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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챠우
read 2454 vote 0 2016.12.01 (00:55:18)


 


유태인 학습법 하브루타(질문식 수업법)는 맞는 교육법인가?


동영상을 보면 제작진은 질문에 대한 정의부터 잘 못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가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래와 같다. 사실 이런 방송을 기획하는 것도 '한국은 틀리다'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시선부터 근본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겠다.


질문은 상대에 대해 1) 공격을 하는 경우와 2) 빠진 것을 묻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번에는 일단 공격의 경우만 논하겠다. 빠지거나 불완전 전달을 보충하는 경우는 상대가 결정한 사건을 보충할 뿐이므로 지금은 논외다. 


상대에 대한 공격의 질문은 자신이 상대의 룰을 뒤집겠다는 포지션에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학생들은 질문을 한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질문은 혁명이며, 곧 새로운 질서를 짜겠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전반의 선진국이나 유태인은 새로운 룰을 만드는 자들이었다. 어쩌다보니 그 포지션으로 갔고 또 포지션압박을 받았다. 그들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문화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선진국이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결국 질문이란 환경이 변할 때 리더가 사건을 정의함에 있어 그 룰을 바꾸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동안 후진국이었다. 후진국은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룰에 따르면 된다. 전세계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팔로워가 일일히 따진다면 전체의 진행이 정체된다. 그게 사건의 방향성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은 공격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화적 혼란은 한국이 갑자기 잘 살게 되어 나타나는 당연한 성장통이다. 헬조선이라 한다. 변화는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하므로 21세기의 한국은 헬조선 맞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룰을 강요한다. 그들의 한국은 실제로 노예였기 때문에 그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 질문하고 또 룰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포지션이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은 더이상 짝퉁이나 만들어 먹고살 수 없게된 것이다.


###


물론 구조론에서의 질문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질문할 수 있다면 질문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일으킨 사건이 궁금하다면 세부사항을 물어볼 수는 있지만, 구조론을 아는 자는, 굳이 내가 사건을 완성시킴에 있어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흔히 자연에 답이 있다하지만, 그건 직관을 보조가 필요할 때 소용될 뿐이고, 진짜 답은 구조론의 가장 단순한 논리체계에 다 들어 있으며, 그것은 누구나 타고난 것입니다. 


그 논리의 정점에서 구조론자가 할 일은 다만 탐색일뿐입니다. 사건에서 잘 드러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것을 찾거나 중복된 부분을 제거하여 사건의 뼈대를 직관하고 또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면, 이 세상 그 어떤 논리도 다 내 발 밑에 있을 뿐입니다. 다만 당신이 그것을 믿지 못하는게 문제가 될 뿐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03:41:06)

공격한다는 말은 '나를 납득시켜줘' 를 전제로 질문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공격한다고 하신건가요?
빠진 것을 묻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지 햇갈립니다. 질문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하여 이미 상위포지션에 올라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뭣이 빠졌고 뭣이 플러스되었는지 알 수 없을거라 생각하는게 제 짧은 소견이고.. 뭣이 빠진지 알고 질문한다는건 상대를 떠보려고 하는 의도가 없는 이상 시간 낭비라 생각하기에.. 혹은 제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서로의 생각이나 바깥뇌 공유, 아이디어 융합등으로 평화로운 상호작용을 위한 질문의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질문을 하지 않던 경우는 문화적, 사회적 요소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를 배우는 정규교육보다는 대학으로 이야기 해 보자면 특히 쓰레기 구지식 팔아가며 기생하는 교수들의 영향이 작지 않구요. 자신만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이 없으니 오죽했으면 학생들에게 바짝 쫄아서 질문이나 참신한 아이디어, 프로젝트들을 시도하지 못하게 여러방법으로 고집을 부려대니 질문을 해봤자 의미가 없어서 애들이 안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있지요. 거기에선 한국학생들 질문 정말 잘 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6.12.01 (07:33:12)

질문은 그냥 하는 겁니다. 

잘못된 전제가 있어서 못하는 겁니다. 

"문화적 사회적 요소가 크다"는 것도 잘못된 전제입니다. 

