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그러나 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 예외의 경우는
반드시 재앙을 낳는다. 역사법칙의 예외적인 현상은 주로 종교와 이념, 그리고 독재 때문이다.
역사의 법칙은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생산기술의 보급이 그 사회의 하층민을 역사의 무대 전면으로 끌어내는
형태로 전개되며
이는 하층민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은 전통적으로 왕과 평민이 손잡고 중간계급을 억누르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평민계급에 전수되게 되고 왕은 늘어난 생산력을 세수로 확보하기 위해 평민을 우대하게 되고
세수에 보탬이 안되는 무위도식의 귀족을 압박하는 것으로 시스템 구조의 최적화를 지향하게 되며
그 방법으로 시스템
구조의 최적화에 성공한 국가는 강대한 국력을 얻고 정복전쟁을 벌여 주변의 삼림지대나 초원지대를
새로이 역사의 무대로
편입시키게 되고 그 결과 그 삼림지대나 초원지대에는 새로운 귀족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초원이 많은 러시아에 귀족의
세력이 강한 것이다. 이미 역사의 무대 안으로 편입된 도시에는 평민의 세력이 강하다.
그렇게 역사는 끊임없이 하층계급과
변방지대를 중앙무대로 끌어들인다. 그러한 흐름을 충실히 이행한 정치가가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을 압박하는
한편 하층민을 역사의 무대 전면으로 끌어들였고
게르만의 삼림지대를 역사의 무대 안으로 편입시켰다. 한편 귀족들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하여 카이사르를 암살하여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하층민의 전면등장을 차단하고 로마문명의 불길이 게르만의
삼림지역으로 번져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즉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잘라서 역사가 끊임없이
변방지역과 하층계급을 역사의 주무대로 끌어들여 가는
역사의 호흡을 질식시켜 놓으려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역사의 정체로
나타난다.
그 경우 역사는 호흡을 멈추고 진보를 멈추고 계급을 고립시키고 황무지를 버려둔다.
귀족은 귀족으로
남고 하층민은 노예로 남는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사는가?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사의 흐름을 배달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임진왜란은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조총의 전래다.
이는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이 해양을 통해 접속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의
하층계급은 일제히 역사의 무대 위로 올라가려 했고
토요토미는 그 에너지를 대륙으로 분출시켜 버렸다. 이는 역사의 자연스런
흐름이며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서양이 득세한 것이다. 그런데 그 흐름이 한반도에서 돌연 멈춰버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신라가 왕실의 나라라면 고려는 귀족의 나라이다. 조선은 양반 사대부 계급의 나라이다.
이는 생산력의 발전과
관계 있다. 이는 누가 철과 그 철을 통한 경작을 지배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봉건적 전투에서는 장군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조총부대의 등장으로 하사관의 비중이 중요해졌다.
장군의 결단력 보다 뛰어난 포수의 양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장군 혼자서 적을 막았다지만
조총부대는 우수한 포수의 양성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포수의 양성은 결국 중간계급의 신분상승으로 연결되고
이에 양반계급은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임란은 의병의 등장으로
민중계급의 위상이 강화되고
양반계급의 위기이면서 왕실의 위기였다. 광해군은 평민과 손잡고 양반을 억누르는 역사의
공식
카이사르의 공식을 외면하고 비밀정치와 독재정치로 외교협잡을 벌여나갔다.
이는 인위적으로 역사의 자연스런
발전을 막는 김정일짓에 다름 아니다. 민중계급의 위상강화에 불안해 하던 양반계급은
광해군의 독재에 분노하여
인조반정을 통하여 왕실을 결단내 버렸다.
왕실의 권위는 결정적으로 추락했고 양반의 권위는 다시
살아났다.
조선은 양반독재로 회귀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300년 뒤로 되돌아가 버렸고
의병의 등장이라는
민중계급의 전면등장은 일회성의 반짝효과로 되어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민중이 일어나면 반드시 사회구조가 변하게
마련인데 민중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구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임란의 의병들은 아무런 얻은 것이 없다. 그들은
왜 일어났을까?
역사의 수수께끼로 되어버렸다. 외국의 학자들은 의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 그런
일은 원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민중들이 바람처럼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들에게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지? 국가주의라는 것은 나폴레옹이 만든 것인데
봉건조선에 무슨 국가타령에 민중타령?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세계사의 상식으로 볼 때 조선의 의병은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일로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진 현상이 아니라 단지 양반이 자기 집안의 가솔을 이끌고 싸운 것으로 격하되고 만다.
지킬 가치가
없을 때 인간은 지키려 들지 않는다. 당시 지킬 가치를 소유하고 있었던 계급은 양반 뿐이다.
의병은 왜 일어났을까?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소설을 쓴 것일까?
의병이란 것의 실상은 양반의 집안 머슴과 종놈들이었을까?
결국
조선은 변방의 작은나라여서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난 예외가 되었다는 거다.
임란은 의병의 활약으로 대변되는 민중계급의
전면등장과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전래로 특징지워지며
이것이 조선사회가 일정한 정도로 성숙했다는 증거로 되기 위해서는 임란
이후 약화된 양반계급을 박살내기 위하여
왕실이 민중과 손잡고 전면적인 개혁에 나서야 했다. 광해군의 독재와 비밀주의 외교협잡은
양반계급에게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고 왕실과 양반의 전면충돌을 낳았고
평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광해군은 무력하게 제거되었으며 조선은 다시 양반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의병의 등장은 설명되지 않는 역사의
돌연변이로 남았다. 전쟁회피의 결과로 조총수들은 양성되지 않았다.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의 거대한 접속이 조선에서
유교주의라는 이상한 방해자를 만나서 없던 일로 되었다.
