나를 두들겨 팬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산책을 나갈 때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갈 수 있는 작은 책, 방바닥에 뒹굴뒹굴 하면서도 볼 수 있는 편안한 책, 내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만만하고 착한 책, 그런 책이 필요하다.


그러한 편안함을 주는 비결은? 문체의 파격이다. 이상의 ‘날개’도 그렇고 생텍쥐뻬리의 ‘어린 왕자’도 그렇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그러하다. 산문이면서도 산문을 뛰어넘은 거기에 특별한 호흡이 있다.


무엇일까? 그것은 깨달음의 어떤 지평이다. 이들 세 권의 책은 공통적으로 어떤 깨달음의 지평을 열어제치는 통쾌한 맛을 가지고 있다. 잘 익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신선한 청량감이 있다.


아무튼 나도 이러한 선례를 본받아 그러한 깨달음의 골수만을 모아 이렇듯 작고 가볍고 만만하고 착한 책을 한 번 엮어보기로 하였다.





두 번 생각하면 보인다


시(詩)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자유시나 산문시 역시 보이지 않게 리듬과 운율과 호흡을 가지고 있다.


이 짤막한 글들은 ‘이중의 반전’이라는 특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반전이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반전이 있다.


두 번 생각하면 보인다. 깨달음의 지평을 열어제치는 데서 오는 짜릿한 쾌감을 독자 여러분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명상의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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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잃은 새를 위하여


명상은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한다. 강한 사람에게 명상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강한데 더 강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작은 일에 상처받고 놀라하고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놀라지 말라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대는 강한 사람이다. 그대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그대처럼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뭐 그 따위 작은 일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방황하느냐고 타박하곤 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삶들이 있다는 사실을.



※※※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나약한 자식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식을 꾸짖고 상처를 주고 단련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에드셀 포드는 아버지의 단련을 받아 강해지기는 커녕 더 약해져서 아버지보다 일찍 죽어버렸다고 한다. 회사는 한때 불한당 같은 ‘해리 베니트’에게 넘어갈 뻔 하였다.


강한 쇠를 단련시키면 더욱 강해진다. 약한 쇠를 단련시키면 그만 부러지고 만다. 약한 사람들이 있다. 식물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있다.


명상은 그들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강해질 수 있다. 이미 충분히 강하다고 자랑하는 그대들에게는 명상을 권하지는 않겠다.



※※※



석가는 인생은 고(苦)라고 위협하였고 예수는 천국과 지옥의 심판을 두고 위협했지만 나는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 상처받은 자들, 나약한 이들은 인생이 고(苦)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고(苦)이며 지옥을 들어 위협하지 않아도 이미 삶이 지옥이다.


고교생의 70프로가 한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순간에도 많은 나약한 영혼들이 죽음 앞에 선다.


그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능력이나 성취나 도전이 아니라 인격의 존엄이다. 엄한 선배의 가르침보다는 신의 미소가 필요하다.


사소한 일에 선뜻 목숨을 걸어버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약한 이들, 쉽게 좌절하고 쉽게 꺾이는 그들에게 지식의 힘보다는 영혼의 힘이 필요하다. 내일을 대비한 유능함보다는 오늘 하루의 삶이 절실하다.



※※※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모든 방향으로의 출구가 봉쇄된


어느 쪽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날개 잃은 어린 새들에게는 초월이 필요하다.


하루 하루를 칼날 같은 죽음 앞에 서는

특별한 영혼들을 위하여 명상이 필요하다.


그대는 명상이 어떤 이익을 주는가 하고 묻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이 필요하다.


삶이 주는 것은 죽음밖에 없지만

그것이 삶이기에 사는 것.


깨달음이 주는 것은 초극밖에 없지만

그로 하여 순수할 수 있기에 그 길을 가는 것.


패배함으로써 이기고자 하는 이들.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돌려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어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마지못해 다른 쪽 뺨도 돌려대는 이들.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몸까지 다 내주면 다 잡아먹고 말지.


끝끝내 다 잡아먹고 말지!

알아! 알지만 


나는 더 순수해질 수 있고 투명해질 수 있지.

나는 그림자가 되어 버리지.


