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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971 vote 0 2023.09.22 (11:56:10)

    우리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옛날에 중원의 어떤 임금이 비가 석 달 동안 줄기차게 쏟아지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동해로 신하를 보냈다. 신하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동해의 물은 1밀리도 늘지 않았다고 하는게 아닌가?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과 논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비가 석 달 동안 쏟아졌으면 바닷물은 1밀리라도 수위가 높아져야 한다. 그것이 타당한 논리다. 그런데 왜 수위가 변하지 않았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알 수 없는 미지수는 X로 놔두고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고를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문제에 부딪혔다. 종교, 주술, 터부 등 인간이 하는 짓을 사실 중심으로 보면 인류는 바보라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엥? 그러나 사실이다. 인류는 바보가 맞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미지수 X가 있기 때문이다. X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다. 알고 보니 인간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사회적 본능에 따라 주변에 맞춰주고 있었다. 두뇌의 풀가동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이다. 


    왜 그렇지? 그게 생태적 지위를 찾아가는 현명한 생존전략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아무 생각 없는 것들이 피둥피둥 잘 살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암 걸려 죽는 것을 봤다. 그러다 보니 인류의 지식체계는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버렸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대책은 모르쇠.


    어떤 사람이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조개 화석을 발견했다. 음, 이곳이 과거에는 바다였군. 이렇게 생각해야 맞다. 왜냐하면 조개가 나온 것은 분명 사실이니까. 그러나 반론이 부딪힌다. 그게 말이나 돼? 상전이 벽해되냐? 바다가 산이 되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닥쳐!


    올바른 보고는 묵살되었다. 대륙이 움직이면 바다가 산이 될 수도 있잖아. 이렇게 항의하면 대륙이 어떻게 움직이냐?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데? 외눈박이 거인이 밀었냐? 대륙이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묵살되었다. 그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신용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사실 지구가 둥근 것은 그냥 보면 보인다. 안 보인다면 말을 말아야지. 답답한 노릇이다. 인간들을 신뢰할 수 없고 나는 내 판단을 믿기로 했다. 옛날 사람도 아는 사람은 지구가 둥근 것을 알았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해도 둥글고 달도 둥근데 지구만 네모졌냐? 묵살되었다. 지구가 둥글면 바닷물이 다 떨어질 텐데 말이나 돼? 아시아인들도 중력의 존재를 알았다. 그것을 음양의 기운으로 설명했을 뿐. 아는 사람들끼리 귀엣말을 나눌 뿐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왜? 사약이 무서워.


    옛 기록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천원지방설이 공존한다. 어차피 증명할 수 없으니까 생각을 말자. 뭉개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신의 메시지를 해독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아랍 천문학자만 이 문제에 오래 매달렸을 뿐 서양은 기독교에 숨고 동양은 성리학에 숨어버린 것.


    인간들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이 무너졌고, 천동설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하나가 더 무너진들 어떠리? 왜 발상의 전환을 겁내는가? 이미 여러 번 깨졌잖아. 옛날 사람은 우리은하를 우주의 전부로 알았다. 안드로메다은하가 발견되자 당황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뭉개고 넘어갔다. 한두 번 깨진 것도 아니고. 지동설과 같은 대전환은 더 있을 수 있다. 사건의 메커니즘은 5다. 우주의 양파껍질은 다섯이다. 지구가 납작하다는 생각이 첫 번째 껍질이다. 천동설이 만들어졌다. 천동설은 우주에 중심이 있다는 생각이다. 


    왜 중심이 있지? 납작하면 중심이 필요없다. 움직이는게 중심이 있다. 천동설은 우주가 공모양이고 움직인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납작하면 그냥 살면 되는데 움직이면 뭔가를 꽉 붙잡아야 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를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이 천동설이다.


    생각해 보면 천동설은 매우 진보한 생각이다. 그리고 깨졌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럼 중심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천동설을 대체하는 것은 지동설이 아니라 평범성의 원리다. 우리는 중앙의 존재가 아니라 변방의 존재다. 새로운 천동설이다.


    불안이 문제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불안을 달래줄 묘약이 필요하고 이제 천동설이 깨진 이상 새로운 약물이 필요하다. 마취제 한 통 놔줘. 인류에게는 평범성의 원리라는 마취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변방이라면 우리와 같은 것이 다수 있다는 말이다. 


    우주에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가 변방이면 불안하다. 우리가 변방이면 우리와 같은 것이 다수 있어야 한다. 숫자가 많아야 안심이 되지. 그래야 묻어갈 수 있으니까. 그들은 겁 많은 양떼처럼 숫자에 숨을 생각으로 평범성의 원리라는 새로운 천동설을 꾸며낸게 비겁한 거다. 