"좋은 질문을 해야지"

"쪽팔리지 말아야지" 등은 다 전제로 작용하여 질문을 못하게 만듭니다. 


"교수들이 잘못이다"는 말은 "선생들이 잘못이다"라는 말인데 그런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하는 그 공부에 대한 전제도 잘못된 겁니다. 


일찌감치 때려쳐야 할 공교육의 폐해를 다 알고 있으면서 그 교육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은 구조론의 방향과 아주 다른 거라고 봅니다. 


구조론은 이럴 때, 그냥 학교 때려치고 

그게 공자라면 때려죽이고,

그게 예수라면 패죽이고, 

네 길을 가라고 말하는 거라고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09:44:38)

답글 고맙슴다. 잘못된 전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제' 라 하시는 걸 보니 구조론으로 이야기 하자면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 질 포지션에 있는 동기부여나 존엄 등을 말씀 하시는건지요? 아직 제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문화적, 사회적 요소를 잘못된 전제라고 하신 점 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삶에서 뭣이 중헌지 모르기에 교수들을 보고 실망을 하면서도 여직껏 붙어 있는 아이들이 많지만,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재밌게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야기 하고보니 그럼 이 아이는 애초에 공부라는 전제보다 '관계'라는 것에 전제를 두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야기 하다보니 전제에 대하여 뭔가 풀린 것 같긴합니다. 흠. 좀 더 생각 해 보겠슴다. 

[레벨:11]큰바위

2016.12.01 (14:09:02)

전제의 다른말이 의도입니다. 

구조론에서는 숨은 의도를 찾으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위에서 문화적 사회적 요소를 잘못된 전제라고 한 거 맞습니다. 

거기에 덴마크달마님이 그렇게 전제하셨으니까요. 

그런데 문화적 사회적 요소보다 더 들어가 있는 게 뭔지 물어야 합니다. 

그게 숨은 전제입니다. 


교수들을 보고 실망한다고 하면 교수를 갈아치우면 됩니다. 

갈아치울 수 없는게 우리 문화다, 우리 사회다라고 반응하면 그게 잘못된 전제입니다. 

문화 앞에 사회 앞에 갈아치울 수 없다는 숨은 전제가 또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결국 갈아치울 마음도 없고, 

갈아치울만큼 투쟁할 생각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질문을 계속하다보면 맨 마지막 더 질문할 수 없는 점까지 가야 구조가 보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6.12.01 (10:08:29)

질문에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문제로 됩니다.

답이 뻔한 질문만 찾아다니게 되거든요


질문은 풀어 없애야 할 적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의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묻는 시작의 의미가 있습니다.

작은 질문이 해소되지 않으므로서  큰 질문으로 커져가는 기쁨이 있는거죠

신과의 일대일 말입니다.


여기서 해소되지 않아야 한다는데 방점

그러려면 무게비중이 같은 친구, 하브루가 필요한거죠  수준이 비슷한데 뭘 해결해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설명하고 질문하는 상호작용이 시작되는거지요



우리나라는 질문을 받는 어른

부모나 선생님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하려하고 애쓰지요

답을 해주면 아이는 그 사람에 의존적이 되는 부작용이 있고요, 못해주면 아이는 그 사람이 모르는 질문은 하면 안되는 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질문을 해도 그 사람이 알것 같은 질문만 해대는 거지요. 잘 짜여진 각본처럼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샘에게는 초등내용, 수학선생님에는 수학만,  화학선생님에게는 화학만 물어보는 식입니다. 우리부모가  뭘 모르는구나하고  느끼면 아예 질문을 안하게되구요  아이는 의존하게 되거나 아예 외면하게 되지요. 그 결과 선생님은 자동적으로 권위적으로 되버립니다.   박사학위를 가졌으면서도 하는 짓은 세살짜리만도 못한  교수나 선생이  등장하는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겁니다.  어른이 나도 모르는게 더 많다는 걸 인정하고 함께 찾아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서로를 가르칠 수 있을 때 진정한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해결책은

