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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306 vote 2 2008.12.29 (23:49:06)

지성인이 되는 방법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여 진리를 발견하였다. 진리는 본래 접혀 있다가 점차 펼쳐지는(physica) 속성을 가진다. 씨앗처럼 움츠리고 있다가 봄을 맞이한 새싹처럼 펼쳐져 나온다. 그래서 자연학을 physica라 부르게 되었다.

*** 라틴어 어원으로 보면 ‘육체, 자연, 생리, 물리’ 등이 모두 ‘펼쳐진다’는 뜻을 공유함을 알 수 있다.

점점 커지며 더욱 커진다. 사방을 망라한다. 폭넓게 전개한다. 활짝 피어난다. 그것은 자연의 원리이다. 인간에게도 그러한 성질이 있다. 문명의 진보가 그 증거다. 문명은 새싹처럼 자라나고 꽃처럼 피어난다. 점점 발달한다.

자연과 인간의 피어나고 뻗어가는 성질이 통한다. 자연의 그 씨앗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러한 성질을 가진다. 불완전한 씨앗은 싹트지 않는다. 인간에게 또한 그 완전성이 숨어있다. 불완전한 인간은 문명을 꽃피우지 못한다.

자연에 본래의 완전성이 원리의 형태로 숨어 있듯이, 인간에게도 그 완전성이 숨어 있다. 그것이 이성이다. 서구의 근대주의는 이성의 발견으로 부터 촉발되었다. 그 이성의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우는 것이 지성이다.

중요한 것은 펼쳐짐이다. 사방으로 폭넓게 뻗어나가야 한다. 큰 나무처럼 자라나는 그것은 시스템이다. 고립된 개인은 지성의 꽃을 피울 수 없다. 지식의 축적과 사회적 소통 형태로 시스템이 뻗어나가야 꽃 피울 수 있다.

지성은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의 중심에 대학이 있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으로 선전된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국민의 상위 5프로만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에는 그랬다.

지성은 인류가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와 소통하여 문명을 건설하여 가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기계와 같은 단일 목적의 폐쇄형 시스템이 아니라 개방적 성격의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 시스템이라는 데 있다.

기계적 폐쇄적 시스템이라면 훈육된 지식인으로 충분하다. 기계는 입력과 출력이 대응한다. 지식을 주입한 만큼 성과를 토해낸다. 생명 시스템은 다르다. 생명은 증폭한다. 하나가 울면 그 울림과 떨림이 천하에 전파된다.

봄에 새싹이 돋듯이 천하가 일제히 깨어난다. 폭발한다. 분출한다. 혁명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생명 시스템이 진짜다. 기계 시스템은 짝퉁에 불과하다. 생명 시스템에서는 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체내에서 세포 하나가 인간 유전자 전체를 가지듯이 누구든 한 개인이 신 앞에서 인류의 대표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이야말로 진정한 시스템이며 기계는 시스템이 아니다. 불완전하다. 가짜다.

기계는 불완전한 부품들이 의존적으로 협력한다. 피스톤은 왕복할 뿐이고, 샤프트는 전달할 뿐이고, 바퀴는 구를 뿐이고. 자판은 입력할 뿐이고 모니터는 출력할 뿐이고. 그 경우 부분이 멈추면 전체가 멈춘다.

생명 시스템은 다르다. 완전성이 그 안에 있다. 하나의 세포가 독립된 생명체와 같다. 한 명의 병사가 지휘관처럼 판단한다. 완전한 개인들이 평등하게 소통한다. 그러므로 하나가 고장나도 시스템은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기계 시스템.. 불완전한 부품들이 전체에 의존한다. 부분이 멈추면 전체가 멈춘다. 사전에 세팅되어 있는 단일 임무를 가진다. 진보하지 않는다.

생명 시스템.. 완전한 개인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한다.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자유자재로 임무를 변경한다. 진보하고 발전한다. 뻗어나간다.

진리의 빛이라할 이성이 인간 내부에 탑재되어 있다.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불어 문명의 시스템을 건설하여 갈 수 있다. 그 시스템은 독립적인 개인들의 수평적 소통 시스템이다.

지성인은 이상주의라는 꿈을 가지고 시스템 건설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지성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가이다. 이 땅에 지성인이 없는 이유는 아무도 그것을 주장하여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찌기 석가가 깨달음을 설파했으나 개인의 구원을 표방함에 불과했다. 대승불교가 사회에 눈 떴으나 위에서 아래로의 보살핌에 불과했다. 문명의 스스로 진보하고 발전하는 성질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선종이 수평적 소통 개념을 제시했으나 역시 진보의 개념이 없었다. 종교의 한계 때문이다. 천장이 있는 집 안에서 나무를 키운다면 어떨까? 그 나무는 방의 천장 높이 이상으로 자랄 수 없다. 분명한 한계가 있다.

모든 종교에는 천장이 있다. 교주가 있고 계율이 있다. 승려가 있고 신도가 있다. 이러한 차별이 울림과 떨림의 수평적 소통을 방해한다. 울림과 떨림의 증폭이 교회의 통제권 밖으로 달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무위의 도를 설파했으나 그 안에 문명의 진보와 발전이 없었고 공자가 시스템을 조직했으나 역시 기계식 상의하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상주의를 향한 가능성의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맹아 단계가 있었다. 조선의 선비 사회가 그렇다. 선비 계급에 한정되고 있으나 그 안에 이상주의가 있었다. 진보와 발전의 기운이 있었다. 오늘날의 산업사회와 모델이 다르지만 나름의 꿈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다.

