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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672 vote 0 2004.02.15 (12:31:34)

정치인들이 잘 하는 말이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는 꼭 이런 사족을 붙이곤 한다. ‘그래봤자 나만 손해인데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는가?’ 말은 그럴 듯 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뽀록나고 말지만.

인간들은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에게 손해되는 짓을 태연히 하는 것이다.  

이승연씨의 지랄염병 말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 일을 수치로 기억하는 우리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비뚤어진 성적 쾌감을 선물한다.

왜 이런 넋빠진 짓을 저질렀을까?

말도 안되는 일은 곧잘 일어나곤 한다. 지난번 대선 때만 해도 다수의 연예인들이 노-몽 단일화로 대세가 기울어진 뒤에, 뒤늦게 이회창 캠프에 합류하는 바보짓을 저지르곤 했다.  

넓게 보면 이문열들의 사대매국 놀음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문열이 그래도 당대의 지식인인데 나름대로 깊은 생각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긴 이승연도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해봤을지 모른다. 눈물도 흘렸다는데.. 나는 그 말이 진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돋보기로 개미를 태워죽이는 소년은 가슴 저릿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죽이는 재미와 양심의 가책은 정비례한다. 도둑놈들도 양심은 있다. 그 양심의 크기와 훔치는 쾌감은 비례한다. 이승연, 그 눈물의 양과 범죄의 쾌감은 비례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지식인’이다. 사고뭉치 이승연은 바보라서 그렇다치고 이문열은 다르다. 과연 그러한가? ‘지식인’은 다른가? 지식인 믿을 수 있나?

『 브레인 서바이버.. 영웅은 개인의 위대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론의 장 안에서 집단학습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시대의 작품이다. 』

코난 도일, 바보인가 천재인가?
‘코난 도일’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훌륭한 사람이다. 안과를 개업하기도 한 과학도(당시 기준으로 의학과 과학은 4촌)이다. 그의 소설에는 최신과학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다. 시대배경은 19세기 말엽이다. 과학혁명의 세기다.  

홈즈의 추리는 정교하고 논리적이다. 왓슨의 의술은 과학적이다. 세균의 발견 등 당시의 첨단의학을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논리와 과학을 숭배하는 근대적 지식인 코난 도일이, 기사 작위까지 받은 사람이, 이 불세출의 천재가 요정을 숭배하고 마법을 믿었다는 것이다.

도일의 절친한 친구로 유명한 마술사 ‘후디니’가 있다. 후디니는 탈출의 명수다. 도일은 후디니가 원자분해와 전송 및 재합성기술을 사용해서 공간이동을 했다고 믿었다. 후디니는 부인했지만 도일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후디니! 난 자네가 이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속사정을 알고 있다네. 어떤가? 나에게만 살짝 귀띰해주게. 비밀은 끝까지 지키겠네!”

더 황당한 이야기도 많다. 요정을 촬영한 사진을 진짜로 믿고 여러편의 글을 발표했다가 실은 그 요정이 모 광고회사의 광고판에 그려진 그림이었음이 밝혀져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을 만나 신탁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쟁이 자매를 떠받들기도 하고 사교집단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당황스럽다. 어떻게 코난 도일 같은 당대의 지식인이.. 정교한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 기사 작위까지 받은 사람이, 그런 바보같은 속임수에 넘어갔는가이다. 속아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후디니가 속임수라고 확인해줬는데도 몇 년이나 따라다니며 우기는건 또 뭐냐 말이다.

이런 쓸쓸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을 말하면 코난 도일은 천재가 아니었다. 추리소설과 과학은 별로 상관이 없다. 지식이란 것은 별로 신용할 수 없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과연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맹랑한 것인가?

지식인 절대로 믿지 마라  
비합리의 극점에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이 있다. 역사가 생긴 이래 마녀사냥 보다 더 비합리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서구인들은 동양인들을 야만하다고 말하지만 마녀사냥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알만하다.

문제는 마녀사냥이 중세의 산물이 아니라 실은 근대의 비극이었다는 점이다. 중세인들은 마녀들에 관대했다. 우리나라 조계종 사찰에 불교와 상관없는 산신당이 있듯이 카톨릭과 마녀(무속인)는 무리없이 공존했던 것이다.

마녀의 비극이 일어난 데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종교개혁을 전후로 한 합리주의, 계몽주의 바람 때문이고 하나는 근대적인 재판제도의 도입 때문이다.

최초로 마녀사냥의 발단이 된 사건이 있다. 스페인의 어느 시골이다. 할머니가 병사들을 상대로 하숙을 쳤는데 병사들이 하숙비를 떼먹을 요량으로 할머니를 마녀라고 소문을 낸 것이다. 친절한 이웃이 할머니에게 권했다. 순회판사가 왔으니 재판을 받아보라고.

당시의 재판제도는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사또가 멋대로 판결하는 우리나라보다 더 발달된 근대적인 제도이다. 재판관들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합리주의의 허점이다.

