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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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937 vote 1 2015.03.25 (23:19:35)

     

    역사를 바로 알자


    ‘임진왜란은 명나라의 대포와, 조선의 편전과, 일본의 조총이 한 판 자웅을 겨루어 본 사건이다. 이들 사이에 우열은 판가름나지 않았고, 서로 보기 좋은 대등한 승부를 했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평가다. 그 시대 기준으로 말하면 작은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인들은 처음으로 일본인과 중국인을 구경했다. 중국군에 묻어온 흑인군대도 구경했다. 이 일로 조선인들은 어쩌면 조선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일 수도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중국의 복식과 차별화된 한복을 발전시키는 등 민족의식이 일어났다.


    팟캐스트 녹음을 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뒤틀려 있기 때문에 도무지 견적이 안 나와준다. 근본적으로 관점이 뒤틀려 있다. 필자가 단편적으로 한 마디씩 해서 답이 나와줄 상황이 아니다. 개별적인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


    조조의 왕위찬탈 후 중국사는 한 마디로 개판이 되었다. 찬탈과 혼란은 계속되었다. 그 모든 책임은 첫 단추를 꿴 조조에게 있다. 이것이 맥락이다.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기가 있다. 도쿠가와 이후 일본이 잘 나갔으니까. 망했다면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전체의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소박한 감상주의는 곤란하다. 한국 역사학자들은 전부 이상한 병에 걸려 있다. 치열한 세계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임금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거다. 한 마디로 찌질이 역사관이라 하겠다.


    전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면 수백만명씩 죽어나가는게 예사다. 페스트가 휩쓸고 가면 남는게 없다. 러시아 남부에서 아랍으로 팔려간 노예는 물경 천만에 가깝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의 역사는 평온+평온이 계속되어 어디 가서 역사라고 내세우기도 어려운 판이다.


    다행히 중국의 대포, 조선의 편전, 일본의 조총이 한 번 겨루어 본 임진왜란이 있었기에 그나마 세계사 한 귀퉁이에 꼽살이 낄 근거가 생겼다. 아니면 통째로 공백이 될 뻔 했다. 임진왜란은 감상에 젖어 눈물이나 짜고 찌질댈 기록이 아니라 획을 그은 굵은 임팩트다.


    조선정신의 어떤 등뼈 역할을 했다. 안목을 틔웠고 스케일을 키웠다. 시골촌넘이 서울 구경 한 번 한 것과 같다. 이후 건방이 들었다. 호연지기를 키워 내친 김에 청나라를 토벌할 계획까지 곧바로 치달은 것이다. 그때는 청나라가 아는 세계의 90퍼센트였는데 말이다.


    왜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가? 625만 해도 그렇다. 세계가 한 자리에 모여 2차대전 한 판을 통 크게 벌였다는데, 논공행상이 요란하다는데, 조선인들은 끼지도 못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왕따될 판이다. 초대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부러워 입맛을 다졌다.


    제자리에 가만 앉아있지 못하고 엉덩이가 굼실굼실, 어깨가 들썩들썩 했다. 마이크 잡고 싶고 춤 추고 싶었다. 3.1만세만 해도 그렇다. 1차 세계대전에 초대장 받지 못한 아쉬움에 뭐라도 한 판 벌여야 했다. 세계를 향하여 나 여기 있소 하고 고함 한 번 질러야 했다.


    그래 만세라도 세게 불러보자. 변방사람의 목소리였다. 고요한 은자의 나라에서 소리 한 번 났다. 625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초대받지 못했다면 거꾸로 초대하면 될 것이 아닌가? 발상의 전환이다. 해방 직후 곧바로 테러정국이 일어났고 암살이 끝도없이 계속되었다.


    세게 한 판 붙어보자는 열망이 넘쳐 흘렀다. 다들 눈에 핏발이 섰다. 괜히 주먹을 불끈 쥐고 동구밖을 서성거렸다. 불길한 전조. 몰려드는 먹구름. 이후 일사천리로 가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나? 작은 3차대전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좁아터진 삼천리에 몰려왔다.


    88 올림픽은 스포츠로 한 푸닥거리 한 거지만 625는 총으로 한 거다. 세계의 모든 신문기자가 몰려온 판에 백마고지를 잃을 수 없다. 한국인의 깡을 보여주는 거다. 독이 바짝 올랐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남들이 쳐다보고 있으면 연극 칠수와 만수라도 뛰어내린다.


