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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761 vote 0 2021.06.06 (19:31:19)

    구조론은 색맹이 교정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색맹인 사람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므로 그것을 작은 차이로 여길 수 있지만, 교정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원래의 색깔을 본 사람은 전율하게 된다. 색깔은 단순히 이것과 저것을 변별하는 차이가 아니라 사람을 잡아당기는 강렬함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숨은 플러스알파가 있다.


    맹수는 움직이는 표적을 보면 흥분하여 달려들고 인간은 잘 익은 과일의 색깔에 흥분한다. 색깔이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원시인이 가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과일을 먹게 하려면 내면에서 강하게 충동질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귀여움이나 미인의 아름다움에는 상호작용을 늘리게 하는 자연의 전략이 숨어 있다. 구조를 본다는 것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보는 것이다. 구조는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 표면을 보는 사람이 흑백TV를 보는 사람이라면 구조를 보는 사람은 컬러TV를 보는 사람이다. 흑백은 펼쳐진 사실을 보지만 컬러는 당신의 소매를 잡아 끄는 매력을 본다. 당신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세상은 대칭에 의해 돌아간다. 그 대칭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대칭에서 움직이지 않는 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움직이지 않는 축의 움직임에 의한 밸런스의 복원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은밀히 축구장을 기울여 당신의 의도를 좌절시킨다. 뭐든 뜻대로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배후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당신이 뭣 좀 해보려고 하면 갑자기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다. 타이밍을 아는 자가 배후의 또 다른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자연이 대칭에 의해 작동하듯이 인간의 인식도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대칭을 따른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관측자인 자기 자신과 대칭시킨다. 주체가 객체를 본다. 여기서 잘못되고 만다.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상대성이다. 구조는 객체 내부에서 돌아가는 자체의 질서다. 관측자가 개입하지 않으므로 절대성이 성립한다. 상대성 속의 절대성을 포착한 자가 그 플러스알파를 이용할 수 있다. 흐름을 탈 수 있다. 기세를 얻을 수 있다.


    구조는 그냥 볼 수 없고 특별한 방법을 써야 보인다. 객체 내부에서 대칭을 찾는 구조론적 사유를 얻어야 한다. 구조론적 사고는 세상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며 그 톱니가 맞물리는 방식의 차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구조는 상하, 좌우, 전후, 고저, 장단과 같은 대칭을 이루고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자연은 전방위로 대칭되어 있다. 우리는 대칭을 통해 세상을 해석해야 한다. 그냥 대칭 말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칭의 복원력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도 있구나 하고 끝내지 말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어우러져 또 다른 플러스알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대칭을 통해 사유한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한꺼번에 두 가지 생각을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 개의 대칭을 찾으면 거기에 붙잡혀서 다른 대칭을 보지 못한다. 관측자의 개입 때문이다. 객체를 바라보는 자신을 개입시키는 순간 사유는 망하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은 구조자의 목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잘못되고 만다. 관측자는 무의식적으로 관측대상을 붙잡는다. 그것은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칭을 보지 못한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


    곰이 연어를 잡아서 옆구리에 낀다. 한 마리를 잡아서 옆구리에 낄 때마다 먼저 잡힌 연어가 빠져나간다. 인간은 하나의 관점에 붙잡혀서 다른 각도에서 보지 못한다. 이에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 대칭된 상태에서 또 다른 대칭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대칭 속의 대칭이 있다. 대칭은 포개져 있다. 질대칭 속에 입자가, 입자대칭 속에 힘이, 힘대칭 속에 운동이, 운동대칭 속에 량이 있다. 항상 배후에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이 찾아야 할 플러스알파다.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한 맞물림을 추적하여 우리는 감추어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인과율을 배워서 원인과 결과의 대칭을 안다. 우리는 관측대상을 고정시켜 놓고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하나의 대칭을 찾는다. 그러나 사건은 단계적으로 움직이며 연속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움직이는 것이며 더 많은 대칭이 숨어 있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판도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가 요구된다. 연속적인 대칭을 포개서 한 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이 배워야 할 연역적 사유이자 모형적 사유다. 시스템과 메커니즘과 스트럭쳐와 액션과 코드가 포개져 있다. 다섯 가지 대칭을 동시에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나란히 변하는 것이다. 나란히 가며 변하지 않는 것은 대칭의 축이다. 대칭은 토대가 되는 축을 공유한다. 원자의 공유결합과 같다. 지식은 사건을 추적하며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대칭을 이용해서 변화량을 알아낸다. 안팎의 에너지대칭, 상하의 물질대칭, 좌우의 공간대칭, 전후의 시간대칭, 표리의 정보대칭이 사건을 진행시키며 각각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이룬다.


