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신들이 꼴값 떠는 이유
원문기사 URL : | https://v.daum.net/v/20250322100349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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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렬 2025.03.22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어느 사회든 음지와 양지가 있다.
조폭과 창녀는 음지에서 활동할 뿐 양지로 기어나오지 않는다.
점쟁이와 광신도는 음지에서 암약할 뿐 양지에서 큰소리치지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 음지와 양지 사이의 칸막이가 사라졌다. 지켜야 할 선이 지워졌다.
창녀와 조폭이 인권을 주장하고 의사가 출근을 거부하고 판사와 검사가 정신병자 행세를 하는 막장이 되었다.
다른 나라는 이러지 않는다.
일본만 해도 황당한 일이 많지만 음지와 양지의 선은 지켜지고 있다.
일본은 멀쩡한 처자들이 이유없이 길거리에 서 있다. 밤새 서 있다가 지쳐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
뭔가 미친게 아니냐 싶지만 그들도 가격을 담합하여 조직의 힘을 과시한다.
호기심에 집적대는 무개념 한국인 관광객을 쉽게 박살낸다.
호락호락 하지 않다. 음지에는 음지의 질서가 있다.
한국의 시스템이 망가진 것은 과잉교육 때문이다. 이해찬 교육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뭣도 모르는 것들이 한가지 재주만 믿고 폭주한다.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무당과 개독과 중놈과 브로커들이다.
대통령이 점쟁이 말 믿고 쿠데타를 하고
1년에 1천억 버는 사람이 점쟁이 말 듣고 1조를 벌겠다고 자기 배를 짼다.
윤석열 쿠데타와 민희진 쿠데타는 완전히 동일한 구조다.
그들이 현란한 개인기로 수완을 발휘하여 한 두 명은 작업할 수 있지만
협력수비를 하는 국가의 시스템을 깰 수는 없다.
그들은 이재맹 대 윤석열, 방시혁 대 민희진이라는 개인대결로 연출하여 흥미를 몰아가지만
사실은 국가의 시스템을 흔들고 자본주의를 공격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폭언을 휘두르는 윤석열과 민희진.
그들은 연출된 개인의 카리스마로 시스템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을 만만히 본 것이다.
왜 이렇게 오바질을 할까?
이게 다 과잉교육 때문이다. 지와 무지 사이에는 강이 있다.
하사가 아무리 승진해도 주임원사까지 올라갈 뿐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
소위와 원사는 무엇이 다른가?
원사는 몇 십년 근무해서 요령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수완이 있다.
소위는? 소위는 조직을 동원할 수 있다. 신참소위는 무능하지만 장군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이 커져야 한다. 신참 소위가 장군한테 전화해서 제가 능구렁이 원사한테 걸려서 족됐걸랑요 이럴 수는 없다.
고딩이 빵셔틀을 당하더라도 엄마한테는 알리지 않는다.
지 자식이 사회성 떨어지는 머저리라는 소식은 부모에게 나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장교가 부사관한테 줘터진다는 말은 차마 못한다.
명예가 중요한 장교의 약점을 부사관이 이용하는 것이다.
소위 나부랭이가 부사관과 구설수에 엮이면 출세에 지장이 있을 걸. 이 협박 먹힌다.
왕년에는 병장들이 하사를 화장실 뒤로 불러서 줘패곤 했다.
특히 월남까지 갔다온 베테랑들이라면 하사 두들겨패기는 취미생활이었다.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진 것이다. 쌍팔년도에 그랬다.
병이 부사관 쪼인트를 까고, 부사관이 장교를 보일러실에 가두고, 의사가 파업하고 그런 나라는 망한 나라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미친 임금이 지지도 올린다며 무과 과거시험 합격자 1만명을 한꺼번에 선발해 버렸다.
그들을 과거에 합격시켜놓고 벼슬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한량이라고 부른다.
지금 한국의 과잉교육은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1만명 동시배출과 같은 상황이다.
무과 합격자가 벼슬을 하려면 현직 관리에게 뇌물을 먹여 빈 자리를 따내야 한다.
현직에 공석이 생기면 합격자 중에 뇌물 순으로 발탁하기 때문이다.
현직에서 물러나는 사람은 그렇게 생긴 빈 자리를 특정 합격자에게 줄 수 있으니 붕당은 필연이다.
인사가 들어오지 않으면 빈 자리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현직이 뇌물 접대로 면접을 해서 신입을 받는다.
과거 합격자가 이곳저곳 찔러보며 자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조선은 망했다.
시스템이 망해서 망한 것이다.
애초에 고시 9수를 허용하는게 아니었다.
울면 젖주는 식으로 떼써서 어거지로 합격한 것이다.
헌재는 시스템이다. 개인이 판결하는게 아니다.
민희진은 개인이다. 회사는 이사회고 이사회는 시스템이다.
개인이 시스템을 이길 때 그 나라, 그 사회는 망해 있다.
개인이 무당과 개독과 중놈과 브로커와 야매언론을 거느리고 시스템 행세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스템이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은 국회처럼 다수의 의견일치로 만들어져 있다.
국가는 공무원과 기업과 시민사회와 언론과 사법제도의 상호견제와 감시로 작동한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 미쳐서 무당과 개독과 중놈과 브로커를 거느리고 언론을 작업해서 이상한 짓을 한다.
문제는 그게 잠시 먹힌다는 거다. 원래 개인기도 될 때는 된다. 골대 앞까지는 잘 간다.
마지막 슈팅은 시스템 방어에 막힌다. 개인기로 안 되고 패스축구로 이겨야 한다.
개인이 브로커와 개독과 중놈과 무당과 사이비언론을 거느리고 활약하면 그게 일회용 흥미거리가 될 수도 있다.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활약은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용도로만 제한되어야 한다.
개인이 시스템을 이겨버리면 그 나라는 망해 있다.
브로커와 사이비언론과 개독과 무당과 중놈과 음모론자와 정신병자가 시스템 행세 하는 나라는 망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