    중국도 북한도 마찬가지 심리다. 세계가 보는데 뭔 짓을 못하랴. 어찌 보면 유치하지만 그게 지금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인간이 그렇다. 옳고 그름을 떠나 밑바닥 에너지가 고여있는 거다. 그 에너지 다 분출될때까지 불은 꺼지지 않는다.


    김일성 때문이다. 이승만 때문이다. 히틀러 때문이다. 하는 초딩 역사관이라면 곤란하다. 쪽 팔리지 않나? 글자 아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물론 김일성, 이승만이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게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가? 낯 간지럽다.


    625는 2차대전의 여진이다. 인류는 그렇게 깨지고도 미련이 남았던 거다. 다들 또 없나 하고 두리번 거릴 때 그 시선을 읽은 한국인들이다. 세계사의 중심에 서 보고 싶었던 거다. 지금 한국은 다시 일어났다. 어떻게든 세계의 중심무대에 서 본 민족은 반드시 일어난다.


    이차대전에 참전한 나라들은 지금 모두 강국이 되어 있다. 그게 역사다. 역사는 역사 자신의 내재한 법칙을 따라간다. 그것은 문명의 이동이다. 동력이 고갈되면 새로운 배후지를 찾아 산불이 번지듯 문명은 날로 번져간다. 근대문명은 서구에서 처음 몸뚱아리를 일으켰다.


    신대륙으로 진출하더니 이윽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상륙하고 이제 한국을 발판으로 삼아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문명의 몸짓을 읽는다. 그리고 뭔가 기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흥선대원군 때문에, 고종황제 때문에, 노론 때문에, 명성황후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둥 이런 초딩생각은 곤란하다. 역사가 애들 장난이냐? 문명은 거대한 에너지다. 결따라 가는 것이다. 그때 그시절에 일본 쪽으로 문명의 결이 나 있었기에 문명이 일본으로 간 것이다.


    조선은 영조 때부터 청나라에 예속되어 이양선을 두려워 하며 아무런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다. 오랑캐가 된 청나라와 일본을 빼고 이제 우리가 문명의 중심이라는 기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전략을 잃어버렸다. 이게 크다. 전략이 보여야만 인간은 일어선다.


    일본은 칼 쓰는 사무라이라 미국의 대포에 굴복했다. 조선은 글 쓰는 양반이라 에디슨의 전구에 굴복했다. 경복궁에 켜진 전구를 구경하자 단번에 생각을 바꾸었다. 무력으로는 전략이 안 나와주는데 지혜로는 전략이 나와주기 때문이다. 글 읽는 선비도 할 일을 찾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의 탄식이 그러하다. 조선인 중에는 기술 배우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주제에 저마다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어 세계를 가르치려고 든다. 그렇다. 조선인들은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멋진 시를 쓰고 철학을 발표하여 세계를 흔들려 했다.


    밥 먹고 사는데 관심이 없다. 그래봤자 양반이냐고. 오직 세계를 뒤집어 놓는데 흥미가 있을 뿐이다. 대포를 보고도 무武로 안 나오던 전략이, 전구를 보자 문文으로 나와준 거다. 동학하던 백범 김구선생도 갑자기 필 받아서 환등기 들고 계몽운동 한다며 돌아다녔다.


    조선의 선비가 세계를 가르치는 거다. 전략이 나와주자 흥분해 버렸다. 그리고 625를 겪으면서 한 번 휘저어 놓은게 봉건관습을 깨뜨리고 일어서는 발판이 되었다. 전쟁이 별게 아니고 촌넘이 서울 구경하고 스케일 키우는게 전쟁이다. 휘저어 놓아야 의사결정 된다.


    조급해 할 것 없다. 얼마전 까지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국가 중의 하나였지만 문호를 개방하자 단번에 선진국 되었다. 한국도 환율 내려가면 단 번에 5만불이다. 경제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전략이 중요한 것이며 시각교정이 중요하다. 스케일이 중요하다.