    메커니즘은 두 변화가 나란한 것이다. 두 개의 움직임이 맞물려 돌아간다. 거기에 에너지 입출력을 더하면 시스템이다. 포병이 대포를 쏜다면 장약의 증가와 사거리의 증가가 비례한다. 둘이 나란히 간다. 맞물려 돌아가는 둘 사이에 변하지 않는 하나가 있다. 그 변하지 않는 것이 변했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측자의 이동이다. 관측자가 움직인 정도를 알아내면 우리가 원하는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나란히 가는 장약의 변화와 사거리의 변화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대포의 고각을 변화시켜 포병은 명중탄을 쏠 수 있다. 구조로 엮여 나란히 가는 두 가지 변화 중에 변하지 않는 하나를 찾아 그것을 변화시킬 때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두 개의 바퀴가 축에 잡혀 있다. 바퀴는 돌아도 축은 돌지 않는다. 자동차의 치동기어는 돌지 않는 축을 돌려서 문제를 해결한다. 디퍼렌셜 기어에 의해 자동차가 커브를 돌 수 있는 것이다. 변화가 대칭적으로 엮여 있을 때 축은 변하지 않지만 외부 관측자에 대해서는 축이 움직인다. 바퀴축은 돌지 않지만 도로가 굽어져 있다. 여기서는 도로가 관측자다. 변하지 않는 것의 변화를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 숨은 플러스알파가 되는 사건의 기세다.


    어떤 것이 있다면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나 그것이 환경과 맞닥뜨리는 방식이다. 우리가 활을 쏘는 방식이거나 혹은 활이 과녁에 맞는 방식이다. 활을 쏘는 궁수와 화살에 맞는 과녁은 내부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 바깥의 관측자다. 적군이 활을 쏘면 과녁을 이동시키면 되고, 우리가 활을 쏠 때는 겨냥을 이동시키면 된다. 표적을 바꿀 수도 있고 조준선을 바꿀 수도 있다. 이쪽 저쪽에 하나씩 있다.


    대칭을 이루고 나란히 변하며 메커니즘을 이룬 두 톱니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축을 찾아 그것을 변화시키면 된다. 그것은 바깥에 맞닿아 있다. 그것이 시장에서는 이윤이고 집단에서는 권력이다. 그것은 가속도 혹은 관성력이다. 그것은 백래시로 나타난다. 백래시는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려고 할 때 갑자기 튀어나와서 완강하게 거부하는 힘이다. 검사들이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재정권 때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민주정부가 검찰개혁을 한다고 하자 갑자기 고개를 들고 기세를 올린다.


    그 힘은 숨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기계장치가 방향을 틀 때 톱니가 진동을 일으키고 굉음을 낸다. 그것은 주로 생산력의 혁신의 형태로 숨어 있다. 혁신은 산업에도 있고 문화에도 있다. 기득권은 주가에 반영되어 있고 혁신의 기세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발력이며 복원력이다. 잠복해 있다가 현상을 변경하려 하면 드러나므로 감추어진 플러스알파. 그것을 알아낼 때 우리는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상은 전방위로 대칭되어 있고 대칭은 밸런스를 가지며 밸런스는 복원력이 있다. 플러스알파의 힘이 걸려 있다. 외부에서 작용하면 자체의 복원력에 의해 원위치 된다. 우리가 외부에서 어떤 방법을 쓰면 상대가 반드시 맞대응을 한다. 외부에서 들어가는 것은 모두 노출된다. 상대의 맞대응에 의해 다시 50 대 50으로 팽팽해져 버린다. 이기려면 은밀히 축구장을 기울이는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한다. 그것은 내부에서 낳아내는 것이다. 흥부가 내부에서 자꾸 자식을 낳아서 세를 늘리면 놀부도 당해낼 방법이 없다. 구조는 내부에서 마이너스를 하므로 외부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언제나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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