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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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04 vote 0 2018.07.20 (11:55:32)

      
    간화선의 의미


    했던 이야기지만 말을 보태자. 화두를 참구해서 뭔가를 깨닫는 일은 없다. 그러나 뭔가를 깨달은 사람이 화두를 고리로 그 깨달음을 들키는 일은 있다. 지금은 할 일 없는 사람이 산중에 틀어박혀 엉덩이가 구들장에 눌어붙도록 좌선하고 있다지만 당나라 시절만 해도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 이 분야에 달려들었던 거다.


    그들 중에 일부가 주변에 얼쩡대다가 들킨 것이다. 육조 혜능이나 마조 도일이 그런 사람이다. 이런 건 금방 표시가 난다. 언어의 격이 다르다. 좀 아는 사람은 고급 언어를 쓴다. 쓸데없이 외래어를 구사하며 유식한 척 배운 티를 낸다고 그게 고급 언어가 아니다. 말했듯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주관적인 표현을 쓴다.


    자기소개 하지 말라는 거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자사의 성이나 퇴계의 경은 격이 떨어지는 주관적 표현이다. 창피한줄 알아야 한다. 정이든 성이든 혼자 자위하는 거다. 그런 말은 입 밖에 내는 게 아니다. 용서, 감사, 행복 이런 주관적인 단어 주워섬기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자. 수준 떨어진다.


    선문답이라는게 별게 아니고 큰스님이 언어를 베풀은 다음 동자가 답하면 때린다. 혹은 귀에다 고함을 지른다. 덕산의 방이요 임제의 할이다. 마조는 코를 비틀었다. 질문에 대답하면 낚인 거다. 질문에 응답하지 말고 그 언어의 형식을 복제해야 한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간다. 탁구처럼 네트 위를 넘나든다.


    실패다. 주거니 받거니 문답하면 실패다. 스님들의 에피소드들은 상대의 질문을 무시하고 딴전을 피운 이야기다. 언어에는 맥락이 있고 관점이 있다. 언어의 틀을 봐야지 언어의 내용에 잡히면 안 된다.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스승이 된다. 그렇다고 송담처럼 그냥 묵언하고 있으면 아스퍼거 증후군을 들킨다.


    무슨 말을 하면 안 된다. 공자는 계통을 만든 것이다. 내가 네게 물었는데 답변이 되돌아오면 계통은 실패다. 일대가 이대에게 물었으면 이대가 삼대에게로 복제하여 그것을 전달해야 한다.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을 보면 실패요 달을 봐도 실패다. 무엇을 봐도 실패다. 눈을 감아버리는게 낫다. 가리킨다고 보냐? 말 돼?


    그 가리킴을 복제해야 한다. 동작을 흉내내도 실패다. 내가 이미 달을 가리켰다면 내가 해먹은 거다. 내가 해먹은 것을 재탕하면 표절 전여옥이다. 달은 내가 가리켜먹었고 임자는 다른 것을 해먹어야 한다. 일대가 2대에게 전수하는 것과 2대가 3대에게 전수하는 것이 같을 수 없다. 그 사이에 진보가 있어야 한다.


    언어에는 관점이 있고 맥락이 있으므로 그러한 관점과 맥락을 비틀 수도 있고 변주할 수도 있고 가지를 칠 수도 있다. 무자 화두를 들었다고 화두에 가치가 있는게 아니고 언어의 관점과 맥락에 주목해야 할 진실이 있으니 아는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게 아니고 어떤 단어를 주든 밤새 떠들 수 있다. 말이 끝나지 않는다.


    누가 내게 아무 단어나 한 단어를 주면 그걸로 쉬지 않고 3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초딩때부터 그랬다. 내가 도무지 말을 끝낼 낌새가 없으니 동생은 들어주다 못해 도망을 쳤다. 김삿갓이라고 치자. 무자를 주든 유자를 주든 어떤 운을 띠워도 그 자리에서 한시 300수가 그냥 나와준다. 도무지 끝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마이크를 쥐어 주면 3천곡을 앉은 자리에서 부를 수 있는 가수도 있다. 노래방 기계에 나오는 거의 모든 노래가사를 알고 있다. 진짜 3천곡을 해내는지 세어보지는 말자. 필자도 오기로 검은 것은 흰 것이고 흰 것은 검은 것이다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석달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냥 그래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게 되니까. 안 되면 그런 뻘짓을 하겠는가? 누가 내게 물으면 왜 검은 것이 흰 것인지 동서고금의 자료를 동원해서 썰을 풀 수 있다. 색깔의 정의부터 새롭게 하자. 언어에 맥락이 있고 관점이 있으므로 변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지 질문과 답변이라는 형식에 낚이면 안 되고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


    한 알의 사과가 있다면 그 사과는 명사일 수도 있고 동사일 수도 있고 주어일 수도 있고 술어일 수도 있다. 전제일 수도 있고 진술일 수도 있고 명제일 수도 있고 담론일 수도 있고 조건문일 수도 있고 반복문일 수도 있다. 하수들은 그냥 과수원의 사과를 떠올리겠지만 고수는 이런 언어환경부터 세밀하게 점검하는 거다.