할머니가 재판장에 선다. 수만은 군중들이 재판을 지켜본다. 할머니가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마녀가 입김을 쏘았다. 도망쳐라~!” 대혼란이 일어난다. 거품 물고 까무러치는 여인이 있다. “마녀가 입김으로 저 여인을 쓰러뜨렸다.”

대소동이 일어난다. 재판관은 동요하는 군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할머니를 희생시키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마녀재판의 공식이다. 그때 부터는 뒷집 염소가 새끼를 유산해도 마녀 탓이고 앞집 꼬마가 언덕에서 미끄러져도 마녀 탓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근대성의 산물인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카톨릭은 원래 마녀들(민간신앙)에 관대했다. 그녀들은 약초를 알고 민간요법을 아는 시골 노파에 다름 아니다. 카톨릭은 문제를 엄격하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대충 무마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들, 계몽주의자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이성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녀야말로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 1번의 문제이다. 루터나 캘빈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앞장서고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응원을 했다. 이 소동은 18세기 까지 계속되었다.

마녀는 몽매한 자들의 뜬소문이 아니라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단칠정을 논하듯이.. 그들은 마녀의 바늘 끝에서 한꺼번에 춤출 수 있는 요정의 숫자가 여섯인지 일곱인지를 논문으로 다투었다.

19세기 말엽까지도 교과서에 이름이 나오는 알만한 지식인들이 아프리카에는 한달에 한번 보름달이 뜨면 처녀를 공양받아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목이 있다고 믿었던 식이다. 이와 유사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인들의 황당한 이야기는 매우 많다.

이문열, 바보인가 지식인인가?
왜 이런 일이 말도 안되는 일어나는가? 실은 그들이 지식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그들은 천재가 아니었다. 실은 그들은 바보였다. 그런데도 왜 지식인으로 포장이 되었는가?

왜 386인가? 그들은 하나의 세대이고 그룹이다. 그 그룹의 집단학습이 있다.

서프만 해도 그렇다. 논객들이 오판을 하는 이유는, ‘우리모두’ 시절의 독자와 지금의 독자는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프가 공론의 장으로 기능한 덕분에 독자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우일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시대에 걸쳐 특정한 시대에 영웅들이 떼로 몰려나오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나버리면 암흑시대가 된다. 영웅도 없고 튀는 인물도 별로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변화의 시기에 역사의 새바람이 불면.. 집단학습의 효과를 얻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도 덩달아 뜨는 것이다. DJ가 인물이니 YS나 JP같은 돌멩이도 같은 급으로 대접을 받는 식이다. 386세대나 419세대나 63세대는 그러한 하나의 집단학습그룹이다.

우리가 386을 신뢰하는 것은, 혹은 불신하는 것은.. 그 집단학습의 그룹 전체를 신뢰하는 것이다. 개인은 약하지만 그룹으로 있을 때는 강하다.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다. 토론을 하면서 서로가 배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세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인을 신용하는 것은 이런 식의 그룹, 그 집단 전체를 신용하는 것이다. 서구의 계몽주의 지식인들도.. 개개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으로 문제가 많다. 그러나 그 그룹 전체가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상승효과를 얻어 대단한 성과를 낸 것이다.

이문열, 박경리, 김수환.. 한때 이들이 잘나갔던 것은.. 이들 개인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어떤 격변기에 이들 그룹이 공론의 장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집단학습을 한 결과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다시 혼자로 돌아간 개인 김수환의 판단력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서프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얼마든지 오판한다. 그러나 우리가 대오를 이루고 큰 물이 가듯이 함께 간다면 오판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공론의 장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한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그룹 전체가 상당한 것이다.

필자가 강금실을 타박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솔직히 .. 강금실이 뭐가 잘낫냐? 팀을 이루고 대오를 이루고 함께 갈 때, 공론의 장 안에서 그 흐름을 탈 때 지도자가 탄생하고 영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인 강금실은 약하지만 노무현팀의 강금실은 강할 수 있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특정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부단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반복하면서.. 내부적인 자정능력을 갖추고.. 대오를 이루고 팀을 꾸리고.. 큰 물이 가듯이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빛난다.

지식인들의 위대한 성과도 대개 이런 식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들 개개인을 뒷조사 해서 낱낱이 폭로한다면 여러분을 크게 실망할 것이다. 링컨도, 이순신도, 을지문덕도, 나폴레옹도, 백범도 여러분이 알고있는 만큼 근사한 인물이 아니다. 다 까발기기로 하면 말이다.

다만 역사와 함께 할때, 팀을 이루고 시스템의 한 구성요소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때.. 그 여럿이 어울리는 상승효과가 그 영웅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영웅 또한 그 시대가 빚어낸 하나의 작품에 불과하다.

역으로 정동영이나 강금실.. 유시민 알고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공론의 장을 잘 이끌어 간다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면.. 패러다임을 창조할 수 있다면..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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