    명성황후 때문이라는둥, 고종황제 때문이라는둥, 노론 때문이라는둥 찌질이 찐따같은 개소리 좀 하지 마라. 어린애냐?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 미워.’ 초딩이냐? 세계사 차원에서 문명의 흐름에 올라타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때가 되어야만 한다.


    마오리족은 석기시대 수준에서 영국인을 만났다. 애보리진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석기시대 수준에서 영국인을 만났는데 마오리족은 영국인을 닥치는대로 때려죽였고 이후 존중받고 있다. 총독관저가 불타서 총독이 바다 위의 함선으로 도망치기도 했을 정도이다.


    같은 석기시대의 애보리진은 한 것이 없다. 이후 비참해졌다. 애보리진과 마오리는 대접이 딴 판이다. 구르카 사람은 입에 단검 하나 물고 깊은 밤에 영국군 막사로 기어들어가서 닥치는대로 찔러죽였다. 영국군 3만을 물리치고 이후 구르카 용병으로 이름을 떨쳤다.


    줄루족도 창들고 쳐들어가서 영국군 천여명을 몰살시킨 예가 있다. 역시 존중받았다. 이후 영국인과 협력해서 중간계급 노릇을 하는 등 대접을 받았고 민족회의를 이끈 만델라와는 미묘한 긴장관계가 되었는데 아직도 줄루족은 남아공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


    목표가 있느냐.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느냐. 방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조총을 들었지만 일본군은 대가리 숫자로 이긴 거다. 조선인 포로를 앞장세워 숫자를 채우기도 했다. 조선은 절대 병력숫자에서 압도되었다. 명군이 와서 숫자를 맞추자 대등해져 보급싸움이 되었다.


    지금 중국은 한 번 내부를 추스르고 목표를 정하자 단 번에 강해졌다. 한국 역시 목표가 있느냐. 방향이 정해졌느냐. 내부를 잘 추슬렀느냐가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전략이 나와줘야 한다. 전략은 지정학적 조건에서 나오는 거다. 그 다음은 자주적인 외교로 미는 거다.


    때가 아니면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된다. 때가 되면 저절로 술술 풀린다. 그게 역사다. 제발 찌질이 역사관을 극복하자. 스스로 약자 포지션에 기어들어 가는 찐따짓은 곤란하다. 누구 때문에 타령좀 하지 마라. 쪽 팔린다. 바보인증이다. 역사는 역사 자신의 법칙이 있다.


    길이 보이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가는게 인간이다. 지금 중동에 왜 가냐? 미쳤냐? 카타르와 쿠웨이트에서 밀주나 제조해서 팔아먹는 북한 노동자하고 경쟁할 일 있냐? 갈 때가 되면 가지마라고 해도 가고, 때가 아니면 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간다. 역사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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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발가락 아래로 굽어보는 호연지기를 갖추지 못한 찌질이 역사학자들에게 '닥쳐!' 이 한 마디를 전해주고 싶소. 역사에서 중요한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전략이며, 그 전략은 문명의 이동 + 지정학적 특성 + 그 민족의 장점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안될 때는 발악을 해도 안 되고, 될 때는 눈만 찡긋해도 술술 풀립니다. 때가 되어서 된 거지 결코 박정희 덕이 아닙니다. 그때 김대중이었으면 더 잘 되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숨죽이고 있었던 조상탓 하지 맙시다. 그때는 분위기가 그래서 그랬을 뿐입니다. 

   


[레벨:6]빛의아들

2015.03.26 (08:57:38)

왜 한국이 강대국인가를  직접적으로 증명해주는 말씀이군요! 

기술로는  독일과 일본이 앞설지 몰라도 

철학적 사고로는 한국을 앞설수 없겠지요. 

단지 찌질이들이  많거아 무관심족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깨어있는 한국인들이  세계를 주름잡을 날이 멀지 않을것같은데...

환율?  김영삼때의 환율만 같아도 지금 3만불이 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5.03.26 (09:05:23)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명박근혜류들이 설치는 것이고....

[레벨:4]고다르

2015.03.26 (11:58:20)

역사 용어 부터 정리해야하지 않을까요? '임진왜란'이란 말 부터가 지나치게 일국사적 관점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임진년에 왜넘들이 처들어와서 난리났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용어를 가지고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논의가 불가능합니다. '동아시아 3국대전' 또는 '임진전쟁' 이란 말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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