지성인의 모델이 그 안에 있었다. 퇴계, 율곡, 우암이 한때 아성으로 꼽혔고 그 밖에 화담, 남명, 추사, 다산이 말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화담과 추사가 근접해 있었을 뿐이다. 적어도 필자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다.  

지성인은 학자여야 한다. 학문이 시스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템에 의존하는 인간은 아니다. 천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불교는 석가라는 천장에 갇혀 삭감당했고 조선의 사림은 퇴계라는 천장에 갇혀 낮아졌다.

천장을 두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탈출구는 문화 분야에 있다. 문화야 말로 그 어떤 권위에 의해서도 통제될 수 없는 순수의 영역이다. 서구의 르네상스가 기독교라는 천장을 능히 뚫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언제나 문명의 돌파구는 문화에 의해 개척되어 왔다.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면 동시대인들은 그들의 깃들어 사는 집이 좁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장을 높이는 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근대는 예술가가 만들었다.

화담과 추사가 각별한 이유는 문화의 탈출구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퇴계의 천장에 갇히지 않았던 이유는 타고난 열정 때문이다. 화담이 노장사상에 관심을 두었고 평민과 사귄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다.

추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양한 계급, 다양한 사상,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시스템을 존중하면서도 그 시스템의 천장에 갇히지 않고 독립적인 소통의 코어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종이 된 것이다. 그 종이 울릴 때 천하는 비로소  깨어난다. 만물은 싹이 트고 꽃을 피운다. 맥박이 뛰고 피가 흐른다. 만인이 각자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주어지는 것이다.

시스템의 완전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상주의를 품어야 한다.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악기를 울려서 소리를 내는 연주자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흔히 동량(棟梁)이라는 표현을 쓴다. 최악이다. 목수가 집을 짓듯이 사람이라는 재목 곧 인재를 깎고 다듬어 나라를 위하여 쓸만한 도구로 기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 시스템에 맞지 않다.

그 동량이라는 것은 우두커니 제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것은 19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재일 뿐이다. 후진국의 모범에 불과하다. 연주자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악기라는 것은 손으로 잡으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  

민중은 깎고 다듬고 제한하고 끼워맞춰 제 자리를 지키게 해야하는 건축재가 아니다. 손으로 잡지 말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면 각자의 다양한 소리를 낸다. 거기서 최고의 음을 끌어내는 것은 지휘자의 능력이다.

동량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끼어 자리나 지킬 뿐이지만 악기는 누구와 손을 맞추느냐에 따라 온갖 화음을 토해낸다. 최고의 음도 나올 수 있고 최악의 음도 나올 수 있다. 민중은 악기와 같아서 곱게 다루어야 한다.

동양정신에 진정한 지성의 모델이 있다. 깨달음의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담론이야말로 인간의 내부에 그 울림소리가 들어있다는 입장이다. 서구문명은 기독교라는 천장에 갇혀서 지성이 질식되었다.

칸트가 진리의 빛이라 할 이성을 주장했고, 헤겔이 진보 시스템 개념을 제시했으며 니체가 그 기독교라는 천장을 철거했다. 그러나 서구는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라는 천장에 제한당하고 있다.

반종교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의 언설이나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의 입장 역시 기독교라는 천장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기독교를 반대해도 역시 기독교 논리로 반대할 뿐이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단지 기독교의 원죄 개념을 자본주의 개념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현대인은 모두 자본주의라는 원죄의 굴레를 쓰고 있어서 누구도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혁명 세례로도 부족하다.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철학담론은 원죄의 천장과 자본주의 천장 사이에서 ‘네 천장이 더 낮다’는 우기기에 불과하다. 그들에게서 진정한 자유혼을 찾기란 불능이다. 깨달음으로만이 그 천장을 뚫을 수 있다.

● 종교를 끊어야 한다. 담배 끊듯이 확 끊어버려야 한다. 종교의 신앙자들과는 일정한 단계 이상의 수준높은 대화가 불가능하다. 종교인은 말하자면 자발적 노예들이다. 노예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해롭다.

● 자유에 중독되어야 한다. 그대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그대를 규정하는 온갖 사회적 포지션에서 냉큼 벗어나야 한다. 계급, 신분, 성별, 명성 따위에 구애됨이 없어야 한다. 언제라도 고독한 무소속이어야 한다.

● 신의 편, 진리의 편, 역사의 편, 문명의 편, 진보의 편,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무엇보다 역사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현대성의 개념을 얻어야 한다. 현대성을 상실한 낡은 관념은 설 자리가 없다.

● 자기만의 세상을 보는 안목과 논리, 판단기준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심미안을 들 수 있다. 미학적 안목을 얻으면 쉽게 세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 최고인 사회야말로 진정한 이상사회다.

●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과학자, 모험가, 예술가, 명상가, 시민운동가, 작가와 교유해야 한다. 같은 직업, 같은 계급, 같은 그룹, 같은 연고를 가진 사람끼리만 모여서 지식의 근친교배를 일삼는다면 최악이다.

● 합리주의 전통을 따라야 한다. 학문은 인류의 공동작업이다. 큰 강의 줄기에서 지류로 가지를 치듯 인류지식의 총괄이라는 큰 줄기에서 뻗어나가야 한다. 지식의 큰 바다와 연결의 접점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주의다.

종아리가 굵어지도록 자연과 접촉해야 한다. 직관력의 날을 세우는데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칼같이 갈아서 감성의 날을 세워야 한다. 탈출구는 언제나 바깥에 있고 돌파구는 언제나 창의에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생각을 해야 한다. 일만 편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직관력을 기르고 심미안을 길러야 한다. 가려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그럴 때 세계와 통할 수 있다.

www.gujoron.com.


[레벨:2]이심전심

2011.06.17 (15:22:51)

정말 멋진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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