    할 하고 방 하는 것은 남의 질문에 답변하려다가 낚이지 말고 이런 환경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누가 갑자기 뒤에서 목덜미를 움켜잡으면 깜짝 놀라서 주변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치다. 그게 서프라이즈다. 할과 방은 말하자면 서프라이즈 이벤트다. 요즘은 젊은 연인들이 생일행사에 한다는 깜짝 이벤트와 같은 것이다.


    질문은 남의 언어이니 손대면 안 된다. 내 언어로 응수해야 한다. 산이 높다고 운을 띄우면 물이 깊다고 댓구를 쳐야지 와 높구나~! 하고 추임새를 넣으면 안 된다. 좀 아는 사람들의 세계가 있는 것이며 그 세계는 강력하다. 에너지가 있다.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기 언어를 연결시켜 가는 재미다.


    언어에는 임자가 있으니 반응해봤자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의 것이다. 내 언어를 가져야 한다. 자기식으로 변주해 보여야 한다. 화두를 가지고 뜻풀이 한다며 낑낑대는 자들은 초등학교 시절 시험치는 게 버릇되어 출제된 적이 없는 시험문제에 답을 달고 있으니 등신 짓거리다. 왜 남의 언어를 함부로 풀어버리려고 하는가?


    연결해야 제대로다. 기관차를 두었으면 거기에 객차를 연결해야 한다. 언어에 맥락이 있다는 것은 궤도가 있고 플랫폼이 있고 기관차가 있고 객차가 있고 운전기사가 있고 승객이 있고 환송객이 있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연결되어 간다는 것이며 관점이 있다는 것은 각자 운행해야 할 자기 기차가 있다는 거다.


    어떤 주제든 운을 띄우기만 하면 밤새 떠들수 있는데 말하다 보면 내용이 길어져서 까먹게 된다. 자연스러운 연결이 끊어져 헷갈리므로 처음부터 반복한다. 서너시간 분량의 한 가지 레파토리를 서른번쯤 하다 보면 만족하여 다른 레파토리로 갈아탄다. 어린이가 같은 영화나 그림책을 30번쯤 반복하여 보는 것과 같다.

  

    사람과 말하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신경쓰여서 말하다가 잊어먹는다. 생각의 연결이 방해된다. 그러므로 결국 혼자 생각하게 되는데 몇 달씩 혼자 그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스님이 깊은 수행을 하는가 보다 하고 착각하는 것이다. 문제에 답을 찾는게 아니라 생각이 만들어져 가는 경로를 추적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유년기의 일을 기억하므로 한 살 때부터 생각이 차차로 업데이트 되어가는 과정을 전부 꿰고 있다. 그런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언어틀의 진화를 다듬어가는 것이며 그런 사람의 언어는 격이 다르다. 언어의 진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갑작스럽게 들키니 깨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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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피에스로빈

2018.07.20 (12:01:02)

그렇다고 송담처럼 그냥 묵언하고 있으면 아스퍼스 증후군을 들킨다.


그렇다고 송담처럼 그냥 묵언하고 있으면 아스퍼거 증후군을 들킨다.


오타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7.20 (12:04:41)

감솨~ 급하게 써서 오타는 더 있겠지만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8.07.20 (12:06:41)

일종의 메타인지로 읽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속에서 헤메지 말고 그 상황 바깥에서 안을 보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7.20 (13:04:13)

옳습니다. 

먼저 주변 환경을 보고


다시 그 환경의 중심을 봐야 사건이 복제되고 

사건이 복제되어야 계통을 얻고 


계통을 얻어야 비로소 에너지가 운행됩니다.

거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너지가 운행되어야 천변만화가 일어나 풍성해집니다.

풍성하냐 메말랐느냐를 보고 가치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공자와 플라톤은 이상주의가 있으므로 

자체 관성력을 이루어 풍성해지고


노자와 디오게네스는 남의 주장에 안티를 걸므로

그 안티의 대상이 사망함과 동시에 메말라 앙상하게 됩니다.

[레벨:3]창준이

2018.07.20 (12:30:39)

첫 단락에 "내노라"  >  "내로라"  인것 같습니다.ㅠㅠ 죄송합니다. ㅋ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7.20 (13:02:31)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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