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에서 긍정으로 아래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모든 철학은 부정의 철학이다. 긍정의 철학은 원리적으로 없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물론 긍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니체의 긍정은 독재자에게 이용당했고, 기독교의 긍정주의는 자본에 이용당했다. 공자의 긍정주의도 봉건군주에게 이용당했다. 뒤가 좋지 않다. 자연은 냉정하다. 그러나 다음 게임이 있다. 우리는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인간은 긍정과 부정 중에서 오직 부정만 선택할 수 있다. 만약 긍정하면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서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일단은 부정이 맞다. 모르는 사람들이 광해군을 찬양하고 대원군을 비난하지만 광해군 행동은 자살이다. 실제로 그는 짤렸다. 부정해야 하는데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대원군의 선택은 쇄국밖에 없다. 일본도 처음에는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상대방이 제안하면 일단 부정한다. 그러나 그냥 부정만 하면 실패다. 그냥 쇄국만 하면 실패다. 역으로 딜을 쳐야 한다. 일단 부정하여 시간을 번 다음 상대방의 허실을 살펴 역으로 제안해야 한다. 100 받고 200이다. 판돈을 올려야 한다. 제물포를 개항할 테니 나가사키도 내놓으라고 역제안을 때리는 방식이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고 상대방이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주의 기본모드는 부정이지만 마지막은 긍정이어야 한다. 부정하기 위한 부정은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그런데 결국은 긍정된다. 긍정은 같은 식구에 소속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자녀는 부모를 긍정하는 것이 맞다. 남녀가 프로포즈를 하더라도 일단은 부정하는 것이 맞다. 계속 부정만 하다가는 장가도 못 들고 시집도 못 간다. 언젠가는 긍정해야 한다. 외부인의 제안은 일단 부정이 맞다. 무턱대고 긍정하면 이용당한다. 계속 부정만 하면 고립된다. 허무해진다. 판돈 올려 역제안하라. 내가 국힘당이면 가덕공항 받고 동대구에서 가덕도까지 KTX 전용선 깔고 광주에서 부산까지도 전용선 깔자고 역제안을 쳐야 한다. 이것이 고수의 방법이다. 막연한 부정은 단세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안철수 무뇌행동은 일종의 조건반사다. 아메바 수준의 대응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액션이라야 한다. 일단 부정하되 다음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면서 역제안을 때리는 것이다. 우주의 기본모드는 부정이지만 막연한 부정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다. 맞대응해야 한다. 상대가 먼저 기술을 걸었을 때 내가 긍정하면 죽는다. 고수는 일부러 져주고 다음 판을 노린다. 막연한 긍정주의자는 남의 지배를 받는 노예가 되고 고수의 진정한 긍정주의는 이번 게임을 져주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게임을 노린다. 긍정하되 이번 게임 아닌 다음 게임을 긍정해야 한다. 현실은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해야 한다. |
"내가 국힘당이면 가덕공항 받고 동대구에서 가덕도까지 KTX 전용선 깔고 광주에서 부산까지도 전용선 깔자고 역제안을 쳐야 한다. 이것이 고수의 방법이다." 이부분 박형준이 실제로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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