나는 현실 공간에서 사라져 버리지.

나는 꿈 속에서 꿈이 되어 버리지.


떡 하나 주고, 떡광주리 통째로 주고

팔 하나 주고, 다리 마저 주고


온몸을 다 주고 투명해졌을 때

초극을 만나게 되지.


현실은 호랑이지.


인생은 투명해져 가는 과정이지.

신과 친구가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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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는 서로 사랑했다고 한다.


사랑하지 않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늘 아래  땅 위에 단 둘 뿐인데.



생각하라! 지금 이 우주 안에 그대와 나 말고 또 누가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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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값어치


한 소년이 전차에 치어 죽었다. 성난 시민들이 전차회사로 몰려든다. 사장은 외국으로 도망쳤고 시장은 즉시 파면되었으며 전차의 운행은 무려 6개월간이나 중단되었다.


100년 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때만 해도 인간의 목숨은 제법 값어치 있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매년 1만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에덴동산이라면 어떨까? 아담과 이브 단 둘 뿐이다. 그때 한 인간의 목숨이 가지는 값어치는 전 우주의 값어치와 맞먹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라! 지금이라서 그때와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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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포기하는가?


16년 전 백화점에서 비누 한 장 훔친 고객이 용서를 비는 편지를 보내온다. 백화점은 동봉한 1만 5천원을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는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왜 포기하십니까?’라는 책을 읽고 문득 생각이 나서 늦게라도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용기 있는 일이다. 



저지른 악(惡)은 용서될 수 있지만 포기한 선(善)은 용서되지 않는다.


그대가 한번 포기할 때마다 그대와 세상을 이어주는 촉수 하나가 잘려나간다. 그렇게 그대의 영토는 조금씩 좁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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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국민 행복지수의 비교가 있었다. 방글라데시가 세계 1위로 보도되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역설이라니.


그러나 과연 그들이 행복할까?


프랑스는 부유한 나라이다. 1998년 중 자살자 수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불행하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과연 그들이 방글라데시 사람들보다 더 불행할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살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문명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일까?


부유할수록 자살은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일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은 임어당의 수필집 ‘생활의 발견’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한다. 왜 생활을 발견하라는 것일까?


방글라데시에서 삶은 생존이다. 그들은 행복하다. 생존하기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프랑스에서 삶은 생활이다. 그들은 불행하다. 생활하기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


문명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생존에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실패의 연속이다. 우리가 생존에 성공하고 있듯이 생활에 있어서도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한 돼지보다는 고뇌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행복 보다는 프랑스에서의 불행이 낫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생존하기의 행복보다는 생활하기의 행복이 더 절박한 가치가 된다.

그렇다면 먼저 생활의 존재 그 자체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 생활을 발견하고 있는가? 그 비참까지도 파악하기에 성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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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단의 원숭이


조련사는 바나나를 테이블 아래 숨겨둔다. 서커스단의 원숭이는 영악하다. 조련사 몰래 바나나를 훔쳐내는데 성공한다.


원숭이는 조련사와 대결한다. 원숭이가 이겼다. 자못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과연 원숭이의 승리일까? 천만에! 그것은 승리한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불행했던 소크라테스는 돼지의 행복을 질투하지 않았다.


악당이 천사보다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비극은 불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인간의 비참에 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성공이라는 바나나를 훔쳐내기에 성공하고 신 앞에서 의기양양한 그대여. 신과 친구가 되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그대 비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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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몫


착한 사람에게 반드시 성공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몫을 나누어 가질 때 나와 가까운 친구의 몫은 맨 나중에 셈하는 것과 같다.


농부는 그 가을에 추수한 과실들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을 자신과 그 가족의 몫으로 하고 가장 좋은 것을 손님의 몫으로 한다고 한다.



결국은 모두가 죽는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패 뿐이다. 최후에 성공하는 것은 그 무대의 연출자인 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과 친구가 되는 수 뿐이다. 오직 신의 성공을 곧 나의 성공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신에게는 실패가 없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에게는 실패란 없다.


신은 친구의 몫을 맨 나중에 계산한다. 신과 친구가 된 그 자체로서 이미 보상이 충분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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