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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05 vote 0 2010.09.22 (11:57:32)



(옛날 칼럼에 내용을 추가하여 고쳐쓴 것이므로 내용에 시점의 불일치가 있습니다.)


 

  강의석의 누드 퍼포먼스. 그리고 거기에 딴지를 거는 오마이뉴스 논객 유창선. 이렇게 딱 대조를 시켜놓고 보니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넓은 마당에 판 크게 벌여놓고 제멋대로 놀아나는 백성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모습과 높은 정자 위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혀를 끌끌 차는 양반의 모습. 밑에서는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데 위에서 억누른다. 소녀의 촛불을 억누르는 명박산성처럼 답답할 뿐이다.


  유창선 씨의 행동은 경멸할 만 한 것이다. 강의석의 별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벌써 안티가 형성된 모양이지만 유창선 씨가 그 안티의 대장이라도 된 셈이라면 우스운 거다.


  강의석을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노예의 마음을 가진 자다.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타고난 노예근성 때문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강의석은 그들이 모시고자 하는 ‘훌륭한 주인님’의 포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타고난 노예들은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자는 모두 잠재적인 주인님으로 여긴다. 그러나 좋은 주인님 하나 발굴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세상 이치다. 그들은 자기네의 정신연령을 세살 정도로 설정해 놓았다. 그러니 매사에 어리광이다. 세살 어린이를 똥오줌 받아주며 챙겨주는 유치원 보모같은 연예인 - 그런 연예인이 있을 리 없지만 설사 있다해도 그런 자에게 무슨 에너지가 있겠는가? - 을 모범으로 여긴다. 바보같으니라구.


  주인의 마음을 가진 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한번 웃겨봐. 웃기기만 하면 다른건 잘못해도 괘념치 않을께.’ 노예의 마음을 가진 자는 이렇게 말한다. ‘별꼴이지. 애들이 보고 따라할까 무섭네.’ 애들 걱정을 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정신연령을 애들 수준에 묶어 놓는 거다. 애들 수준으로 보면 뭐든지 다 걱정된다. 그 수준에 걱정이 안 되는게 뭐 있겠느냐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에 플러스가 되는가 마이너스가 되는가다. 99프로의 돌과 1프로의 금이 섞였다면 그게 노다지다. 99프로 돌이라고 해서 노다지를 버릴 것인가? 99프로 돌에 주목하는 ‘부정적 사고’로 접근하는가 아니면 1프로 금에 주목하는 ‘긍정적 사고’로 보느냐다. 바깥뇌 관점으로 보면 플러스가 더 크다.


  강의석의 행동에 대한 찬반은 접어두기. 나는 그가 내 일을 대신해 준데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 저런 모나고 까칠한, 비뚤어진 괴짜들이 변방에서 우리의 자유를 파수 봐주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하루 내 몫의 자유를 누리는 거다. 무엇인가? 그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기 앞서 그가 우리네 삶의 바운더리를 넓혔나 좁혔나를 생각하라. 강의석은 영역을 넓혔고 유창선은 좁혔다. 넓혀야 산다. 이 좁은 세상! 넓게 살자는 것이다. 넓게 살려면 마음이 넓어져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한다. 플러스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마음이 좁아지면 사고가 좁아지고, 사고가 좁아지면 창의가 죽는다. 밖으로 뻗어나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안에서 서로 발목잡고 교착되어 점차 식물이 되고 만다. 마침내 화석이 되고 만다. 유쾌, 상쾌, 통쾌한 민중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하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 전부와 맞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강의석의 행동 하나하나는 내가 봐도 황당한 점이 있지만 그는 적어도 실천하고 있다. 입으로만 떠드는 자들을 침묵하기. 그 상황에서도 쫑알대는 유창선들은 정말이지 전태일의 주검 앞에서도 잔소리 할 자가 아니겠는가.


  쥐란 이후 자유대한에서 자유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누구라도 나서서 싸워야 한다. 지혜로운 방법으로도 싸우고 무식한 방법으로도 싸워야 한다. 점잖게도 싸우고 노골적으로도 싸워야 한다. 왜 깨닫지 못하는가?


  집단지성-집단지능-집단인격 관점으로 보자. 그의 퍼포먼스는 하나의 화두이고 컨셉이다. 생각할 거리다. 바깥뇌 관점으로 보면 강의석의 아이디어는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한국사회에 미친다. 적어도 그는 한국인들의 아이큐를 약간 올렸다. 이건 자동차 1만대를 제작한 이상의 가치가 있다. (물론 제 2, 제 3의 강의석이 떼로 나와서 흐름을 만들고 트렌드를 만들어야 그 가치는 제대로 빛이 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좁은 시장에서 그런 기적은 힘들다.)


