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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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25 vote 0 2018.12.29 (21:20:51)

      
    인생은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


  인생은 거기서 거기다. 꽤 살아봤지만, 별거 없더라.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식민지와 독재가 자존감을 짓밟았다. 빼앗긴 땅에서 피지배자로 산다면 어떤 경우에도 굴욕을 피할 수 없다. 박정희의 노예로 잔뜩 살아봤자 수치에 수치를 더할 뿐이다. 남의 공기 속에 촌각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민주화된 지금은 자연스럽다.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하루를 살아먹을 수 있다. 지식인을 모욕하는 이명박근혜 정권이라면 견디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사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도 있다. 표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김씨 표류기의 두 김 씨처럼. 살아내기가 감당되지 않는다. 자존감 잃고 허물어지기 다반사다.


    무사는 칼을 품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목수는 연장통을 챙겨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작가는 펜을 쥐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트라면 지식과 교양이 도구가 된다. 누가 침범해도 점잖게 대응할 수 있다. 학벌과 인맥이 도구가 되지만 그게 없어서 문제다.


    성공이니 출세니 명성이니 하는 것들은 동료들 사이에서 어색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사실이지 불쌍한 거다. 인간은 언제라도 주변과 보조를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어색해지고 마는 거다. PT체조를 할 때는 마지막 구령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꼭 외치는 사람이 있다. 교관은 처음부터 다시를 외친다. 


    100명 훈련병의 200개 눈동자가 한 사람을 쳐다본다. 그럴 때 어색하다. 이 별에서 사라지고 싶다. 왜 붙들려서 머저리 같은 몸동작을 하고 있는가? 왜 나의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를 따르고 있는가? 군대는 붙들려 있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이다. 사회는 내 의지로 찾아와서 어색해지고 있으니 실패다. 포기하면 된다. 


    주변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된다. 명절이 되면 듣기 싫은 말을 듣는다. 결혼은 언제 할 거지? 상대방도 어색한 거다. 사실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할 말이 그 말밖에 없어서 그 말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관심의 표현이다. 그 말도 하지 않고 천장이나 쳐다보고 있으면 더 어색한 거다. 도대체 내가 여기는 왜 왔지?


    다 큰 성인이 말이다. 원래 명절모임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어린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을 익히게 하는 용도다. 자식도 낳지 않은 녀석이 도대체 추석이라고 혹은 설날이라고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짓이야? 안 가는게 맞다. 제사는 핑계고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다. 


    자식도 없는 주제에 결속을 다지기는 뭘 다져? 만나지 않는게 맞다. 서로 민망하지 않게 말이다. 많은 사람이 만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면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푸념하는 사태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색한 자리는 애초에 피하는게 맞다. 인생이 슬픈 것은 동료와 보조를 맞춰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태를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이 선창하면 슬그머니 묻어가며 합창하려고 하는데 용감하게 선창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색한 것이다. 내가 선소리꾼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진게 있어야 한다. 돈이 있든, 지위가 있든, 체면이 서는 무언가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나지 않는게 현명하다.


   억지로 만나놓고 싫은 소리라도 들었다고 얼굴 찌푸리는 사태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든 장인이든 싫으면 만나지 않는게 맞다. 가족의 결속을 다지다니 웃기는 사태다. 돈 없는 백수 삼촌은 분위기라도 띄워야 하지 않겠나 싶지만 실패한다. 더 민망해진다. 어색해지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 지켜야 한다. 


    돈과 출세와 명성으로 자존감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선소리꾼이 될 수 있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어색하지 않다. 가문의 어른이라며 상석에 폼 잡고 앉아있으면 된다. 에헴하고 있으면 된다. 맨 뒤에 있는 꼬맹이들도 어색하지 않다. 마당을 분주하게 뛰어다녀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중간에 낀 사람이 어색해질 수 있다. 중간자의 역할은 앞과 뒤를 연결하는 것이다. 장가를 들지 않았으니 연결할 수 없다. 취직하지 않았으니 연결할 수 없다. 손자를 대동하지 않았으니 고향에 올 이유가 없다. 세상 안에서 자기 위치를 정할 수 없다. 겉도는 신세가 된다. 칼을 품어야 한다. 예리함을 품어야 한다. 


    어색한 자와 만나지 말아야 한다. 뭣하면 부모는 5년에 한 번쯤 만나도 좋다. 시부모는 영 안 만나는게 장땡이다. 가문의 결속은 해체하는게 정답이다. 각자 살아내기다. 도와줄 것 없고 도움받을 것도 없다. 인생은 혼자 가는 거다. 사람과 어색하므로 자연과 친할밖에. 사람 사이에서 주도권을 잃으므로 어색하다. 


    내가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추우면 옷을 입는다. 늦었다. 추위보다 빨라야 한다. 더우면 옷을 벗는다. 늦었다. 더위보다 빨라야 한다. 자연에서도 어색해지기 다반사다. 자연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도하고 인간이 뒤따르면 곤란하다. 내가 앞서가야 한다. 자연이 그나마 만만한 상대다. 예리함을 품어야 한다. 


    공기의 칼라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침 공기와 저녁 공기의 밀도차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앞설 수 있다. 자연에서 내가 주도할 수 있다. 밤의 육풍에서 낮의 해풍으로 바람이 바뀌는 결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도구가 있어야 자연스럽다. 예리함이 삶을 살아내는 한 가지 도구가 된다. 도시에도 적응할 수가 있다.


    자연에서 앞서가는 자가 도시에서도 앞서가는 법이다. 중간에 끼면 어색해진다. 리더가 되어야 어색함을 피할 수 있다. 바람이 불기 전에 바람결을 읽어야 하고 비가 내리기 전에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보통은 특기가 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고 우스개를 곧잘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주도하는 자는 어색하지 않다. 선두에 서면 어색하지 않다. 사람 사이에서 선두에 서지 못하므로 자연 속에서 앞서갈밖에. 예리함을 품어야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단계를 예측해야 어색하지 않다. 인디언은 나뭇잎의 종류를 40가지로 나눈다. 젖은 잎과 마른 잎과 새벽 잎과 한밤의 잎새는 다른 나뭇잎이다.


    이누이트는 눈의 종류를 수십 가지로 나눈다. 함박눈과 싸락눈과 진눈깨비만 아는 한국인들과 다르다. 그들은 예리함을 품고 어색하지 않기에 성공한 것이다. 아마존 부족민은 문명인과 접촉하자마자 옷을 빼앗으려 들었다. 그들은 문명인에게 줄 것이 없었고 그래서 매우 어색해했다. 재빨리 문명에 숨어버렸다.


    인생은 그저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이 전부다. 약빠른 사람에게는 기술이 있고 둔중한 사람에게는 전략이 있다. 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전략을 세웠다. 세상 전부와 각을 세우고 이따위 세상을 각색한 신을 잡아서 두들겨 패주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신에게도 전략이 있었다. 어쨌든 살아가기는 그다지 쉽다.


   


[레벨:9]벼랑

2018.12.30 (00:48:12)

이 밤에 읽으니, 더 공감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8.12.30 (03:42:10)

"내가 사태를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레벨:1]인생해커

2018.12.30 (19:08:53)

이건 안 끼워 주나요 ? ^^ https://news.joins.com/article/21417129  아 부록으로 아프리카 어딘가 바나나 익은 정도를 수십가지로 구분한다는 설도... 후다닥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9.01.01 (03:40:28)

"예리함을 품어야 한다." 

예리하게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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