1, 상호작용이 일어날수 있도록 짝을 맺어준다

2, 그 과정을 지켜보되 멘토역할에 그친다

3, 만약 동참이 필요할 때는 주제를 선생님도 모르는 영역으로 정해서 입장을 동등하게 만든다  서로 가르칠 수 있어야 상호작용이다

4, 뭘 배웠느냐 답을 찾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호작용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만 판단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13:24:17)

자신이 당황 할 만한 질문을 던지는 학생을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선생들이 많이 생겼음 좋겠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12.01 (12:02:35)

1) 선생은 많이 안다 - 학생은 들어도 모른다 > 질문 불가

2) 선생은 많이 안다 - 선생의 설명이 좋아서, 학생이 알아는 듣지만, 선생의 설명에 빠진게 있다 > 빠진 거 질문

3) 선생은 많이 안다 - 학생이 생각하기에 그의 생각 혹은 전제가 이상하다 > 되묻는다


질문하지 못할 학문이 있겠습니까? 

학문을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게 일부러 꼬아놓지 않은 이상, 모든 학문은 쉬운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보면 학생이 선생이나 교수에게 질문하지 못할 것은 없는 거죠. 


저는 선생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결국 언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임을 말하려고 하는 겁니다. 

선생이 물병 속에 든 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사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음에도, 

그걸 학생에게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이상한 거죠. 학교 선생치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게 함정입니다만.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13:20:43)

1,2,3 을 보아도 상대적으로는 선생이 학생보다 '강자' 포지션에 있음을 고려하셨음을 알 수 있듯이 선생이 상부에 위치한다면 결론은 선생이 얼마나 상호작용 할 수 있는 환경을 잘 조성하느냐에 따라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갈린다고 봅니다.  즉, 챠우님의 결론과 같이 선생이 상부에 있으니 학생이 들어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선생의 능력부실 이지요.  

 보다 '멋진 질문' , '질문다운 질문'을 하기위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선 던지고 상호작용으로 질문의 질을 높여가면 정말 아름다울텐데.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12.01 (13:36:17)

학문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는 집단생활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곳일 뿐이죠.

학교에서 열받고 집에 와서 고민하는게 진짜입니다. 


이런 의미로 보자면, 한국 학교는 나름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싯적에 학교를 폭파시키고 싶었습니다.


가끔 구조론에 커리큘럼이 없음을 따지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자기가 모른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일뿐입니다.

"제발 나 좀 이해시켜달라"라는 것인데, 글쎄요. 달려들어서 머리를 흔들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구조론 사이트의 목적은 사람을 열받게 하는 것일뿐입니다. 

김동렬이 누군가를 열받게 만들었다면, 그의 숨겨진 본능을 끌어내는데는 성공한 거죠. 

이후 진도는 각자 알아서.


제가 구조론에 처음 글을 쓰고 들었던 말은 "꺼져"였습니다. 

결국, 각자는 꺼질건지 아닐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아, 그리고 진정한 스승은, 행(行)할뿐 가르치지(敎) 않습니다. 자연은 복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순간, 종속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13:50:56)

"꺼져"가 챠우님을 구조론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했군요.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것은 '상호작용'의 시초가 될 수 있기에 좋다고 봅니다. 모른다고 따지는 사람들에게도 '꺼져' 라 상호작용 해주어도 되고.  문제는 '따지는 것' 이라 봅니다. '을'이 따지긴 왜 따집니까 무릎꿇고 좀 알려줍쇼 해도 알려줄까 말까 할판에. 성의란 쥐뿔도 보이지 않고 노력없이 따지는 탓쟁이 들은 노답이죠. 


행 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멋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12.01 (14:08:59)

구조론에 들락거릴 수준이라면 ,

자신이 모르는 것을 찾는다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게 더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자는 무릅꿇지 않습니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무릅꿇는자는 차버리고 노력하는 자는 조롱합니다.


자신의 머리에 든 생각, 바로 그게 극복해야할 구습입니다. 

아는 자의 세상에 을은 없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6.12.01 (14:21:14)

아는 자의 세상에 을은 없다.  동의합니다.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을' 포지션에 집어 넣는 경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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