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달빛이 좋아서 나왔다고 말씀드린 거
그래요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님이 이맘때쯤 억새숲 강변길 산책하시는 거
아닌 척했지만 알고 있었어요
님에게 구절초꽃 아시느냐고 물어본 거
그래요 핑계였어요
그냥 님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요
그냥 님 곁에 가까이 가고 싶었어요
가끔 인터넷 산책하시는 거 알고 있어요
눈 감고 있어도 느낌이 와요 지금 나와 계시는구나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님을 지켜보곤 해요
비 오는 날 가로등 불빛처럼 내 가슴에 번지는
님의 창 빨간 불빛만 쳐다보곤 해요
그 날 그 음악 나도 좋아한다고 한 거
그래요 거짓이었어요
님 앞에서 모른다고 할 수 없었어요
어제는 님이 말씀하신 그 시디를 사 왔어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님이 왜 그토록 좋아하시는지
오늘 하루종일 듣고 또 들어볼 거예요
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슴이 서늘해질 때까지 눈물이 날 때까지
그래요 님에게만은
착해지고 싶어요 착해 보이고 싶어요
님의 창가 뜰 앞에 자주 찾아가곤 해요
님의 낮은 울타리 반쯤 열린 사립문
밤늦도록 가로등 어둔 골목에 서 있곤 해요
누굴 만나러 나오신 건지
아님 오늘도 그냥 산책만 하시다 가실 건가요
님은 어찌 그리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때론 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인 것만 같아요
하지만 아시긴 하시나요 행여 눈치라도 채셨나요
한 사람, 님 곁을 괜히 서성거리고 맴도는 것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