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8791 vote 0 2003.01.10 (16:47:20)

박노자의 글을 읽다 보면 바둑을 두고 있는데, 훈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름까지 한국식으로 바꾸었지만 그의 보는 관점이 한국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그는 절대로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고 생각하고 보면 그의 발언은 적절한 개입하기가 된다. 그는 한국의 현실에서 한 걸음을 떼고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을 보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브라질을 보고 노르웨이를 보고 러시아를 본다. 즉 그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한국이 브라질이기도 하고 콜롬비아이기도 하고 러시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대해 한마디 훈수를 던진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브라질은 잘 모르는 나라이니 논외로 치고, 좌파가 실종된 나라인 미국에 대해 한마디 훈수를 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의 패권이나 국제적 위상 같은 것은 눈꼽만치도 헤아려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해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박노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국의 성공사례나 실패사례는 그대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노르웨이나 네덜란드의 성공사례도 한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아니다. 한국은 브라질이나 멕시코가 아니고 독일이나 노르웨이는 한국이 아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한 객관에 머물러 있다. 즉 그는 아직도 객(客)인 것이다. 좀 더 진보해서 객이 아니라 주(主)가 되어주기를 주문하고 싶다. 불행하게도 그가 이해 못하고 있는 것, 즉 한국의 한(恨), 그 한(恨)의 정서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을 객의 참견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고마운 말씀 뿐이다. 들을수록 보약이 된다. 그러나 따뜻한 정(情)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월드컵 발언 같은 것이 그렇다. 누군가가 분위기파악 못하고 찬물 끼얹는 그런 말을 꼭 하지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런 발언이 나오는 것이었다. 다행하게도 박노자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박노자가 그런 말을 한다면 "고맙수!"하고 접수하는 수 밖에. 꼭 필요한 말이지만 내가 하면 욕 태배기로 먹을 이야기를 외부인인 박노자가 해주니 그 얼마나 고마운가.

박노자의 주장대로 광화문 네거리에 전태일의 동상이 서야한다. 당근이다.


덧글추가..
박노자가 이해해야할 한국인의 특수성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하루빨리 일본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식민지 경험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죠. 박노자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일본을 왜 따라잡습니까?

한국은 세계 여러나라의 노동계급과 연대해서 어깨도 나란히 진보를 해야하는 것이죠. 사실 박노자의 말이 맞습니다.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고 아시아를 선도하고 동북아시대를 열어제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아름다운 지구촌 멋진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한국인의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안되지요. 이 경우 박노자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체험을 이해해야 합니다. 뼈저린 식민지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죠. 사실 식민지경험은 한국인의 콤플렉스입니다. 이 콤플렉스 때문에 한국이 우경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노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죠. 한국은 식민지 콤플렉스를 벗어던지지 못하므로 우경화되었다. 어리석은 식민지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이제는 인류를 생각하고 지구촌을 걱정해라. 말은 좋습니다. 우리도 이 지긋지긋한 식민지 콤플렉스 벗어던지고 싶어요. 그러나 일본을 따라잡지 않으면 절대로 한국인은 이 천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쩝니까? 노력해도 안되는데. 숙명이죠. 박노자가 이해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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