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론

동의하기와 동의하지 않기
철학은 소통을 목적으로 타인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동의의 장의 중심』을 쟁탈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므로 철학함에 있어서 『동의하기』는 동시에 『동의하지 않기』이기도 하다. 동의하기에 의해 권력은 창출되고, 동의하지 않기에 의해 권력은 쟁탈된다.   

철학은 곧 도(道)다. 도(道)는 곧 길이다. 길은 공동체 안에서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소통을 위한 길의 중심에 서므로서 타인의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권력이다.

절대철학은 있다. 절대철학은 없다.
만약 어떤 특정한 언어와 문자와, 종교와, 문화가 소통의 도구로서 인류를 지배하게 된다면 이는 인류에게 유익한가?  

인류는 하나의 문자와 언어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효율성을 획득겠지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해 곧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더 큰 위험과 비효율을 맞이하게 된다.

철학은 소통이다.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길이다. 길은 샛길을 낳는다. 샛길은 많을수록 좋다. 샛길의 숫자는 인간의 창의성의 크기에 비례한다.

철학은 『동의하기』이면서 동시에 『동의하지 않기』이다. 동의하기는 길과 길을 하나로 연결하기이며 동의하지 않기는 새로운 루트의 갈림길을 개척하기이다.

길은 길과 이어져 하나로 통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길은 부단히 갈래를 나누어 서로 적절히 외면하고 갈라진 채 공존해야 한다.

길은 네거리에서 만나고 네거리에서 다시 갈라진다. 철학은 권력이다. 철학은 권력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권력을 미세하게 나눈다.

철학의 목적은 인류를 하나로 묶는 커다란 하나의 길을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그 길을 지구촌 인류의 숫자만큼 잘게 쪼개어 각자 하나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절대철학은 있는가?
길은 소통을 목적으로 하지만 부단히 샛길을 만들어 서로 외면해 왔다. 철학은 『동의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실은 그러한 『동의하지 않음』에 의해서 더 많이 발전해 왔다.

역사이래 부단히 진행되어온 바는 하나의 철학이 출현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만인의 동의를 구하고, 또 거기에 맞서는 새로운 사상이 창안되어 기존의 철학에 동의하기를 거부하곤 하는 것이었다.

철학은 이렇게 동의하기와 동의하지 않기를 반복하면서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것은 마치 해커가 부지런히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보안업체가 부단히 백신을 개발하는 것과 같다.

권력과 창의성
동의하기의 중심에 서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이다. 권력을 만드는 것은 곧 인간의 창의성이다. 동시에 그 창의성을 방해하는 것이 또한 권력이다.

인류를 언어와, 문자와, 문화와, 종교에 의존하여 창의성을 발달시켜 왔지만 동시에 그 언어와 문자와 종교와 문화에 의해 그 창의력을 방해받아 왔다.

인간의 창의성은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그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이미 다수의 동의를 얻어낸 다음부터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며 비효율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자가 동의하는 하나의 『절대철학』은 없어야만 한다. 또는 그 절대철학 스스로가 부단히 자기 자신을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의하기와 동의하지 않기 사이에서 소통의 문제
철학은 인간과 우주를 근원에서 이해하기이다. 개인의 삶이 그 삶의 조건으로서의 주어진 환경이 되는 인간과 우주에 대해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힘의 우위에 서는 것이다.

철학은 인간과 환경과의 대결에서 인간이 주도적으로 권력을 쥐는 것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고 환경이 인간에 종속되게 하는 것이다.

철학에 있어서 그 권력의 행사로서의 인간의 소통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인간과 우주의 소통, 국가와 국가의 소통,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 그 모든 것의 전방위적인 소통이다.

모든 종교, 모든 주의, 모든 사상, 모든 철학들은 나름대로 창안된 소통의 방법을 제안하며 타자의 동의를 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완전한 소통은 무엇인가?
철학은 완전한 소통, 완전한 동의, 완전한 권력을 지향한다. 소통은 권력을 창출하며 권력은 스스로 위태롭다. 그러므로 철학은 완전함의 크기에 비례하여 불완전해 진다.  

인간 개개인의 그 소통의 주체가 되므로서, 인간 개개인이 자신을 그 동의의 중심에 서게 하므로서, 인간 개개인이 자기만을 위한 하나의 고유한 샛길을 가지므로서 완전한 소통은 가능하다.

완전한 철학은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 개개인이 그 동의의 장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개인이 그 동의의 장의 중심에 서는 것이 곧 주체(主體)이며, 개인이 그 주체의 위치에서 환경과의 소통을 이루는 것이 곧 자유(自由)이다.

개인의 삶의 목적은 완전한 주체로서 그 소통의 장의 중심에 서는 것이며, 완전한 자유로서 타자의 동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 것이며, 마침내 주어진 환경과의 완전한 교감, 곧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완전한 소통을 위하여
완전한 소통을 위해서는 개인이 그 소통의 일단위로서 주체가 되는 즉, 환경으로 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통의 장에 참여하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의 모든 개인이 그 동의하기의 중심에 설 수 있어야만 한다. 즉 만인이 모두 동의의 주체이어야 한다.

그 동의의 장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은 권력이며, 그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투쟁 곧, 개인이 자신을 그 동의의 장의 중심에 위치시키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사회이다.

타자의 동의를 얻어내는 무기는 창의성이다. 그 창의성으로 하여 인간은 평등하다. 타자의 동의를 구하는 소통의 주체로서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 개개인이 소통의 주체로서, 누구나 자신의 창의에 의해, 자기만의 고유한 소통의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평등한 권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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