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진짜와 가짜 - 관광객과 순례자의 차이

길은 정해져 있어.

어른들은 내게 말해주곤 했었지.

“애야! 이 길로 쭉 가면 된단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어.

그래서 결단을 내렸지.

어른들의 말을 의심하기로.

그것은 커다란 두려움이었어.

왜냐하면 의심은 의심을 낳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거든.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난 정말 두려웠다구.

한 번 의심하기로 하면

그 모든 것을 나의 힘으로 전부 새로이 설계해야만 하는 거야.

길을 설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길의 진척에 대한 평가의 방법까지 설계해야 해.

나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어.

그 길은 시련의 길이었지.

그렇치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어.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옳은가?’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 조차도 내가 만드는거야.

세상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거지.

남이야 뭐라하든 자기 논리의 일관성을 지켜갈 수만 있으면 백점이거든.

문제는 끝까지 가야한다는 거야.

끝까지 가야만 진정한 평가가 나온다는 것.

사실이지 그게 힘들어.

망설임 없이 일관되게 계속 간다는거 말이야.

내 길을 가면서도 종종 중간에서 멈추어

세상 사람들의 평가를 기대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유혹이 있다는 거지.

이 정도면 세상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걸 극복해야만 해.

남이야 뭐라하든 내 점수는 내가 채점하는 거야.

그것은 인생 전부를 걸어서

커다란 하나의 동그라미를 완성시키는 거지.

그래서 관광이 아니고 순례인 거야.

끝까지 가야만 하기에.

관광은 그날그날 정산을 하지.

오늘의 소득은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거다 하는 식으로.

기념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으로

그날그날의 성과에 대한 점수가 나와.

순례는 그러한 중간정산이 없어.

오늘은 사막을 건너고 내일은 늪지를 건너지.

점수를 매길 수가 없어.

인생 전체를 걸고 동그라미를 완성시키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그래서 쓸쓸한 거야.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해.

혼자 가는 길이지.

그날 그날의 소득을 채점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

조금식 진척되고 있는지 아니면 제자리서 맴돌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렇지만 슬프지 않아.

고요한 가운데 은밀한 기쁨이 있어.

매 순간 그 순간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사실 말이야.

오늘 에펠탑을 보지 못해도 좋고

내일 세느강을 건너지 못해도 좋은 거야.

순례의 길은 매 순간 완성될 수 있는 거야.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일관성을 지켜내기만 하면 언제나 성공인 거야.

중요한건

그 순례의 끝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이지.

그것은 만남이야.

마침내 나는 너를 만난 거야.

소년이었던 나.

처음 어른들의 말을 의심하였을 때

그 두려운 결단의 순간에

만약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어른들이 가리키는 안전한 길을 갔더라면

오늘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을거야.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을 거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내가 너를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야.

그것이 우연한 스쳐감이 아니라

나의 일생을 건 결단의 끝에서 나왔다는 사실 말이야.

만남이 중요한 거야.

만남으로서 완성되는 거야.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서 예 까지 온 거야.

네가 환영해 준다면 그만치 기쁜 거지.

난 언제라도 네게 귀한 손님으로 기억되고 싶어.

나 역시 너를 내 인생의 귀한 손님으로 가장 멋진 자리에 초대하고 싶지.

당신은 사막을 건너온 순례자니까.

※※※

이렇게 따져묻는 사람들도 있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만나서 그 다음엔?”

그러나 그 태도는 틀렸어.

너와 내가 만나고 나서 어쩔 것이냐고 물어서는 안돼.

왜냐하면 참된 소통은 만남의 순간에 완벽하게 이루어지거든.

그것으로 이미 내 인생의 동그라미는 완성되었거든.

관광객과 순례자의 차이는 거기에 있어.

사전에 준비되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이지.

사막을 건너왔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이지.

네 온 길이 관광이었다면

사막을 건너지 않은 걸음이었다면

그 만남의 자리는 정상이 아닌 거야.

정상에서의 만남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

그러나 말야.

내 안에 가득차 있다면

만남의 순간에 이미 스위치는 켜지는 거야.

만나고 나서 이제부터 무언가를 해본다는 따위는 없는 거야.

이 광막한 우주 가운데서

너와 나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그렇게 만난 거야.

그렇다면 그곳이 곧 정상인 게야.

그래서 순례인 거지.

만남의 순간에 동그라미는 완성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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