당시 양반의 유일한 역할은 유교주의의 전파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구와 동양은 300년 후 다시 만나게 되며
그 300년 동안 동양은 서구에 추월되었다. 당연히 광해군은 조총수들을 양성하여
청과 정면대결을 해야 했다.
조총기술이 중국에 전해져서 중국의 계급구조를 뒤집어엎어 놓아야 했다. 그랬다면 서구와 동양은 한
걸음 먼저 만날 수 있었고
동양의 우위가 당분간 더 지속되었을지 모른다. 전쟁만이 본질 대 본질의 대면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후 서구에서 선교사들이 몰려왔지만 그 의미는 격하되었다. 서구와 동양은 만나되 진실하게 만나지 않은
것이다.
서구가 동양에서 얻어간 것이 10이라면 동양은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얻은 조총은 광해군에서 막혀버린
것이다.
효종 때 포수 200으로 청군을 전멸시킨 러시아를 단숨에 박살낸 그 엄청난 파워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지하로 숨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인쇄술 때문에
민중이 직접 성경책을 읽게 되면 교회가 몰락하고 민중이 득세하고 인구가 늘고 산업이 발전하고
지구는 환경재앙으로 황폐해
지겠군.. 하고 그 기술을 감춰버린 것과 같다. 즉 역사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가로막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립된 독재국가,
종교국가, 이념국가에 흔히 있다. 문명권의 중심에서 멀어진 변방의 작은 나라들에는 늘 있다.
즉 조선은 문명의 중심에서 먼
작은나라 법칙에 망한 것이다. 티도되어야 할 광해군들은 지금도 흔히 있다.
북에 타도되어야 할 김정일 광해군이 있는가 하면
아랍은 온통 광해군 천지다.
왜 아랍은 망하고 있는가? 역사의 자연스런 흐름을 종교가 인위적으로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서구 역시 종교개혁을 안했다면 아랍처럼 망했을 것이다. 한국 역시 유교국가로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그렇게 망했을
것이다.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진행은 양반계급의 지배가 극도로 불안정했던 증거다.
그들은 조선을 종교국가로 만드는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하려 했다.
갑자기 지역마다 효자비와 열녀문이
세워졌다. 여성은 억압되었고 신분질서는 공고해졌다.
조총,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담배의 전래와 인삼의
재배로 민중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양반의 지배는 완강했던 것이다.
요호부민의 등장으로 만석지기 농민의 등장이 있었음에도
사회의 질서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조선은 왕실과 양반이 한덩어리로 되어 완벽하게 망했다. 보통 이 경우 왕실과
양반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왕실이 평민을 끌여들여 세수를 늘리면서 그렇게 하여 높아진 위상으로
양반을
억누르는 것이 역사의 공식인데 광해군의 몰락이후 왕실이 약해져서 이 공식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
효종의 북벌과 노론의 집권이
하층민과 지배층의 결탁이 되어 영남남인 양반계급을 억눌렀지만
효종의 죽음과 송시열의 배신으로 한때 민중의 편이었던
노론은 총체적으로 역사의 배신자가 되어버렸다.
즉 그들은 북벌을 약속하여 집권한 다음 전쟁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영구집권한
것이다.
북벌은 양반의 몰락과 민중계급의 신분상승을 의미한다. 북벌의 결과 승리하든 패배하든 양반계급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브루투스가 되어 카이사르를 찌른 것이다. 문명의 흐름을 상층계급에서 하층계급으로 그리고 중심에서
변방으로
전달해야 하는 역사의 임무를 내팽개친 것이다. 그것이 자기 목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말이다.
모든 개혁은 개혁그룹을 죽인다. 그것이 두려워 개혁을 두려워 하면 재앙이 일어난다.
이후 조선에서는 무수한
광해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친청책략으로 양반계급과의 전면대결을 피하고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원조 광해군에
이어 친청으로 도피한 대원군 광해군.
친러로 도피했던 민비 광해군, 친일로 도피했던 이완용 광해군,
친미로 도피한 이승만 광해군, 친일로 도피한 박정희 광해군
친서구로 도피한 이 나라의 지식층
광해군들. 그들은 모두 실패한 광해군의 아류들이다.
역사를 배반하면 반드시 망한다. 왜 18세기 최강국 터키는
망했을까?
역사와의 전면승부를 회피한 것이다. 문명의 흐름을 중앙에서 변방으로, 상층계급에서 하층계급으로 전파해야
하는
역사의 임무를 배반한 것이다. 카이사르가 했던 그것을 카이사르를 죽인 14인의 배반자들처럼 배신한 것이다.
지금도 북한에서 배신은 자행되고 있다. 아랍에서 지배자들은 300년 전부터 계속 배신하고 있다.
그 방법은
종교와 이념 그리고 지역적 고립과 독재정치, 비밀주의를 활용하는 것이다.
문을 닫아걸고 역사와 대화하지 않으며 계층
사이를 갈라놓고 곳곳에 벽을 쌓아 흐름을 막는 것이다.
역사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시스템 구조의 최적화
경쟁이다.
신기술이 하나 등장할 때 마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등장해야 한다.
신기술이
도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비참한 재앙을 당한다.
망하는 것이다.
당신은 왜 존재하는가? 역사의 편에 서서 역사의 살아숨쉬는 호흡을
중심에서 변방으로,
상층에서 하층으로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실용주의는 역사를 죽이는 주의다. 결탁과 야합으로
역사와의 대화를 회피하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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