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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53 vote 1 2020.08.18 (11:41:07)

      

    창발주의 등판


    http://gujoron.com/xe/1228732 <- 토론실 다음님의 글


    ‘아직까지도 창발이라는 현상의 메커니즘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완성되지 않았다.’ [나무위키]


    검색해 봤는데 창발주의는 단지 환원주의를 비판할 뿐 자체 논리가 없다고 한다. 창발이라는 개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제부터 논의해보자고 제안할 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거다.


    구조론으로 보면 간단하다. 존재는 집합론으로 해명된다. 존재의 단위를 정靜이 아닌 동動으로 보면 집합의 성립에는 둘을 묶어주는 플러스알파가 요구된다. 움직이는 야생마 두 마리의 집합은 정지해 있는 통나무 두 개의 집합과 다르다.


    새옹지마의 고사와 같다. 새옹이 잃어버린 말을 되찾았는데 덤으로 수컷 한 마리가 딸려 왔다. 두 마리 말은 호르몬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장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말을 사려고 한다. ‘말을 주시오.’ ‘말은 저 들판에 있소. 잡아가시오.’ 이건 아니지. 생선장수가 물고기를 판다. ‘고등어를 주시오.’ ‘동해바다에 풀어놓았으니 가져가시오.’ 이러면 안 된다. 


    그냥 곰 세 마리와 엄마곰과 새끼 두 마리가 가족으로 묶인 곰 세 마리는 다르다. 솔로 두 사람과 커플을 이룬 두 사람은 다르다. 커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다. 


    묶여있어야 한다. 존재는 동이므로 묶여서 통제되어야 한다. 구조론은 대칭으로 묶는다. 그런데 말이다. 통나무 두 개는 묶여 있지 않다고? 아니다. 가만있는 통나무 역시 중력에 의해 묶여 있다. 


    중력이 없다면 통나무는 쉽게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1+1=2는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 위에서나 먹히는 논리다. 우주공간에서는 둘을 묶어줄 동아줄이 필요하다. 존재를 정靜으로 보지 않고 동動으로 보면 창발은 당연하다. 


    움직이는 것은 용기에 담아야 한다.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우리를 묶는 것은 관계다. 구조론은 관계중심적 사유다. 창발주의는 창발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구조론은 창발현상을 설명한다는 차이가 있다. 


    창발은 갑툭튀된 개념이다. 갑자기 뭔가 플러스가 된 것이 아니고 구조가 작용한 것이다. 어떤 둘이 집합을 이루고 공존한다면 반드시 구조가 가세해 있다. 존재의 근본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내부에 움직임을 감추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는 동動이다. 동動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집합이 깨진다. 묶는 것은 관계다. 지구에서는 중력이 묶어주고 사회에서는 신용이 묶어준다.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하므로 오판을 저지른다. 


    당연히 묶여있다고 생각했는데 묶여있지 않다면? 묶는 비용은 누가 지불하지? 이것이 엔트로피 원리다. 묶는 비용문제 때문에 우주 안에서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고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되며 기보다 승이, 승보다 전이, 전보다 결이 더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비용이 적게 드는 안정적인 묶임형태라야 한다. 그 차액만큼이 효율이다. 효율이 존재하는 방향으로만 사건이 진행된다. 


    사건이 일어나서 보다 효율적인 배치가 이루어지는 경우만 묶는 비용을 사건 안에서 자체조달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연은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플러스는 묶는 비용이 필요하지만 마이너스는 비용이 청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모의 도움, 환경의 도움, 인맥의 도움, 세력의 도움, 학벌의 도움으로 이 비용을 절감한다. 뒷배를 봐줄 인맥이 없는 사람은 손해본다. 문제는 이 묶는 장치는 재활용된다는 점이다. 한 번 시스템을 세팅해 두면 반복적으로 묶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붕어빵은 붕어빵틀의 도움을 받는다. 붕어빵 장수가 한 번 붕어빵틀을 사면 매번 재사용한다. 고장도 없다. 그러다가 잉어빵이나 국화빵으로 바꾸려면 난감해진다. 갑자기 비용이 청구된다.


    시스템 안에서 묶어주는 질의 혜택을 누리다가 문득 시스템 밖으로 나가서 아무도 묶어주지 않을 때 인간은 당황한다. 정치판에서 그러하다. 조중동 뒷배 믿고 어리광부리다가 한 방에 간다. 모든 혁신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그곳에는 묶어주는 무엇이 없다. 


    그 묶어주는 장치를 새로 만드는 일은 천장을 뚫는 일이다. 강력한 저항을 만나게 된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는 부품 하나하나를 다 바꿔야 한다. 그러나 한 번 돌파하면 일은 쉬워진다. 맨 처음 가는 자가 험한 꼴을 당할 뿐 뒤에 묻어가는 자는 쉽다. 앞서간 자가 시스템과 매뉴얼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묶어주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질의 균일 형태로 존재한다. 어떤 집합이 균일한 집합이라면 이미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학교, 같은 성별, 같은 직업, 같은 경험, 같은 언어. 같은 관습으로 묶여 있는 무리는 자신이 묶여서 보이지 않게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새로 묶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묶는 비용을 절감하려고 불균일을 발생시키는 이질적인 존재를 차별하여 집단에서 찍어내려고 한다. 그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며 불균일한 존재를 배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묶어야 한다. 


    그렇게 묶는 장치를 만들어야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묶인 사실을 모르고 묶여 있지 않은 불균일한 외부인을 차별하여 배척하는 편한 길을 선택하지만 그러다가 묶는 기술을 잊어버린다. 


    성장도 진보도 불가능해진다. 그것이 보수의 멸망공식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8.18 (13:19:38)

"문제는 그 묶어주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질의 균일 형태로 존재한다."

http://gujoron.com/xe/1228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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