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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갓도사도 엄는데 무슨 재미로 테레비를 보냐~. 』

정동영의 조기부상으로 판 구조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노무현의 올인전략은 흐지부지 되고 있고, ‘DJ-노’의 빅딜에 의한 민주당 연착륙 계획도 틀어졌다. 우리당은 기호 2번을 찾아올 필요성도 없어졌다.

필자가 전부터 지적했듯이, DJ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파멸적으로 붕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DJ에게 돌아간다. 노무현정권과의 관계는 서먹해지고 총선 후 DJ의 역할이 없어진다.

김홍일의 탈당은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므로써 총선 후 DJ의 정치행보를 위하여 부담을 덜고 한편으로 우리당의 기호 2번 획득을 용인하여 민주당을 연착륙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동영의 급작스런 부상 때문에 모든 계획이 없던 일로 되었다.

김홍일의 복당은 탈당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전면붕괴에 의한 정치적 부담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탈당이전은 노무현이 그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정동영이 그 대상이다. 정동영이 부상한 지금 민주당은 노무현과 흥정할 수단이 없다.

노무현은 적자가 아닌 양자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은 DJ와 일정한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하지만 정동영은 그렇지 않다. 정동영은 DJ에게 아무런 빚진 것이 없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빚이 없는 것과 같다.

김홍일의 탈당은 노무현과 타협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DJ와 노무현의 타협이 불가능하다. 노무현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동영이 통째로 호남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의 거래조건 자체에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원래 DJ는 두개의 카드를 가졌고 노무현은 카드가 하나 밖에 없었다. DJ가 홍일을 빼서 카드 하나를 꺾으므로서 둘이 대등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정동영 덕분에 노무현의 카드가 둘로 늘어났다.

그러므로 DJ는 홍일을 투입하여 꺾었던 카드를 원상복구시켜 양쪽이 대등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이지 이제 사태는 위에서 조정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이제는 DJ도 노무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막후에서의 어떤 협상도 먹히지 않는다. 이제는 그야말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동영이 호남의 리더로 부상할 경우 DJ는 총선결과와 상관없이 정치행보에 부담을 덜게 된다는 점이다. DJ로서는 차라리 홀가분해진 것이다.

● 노무현이 총선을 지휘할 경우 - 민주당이 패배하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DJ는 역할이 없어진다. DJ는 김홍일을 빼므로서 세간의 오해를 씻고 정치적 부담을 덜어낸다.

● 정동영이 총선을 지휘할 경우 - 민주당의 존립여부와 상관없이 DJ는 자유로운 정치행보를 할 수 있다. 민주당과 DJ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성계의 함흥차사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물러가 버렸다. 이방원이 여러번 신하를 보내 이성계를 모셔오려 했으나 이성계는 이방원이 보내는 사신을 오는 족족 죽여버렸다고 한다.(일부는 야사로서 반드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음)

왜 이성계는 아들이 보낸 사신을 죽였을까?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사신이 무슨 죄가 있나? 그만큼 아들이 미웠던 것일까? 천만에.

이성계는 9단이었던 것이다.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국가차원의 문제인가 아니면 왕실내부의 집안문제인가에 따라 백성들의 대응이 달라진다. 이성계는 아들이 보낸 사신을 죽이므로써 국가차원의 문제를 집안문제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백성들은 처음 사태에 개입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성계가 문제를 집안의 내부문제로 격하시켜버리므로써 그 문제의 해결을 이성계에게 위임해버린 것이다. 즉 이성계는 교묘한 방법으로 국민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 아들 이방원을 도운 것이다.

노무현과 DJ의 대결은 국가적 문제로 되지만, 정동영과 DJ의 대결은 집안문제로 된다. 김홍일의 복당은 함흥차사와 같다. 표면적으로는 대결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대결의 타켓을 바꾸므로서 오히려 문제의 폭발력이 크게 낮아졌다.

야사에서 이성계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매 속에 철퇴를 감추어 이방원을 죽이려 했다지만 이 부분은 상당히 픽션이다. 이성계는 백성들이 보기에 아버지와 아들이 대결하는 듯 위장한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문제의 해결을 자기 자신에게 위임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홍일의 복당은 DJ가 민주당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는 의미가 된다.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맡기면 한동안 불편해지지만 아들에게 맡기면 아무런 불편이 없는 것과 같다. 며느리에게 넘기기 주저하던 열쇠를 아들에게 덥썩 주어버린 것이다.

본질은 권력승계의 어려움
큰 구도에서 보면 정권이양 후 일어난 모든 일은 권력승계절차에 불과하다. 역사시대에 걸쳐 이와 유사한 일은 수백번도 넘게 있었다. 제왕적 정치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풍토에서 DJ의 권력이 노무현으로 자연스럽게 승계되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이 DJ에게 무슨 부탁이라도 하려면 여러가지로 눈치를 봐야 하지만 정동영은 다르다. 그냥 떼를 쓰면 된다. DJ는 비위좋게 나오는 정동영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단지 그 와중에 애꿎은 함흥차사들만 피곤해질 뿐이다.

노무현은 호남이나 DJ에게 할말이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외곽을 치는 방법으로 암시할 뿐이다.(여의도의 시민혁명 발언은 DJ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봄) 정동영이나 신기남은 자기집 안방처럼 헤집고 다닐 수 있다. 당분간 노무현은 민생에 전념하고 정치발언을 자제할 것이다. DJ는 정동영, 신기남이 어떻게 민주당을 접수하는지 지켜볼 뿐이다.

노무현 입장에서 민주당과 휴전하고 한나라당 깨기에 전념하는 것이 옳지만 정동영, 신기남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당을 박살낼 것이 틀림없다. 노무현은 호남에서 얻는 만큼 영남에서 잃지만 정동영, 신기남은 얻는 만큼 이익이다.

이는 역사의 필연이므로 누구도 말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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