  미국이 잘 나가는 이유는 강의석 같이 기를 쓰고 튀려는 인간들이 한국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 튀려는 인간의 숫자가 많아서 흐름과 기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튀는 행동 하나하나가 영감의 자원, 창의의 자원, 혁신의 자원이다. 백남준이 갑자기 피아노를 때려부수거나 혹은 관람석으로 내려와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사건도 황당하지만 미국인들은 그 사건에서 커다란 영감을 받았고, 그 이유로 그들은 백남준을 존경한다. 백남준은 미국인의 아이큐를 높여주었고 그에 대해 보상받았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백남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걸맞는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하긴 노예들은 뭐 아이큐 올려봤자 필요가 없으니. 노예들에게는 그저 밥이나 한 사발 퍼주면 되는 거고.


  지금은 팔뚝힘으로 승부할 때가 아니라 머리로 승부할 때다. 머리로 기여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지식을 제공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에 파란을 일으켜 화두를 주고, 영감을 주고, 대중의 아이큐를 올려달라는 말이다. 지식인들은 잘난척 하며 서구에서 갓 수입한 따끈따끈한 지식을 제공하려 하지만, ‘이것이 랑그고 이것이 빠롤이야.’ ‘이것이 시뮬라시옹이고 이것이 시뮬라크르야.’ 하고 아주 지식노점을 차리지만 그딴거 전혀 가치없다.


  지식은 빵을 주는 것이고 퍼포먼스는 빵 만드는 기술을 주는 것이다. 대중의 아이큐를 올려주어야 한다. 구조의 포지션을 적절히 배치하여 밸런스를 이룰 때 아이큐가 올라간다. 아인슈타인은 지식을 제공했지만 그것을 알아먹는 사람이 지구에 없다시피 하고, 백남준은 단지 센스를 주었을 뿐인데 미국문화가 더 한층 세련되어졌다. 인도를 여행하고 동양적인 감수성을 터득한 스티브 잡스와 선종불교의 정수를 꿰뚫은 백남준의 TV부처가 만나는 지점이 거기에 있다. 바로 거기서 아이폰이라는 작품이 나온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랐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서 플래시를 자른 것이다. 두 사건이 전혀 상관이 없다고? 천만에! 전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바깥뇌 개념이다.


  스티브 잡스의 배짱과 호기는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폰의 심플함과 젠 스타일의 심플함-서구인들은 일본문화를 통해 선종불교를 이해한다.-은 직결로 연결되어 있다. 베르사이유 궁존의 화려함과 풍성함 그리고 현대미학의 심플함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상반된다. 풍성함을 추구하던 서구가 왜 갑자기 심플함으로 돌변했느냐다. 동양미학이 더 현대성과 가깝다. 동양적인 심플함의 뿌리에 선종불교의 공(空) 개념이 있고 육조혜능의 심(心) 개념이 있다.

 - 하긴 요즘도 베르사이유 궁전 구경하고 와서 '와아!' 하고 입벌리는 자 있다. 무식의 극치 -


  옛날부터 서구인들은 최대한 풍성하게 그리려 했고, 동양인들은 최대한 간략하게 그리려 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화려하게, 고딕첨탑처럼 뾰족하게, 성 소피아 성당처럼 웅장하게 그 극한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서구미학이다. 동양은 추사의 세한도처럼 소박하게, 김명국의 달마도처럼 간략하게 그 절제의 극한을 탐구해 왔다. 소니의 워크맨이 작아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도 나라(奈良)에 도다이지(東大寺)를 건립할 때는 황룡사 9층탑과 같은 웅장함을 추구했으나 선종이 전해진 이후 최소화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임진왜란때 전해진 이도다완처럼 아무 장식이 없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현대성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이폰 안에 잔뜩 있는 것이 겉에는 아무것도 없게 되었으며 삼성이 죽어도 못 따라가는 것은 스티브 잡스의 그러한 철학이다. 이건희는 인도에서 몇 개월 굴러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http://gujoron.com




[레벨:6]권국장

2010.09.24 (12:03:10)

백남준선생은 말기에 거동이 불편하셨죠!

클린턴이 임기말 백악관에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연회를 베푼자리에서
클린턴이 그 자리 연설에서 정보고속도로 어쩌구한 모양이에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바지를 내린 사건이 있었다는 군요!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외도로 곤혹을 치루고 있었던 시기)

정보 고속도로라는 말은 백선생께서 오래전에 이미 쓴 단어라더군요!

참 대단한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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