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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90 vote 0 2020.08.27 (16:07:46)

      

    본질주의와 도구주의


    본질주의는 현상 저 너머에 거룩한 이데아가 있다고 믿는다. 대단한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들이 멀리서 진리를 섬길 뿐 결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멀리서 신을 섬길 뿐 신과 대화하지 않는다. 종교인이 그러하다.


    신을 팔아먹을 뿐 탐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모셔둘 뿐이다. 절대로 고장 나지 않는 차는 한 번도 타지 않은 차다. 완전성을 말하려면 불완전성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는 진실은 외면한다. 진리와 대중을 분리하고 가운데서 독점하고 차단한다.


    신을 모신다고 말하지만 신 입장에서 보면 신을 감금한 것이다. 동탁과 조조가 헌제를 가둬놓은 것과 같다. 역적들은 황제를 인질로 잡고 민중을 통제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종교인은 신의 역적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본질주의는 진리의 적이다.


    도구주의는 이데아는 없고 단지 메커니즘이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진리를 부정한다. 설사 진리가 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둘 다 이원론이다. 공통적으로 본질과 현상 중에서 본질에만 집착하거나 현상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메커니즘이 본질이다. 메커니즘은 연결수단이다. 어떤 대상이 있다면 인간과 연결된다. 진리든 신이든 이데아든 영혼이든 본질이든 마찬가지로 인간과 연결된다. 그런데 연결 그 자체가 진리다. 진리는 있다. 연결체로 존재한다.


    사건은 연결되는 과정에 복제된다. 진리의 내용이 연결수단인 도구에 반영된다. 반대로 도구를 추론하여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도구가 먹혔다면 그 도구에 진리의 속성이 얼마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먹히지 않는다면 그 도구는 버려야 한다.


    차가 있다면 차의 성질은 운전기술에 반영된다. 장님 운전기사가 있다고 치자. 한 번도 차를 본 적이 없지만 운전에 능숙하다면? 그 장님은 차에 대해서 상당히 파악할 수 있다. 보지 못해도 알 수 있다. 차의 속성이 운전기술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만유는 서로 연결된다. 그 과정에서 복잡해진다. 중복과 혼잡 때문이다. 같은 것의 반복과 이질적인 것의 침범이다. 복잡을 제거하여 중복을 걸러내고 혼잡을 분별하는 것이 추상이다. 추상을 하면 본질이 파악된다. 복제본에서 원본의 향기를 느낀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원본과 복제본을 별도로 나누지 않는다. 진리와 자연이 다르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 인간을 관찰하여 자연을 알 수 있고 자연을 관찰하여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도구는 언어다. 언어를 관찰하여 자연을 안다.


    언어는 소통된다. 자연 역시 소통된다. 진리 역시 소통의 진리다. 인간의 도구 속에 진리가 반영된다. 언어 속에 완전성이 있고 이데아가 있고 영혼이 있고 신이 있고 진리가 있고 도가 있다. 언어 속에 다 있다. 만약 없으면 소통이 불통하여 사어가 된다.


    구조론은 언어에서 시작한 것이다. 언어는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불통하면 실패이고 소통하면 성공이다. 자연 역시 소통과 불통의 메커니즘으로 존재한다. 산이 높고 물이 깊은 것은 소통의 결과다. 무수히 그 코스로 지나간 자취다. 그 길이 이겼다.


    태백산이 우뚝한 것은 산이 높아서 이겼기 때문이다. 한강이 유장한 것은 물이 깊어서 이겼기 때문이다. 펜은 손가락을 닮고 컵의 가장자리는 입술을 닮는다. 잘 보면 보인다. 진리와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연속체다. 톱니가 맞물려 도는 메커니즘이다. 


    진리는 전개하고 자연은 진화하고 인간은 진보한다. 도구는 핸들링 된다. 다루어진다. 진리는 play다. 진리는 게임이며 곧 상호작용이다. 옳고 그르고 판단이나 OX 선택이 아니라 부단한 핸들링이다. 진리는 깊은 절간에 유폐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진리는 현실에 개입하여 핸들링한다. 세상을 게임으로 보고 플레이로 보고 상호작용으로 보고 다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이 관점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를 초월한다. 그런데 진보가 앞선다. 진보가 에너지 입구다. 보수는 배설이다.


    둘 다 필요한데 순서가 있다. 진보를 가진 자는 보수를 구슬릴 수 있으나 보수만 가진 자는 진보를 설득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진중권은 진보였다가 변절하여 보수로 팔려 갔지만 변희재는 진보로 온다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본질이 도구다. 도구는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둘을 연결한다. 둘인데 마치 하나처럼 행세한다. 둘이 커플인데 표는 한 장만 끊어서 동반 입장한다. 대칭에 의해 둘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원리로 세상이 널리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둘의 연결을 끊거나 잇는 방법으로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 다룰 수 있다. 상대가 있는 게임에 참여하여 플레이할 수 있다. 이기면 다음 게임에 초대되고 지면 죽어서 없어진다. 세상은 커플이므로 파트너를 다루는 방법으로 작동한다. 




[레벨:3]고향은

2020.08.27 (17:17:07)

삶의 본질은 우리를 소통으로 이끈다

소통은..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서 침습한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서로가 스며들어서
하나가 된다

동일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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