    인류원리나 희귀한 지구 가설은 다시 지구중심설로 돌아오게 한다. 외계에 외계인이 있겠지만 그것은 외계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중심이다. 이스터섬 사람은 외부와 접촉하기 전에 이스터섬이 중심인게 맞다. 이스터섬이 변방인데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가 변방의 평범한 존재라면 외부와 연락을 시도해야 하고 우리가 중심의 존재라면 외계에 대해서는 그만 잊어버려도 좋은 것이다. 어차피 교통할 방법이 없다.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언어를 비튼다. 생명체와 외계인을 헷갈린다.


    외계인은 지구를 정복할 정도의 문명이 되는 지구보다 위의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스터섬의 부족민이라 치고 먼저 우리를 찾아온 고도의 문명인들이다. 그렇다면 섬겨야지. 정신적으로 의지해야지. 쪽수에 묻어가야 안심이 되잖아. 이것은 생각의 방향에 대한 문제다.


    단순히 생명이 있을 확률은 높다. 생명이 있는 것과 지구를 정복하러 오는 외계인이 있는 것은 다르다. 문제는 우주에 생명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도 인류가 이미 관측한 200광년 이내에는 생명이 있는 별의 가능성조차 없다는 거다. 테라포밍을 시도할 만한 별이 없다.


    과학이 발달하면 모르나 지금 상황에서는 지구가 망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인류가 광속의 1/10까지 낼 수는 있겠지만 여러 가지 장벽에 막혀 실제 이동하는 문제는 다르다. 인류는 지구에 완벽하게 고립된 것이며 문명인과 접촉하지 못한 이스터섬의 부족민 신세인 것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을 보자. 태양과 행성의 적당한 거리, 행성이 온전할 수 있는 은하계 내 위치, 액체의 물을 담을 크기, 완벽한 양의 산소, 적당한 기울기의 자전축, 크고 가까운 달, 온화한 계절, 특별히 강력한 자기장, 용융되어 움직이는 핵, 판 구조론에 따른 균형 등이 있다. 


     확률로 환산한다면 거칠게 계산해서 1/1억 정도다. 광속은 우주의 크기에 비해 너무 느리다. 답답한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묻지 말고 현실이 그러니까 걍 그렇구나 하고 접수할밖에. 마찬가지로 우리은하의 크기와 다양성은 문명이 발생하기에 너무 작고 가혹하다.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지만 대부분 적색 왜성이고 태양급 덩치가 먹어주는 항성은 많지 않다. 거기에 나이가 50억 살 넘겨야 되고 그이전에 초신성 폭발이 서너 번 거쳐야 한댜. 우리 은하계 안쪽은 가혹하고 바깥쪽은 중금속이 없다.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확률은 매우 낮다. 


    특히 거대한 달과 강력한 자기장과 거대한 가스행성이라는 3위일체는 너무 절묘해서 인류가 관측한 수백 광년 안에 없다. 생명은 어딘가에 있겠지만 지구 정도로 진화할 조건은 희귀하다. 여기에 인류원리를 더해보면 아찔해진다. 인류원리는 우주가 이런 모양일 확률이다. 


    애초에 우주에 산소라는 물질이 없다면? 물이라는 것이 없다면? 빅뱅 때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어쨌든 우주는 있다. 적당한 값으로 있는 것이다. 그게 왜 치우치지 않고 적당히 있지? 우주 단위로 보면 뭐든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법인데 말이다. 물질은 너무 적다.


    원자 내부를 들여다봐도 텅 비어 있다. 너무 적잖아. 거기에 비해 우주는 너무 크다. 천억 곱하기 천억이라니. 거기에 비해 우주는 너무 젊다. 우주 수명에 비하면 137억 년은 거의 배꼽도 떼지 않은 출산 직후다. 뭐든 우주는 극에서 극인데 왜 뭔가 딱 맞냐고? 이상한게 맞다. 


    아서 C. 클라크는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무수히 존재하거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둘 다 끔찍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한다. 무수히 존재하지도 않고 인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인류원리와 맞다. 인류원리는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워 보인다.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세 번째 극이 있다. 조절장치가 있다면 우리만 있어도 안 되고 바글바글해도 안 된다. 주사위 눈이 왜 특별한 눈으로 나왔는게 하면 그 눈이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던졌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안 되는걸 될 때까지 시도하면 이렇게 된다. 


    인류원리나 희귀한 지구 가설이 맞다면 왜 그렇게 되었느냐면 그렇게 될 때까지 주사위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건 명백하다. 조절장치가 있다. 즉 한 단계 더 위가 있다는 말이다. 미지수 X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게 전부는 아니다. 하나가 더 있다. 


    천동설과 평범성의 원리는 인간이 불안해서 만들어낸 거짓이다. 조절장치가 있으니까 안심하라. 구조론으로 보면 조절장치는 있을 수밖에 없다. 우주를 메커니즘으로 보면 메커니즘은 작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주의 작동확률이 100억분의 1이면 백억 번 시도해야 한다.


    진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왜 그러냐고 묻지 마라. 존재하니까 이 글을 읽는 거잖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도록 조절되어야 비로소 존재한다. 그러므로 존재하도록 조절되어 있다고 보는게 타당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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