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론
read 9908 vote 0 2003.12.11 (14:14:54)

철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외(疏外)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통(疏通)하고자 한다. 『어떤 방법으로 소외(疏外)를 극복하고 타자와 소통(疏通)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이것이 철학의 본질문제이다.

배가 고프다.
고로 먹는다.

왜 사는가?
삶이 고프기 때문이다.

왜 철학하는가?
실존이 고프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망하는 이유는 그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 타자와의 소통이 결핍되어 있다. 고로 인간은 소통하고자 한다.

어떤 방법으로 외부와의 단절과 소외를 극복하고 널리 세상과의 소통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전부이다. 그 밖에 철학할 대상은 남아있지도 않다.

인간의 굴레, 인간의 조건
왜 먹는가? 혹자는 맛이 있기 때문에 먹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틀렸다.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인간은 때로 맛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

맛을 논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이미 먹기로 결정한 다음에 먹을 것을 고르는 행위이다. 그것은 선택이다. 그러나 본질을 두고 말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삶은 선택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죽음과 삶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다.

왜 먹는가? 먹기를 거부한 인간의 조상은 모두 죽었다. 그들은 자신의 유전인자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했다. 먹기를 마다하지 않은 인간의 유전인자만이 살아남았다. 고로 먹는다.

왜 사는가? 살기를 거부한 인간의 조상은 모두 죽었다. 그들은 자신의 유전인자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했다. 삶을 받아들인 인간의 유전인자만이 살아남았다. 고로 사는 것이다.

왜 사랑하는가? 사랑을 거부한 인간의 조상은 모두 죽었다. 사랑을 받아들인 인간의 후손들만이 살아남았다. 그로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숙명이다.

애초에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이며 누구도 벗어던지지 못하는 『인간의 굴레』이다.

『위하여』와 『의하여』
혹자는 말한다. 성공하기 위하여, 출세하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모두 거짓이다. 『위하여』라고 말해지는 모두는 거짓이다. 진실로 말한다면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이다.

 『위하여』라고 말해지는 그것들은 모두 삶의 영역 안에서 삶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삶이 그것들을 선택하였지 그것들을 위하여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왜 먹는가? 그대는 맛이 있기 때문에 먹는다고 대답하겠지만, 그대가 맛을 느끼고 있을 때 그대는 이미 먹고 있었다. 가짜다.

그대는 『~를 위하여』사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것을 위하여서도 아니다. 그대가 살아가기 때문에 『~를 위하게 되는』것이다.  

왜 먹는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왜 사는가? 삶이 고프기 때문이다. 왜 사랑하는가? 사랑이 고프기 때문이다. 왜 도전하는가? 성공이 고프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결코 인간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인간의 조건이다. 누구도 벗어던질 수 없는 인간의 굴레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거기에 매여 있었다. 무엇인가? 소통이다. 왜 인간은 소통하고자 하는가? 애초에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 『인간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여기서의 사회는 인간이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으로서의 사회이다. 고로 인간은 소통하는 동물이다.

예수는 사랑하라고 말했다. 사랑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 하나이다. 고로 인간은 사랑하는 동물이다.

공자는 인(仁)하라고 했다. 인(仁)은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방법들 중 하나이다. 석가는 자비(慈悲)하라고 했다. 자비는 소통을 위한 좋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말했고 마호멧은 평화를 말했다. 도덕과 평화는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필요한 방법들 중 하나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와 니체로부터 시작되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존재는 소통의 주체로서의 존재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니체가 신을 죽여가면서 살리려고 한 것은 자유로운 소통의 주체로서의 인간이다.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인간 개개인이 주체적인 소통의 1단위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소통에 있어 인간은 신의 버스에 탑승하여 정해진 노선으로 운반되는 수동적인 승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오너드라이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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