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나라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가르칠 것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인생은 한정되고 배울 것은 많고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니 조급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기우일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해도 가르칠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우고,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들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을 묻는다면 나는 딱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감感과 기氣이다. 즉 안목과 자존감이라는 두 축이 어린 시절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감感은 다른 말로 안목이다. 감은 삶의 방향을 찾게 한다. 뿌듯한 느낌, 충일한 느낌으로부터 감을 잡아갈 수 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느낌을 형성한다. 허전하고 불완전한 느낌이 있고, 꽉 차고 온전한 느낌이 있다. 바로 그 느낌의 차이를 발견하고 충일한 느낌을 따라가는 일이 중요하다. 감을 잡는 것이다. 감이 깊어야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고, 어떤 길을 따라 가야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지 판단할 수 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감을 잡아야 삶이 바른 방향을 따라 가며, 바른 방향을 따라 가야 개인의 삶이 공동체의 방향을 감지하고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개인의 성공을 넘어 공동체의 성공이라는 대의를 발견하고 진정한 성공을 이루게 된다.
기氣는 다른 말로 자존감이다. 기는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힘을 준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주도권을 가지고 실현해나갈 힘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재능이 아니다. 창의성은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소통 가능한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 것까지를 말한다. 문제를 잘 풀고 성적과 아이큐가 좋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출발조차 할 수 없으며,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개인의 취미에 그치고 만다.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는 즉시 부정과 불신에 맞서야 한다. 수많은 불신과 오해를 무릅쓰고 세상에 없던 자신의 재능을 펼쳐내는 것이 바로 창의이며, 이러한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이다. 기가 살아있지 않으면 세상과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다. 이것은 연습을 하거나 누구에게 배워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존중 받고 있는 그대로 사랑 받으며 보낸 유년의 시간만큼 자존감은 자란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 이런 말은 그저 도피하기 좋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연습을 열심히 하는 까닭은 그 일에 계속 끌리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것, 그것이 재능이다. 연습을 열심히 해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지속적으로 반응하고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연습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다. 김연아의 성공 이후 사람들은 그의 엄청난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진실은 아니다.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김연아니까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안목을 길러야 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이 전개되는 전체 과정을 체험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봐야 한다. 그래야 감이 살아난다.
안목을 기르고 자존감을 형성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지만 특정한 교과목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환경이 변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눈앞의 목표에 집착하고 점수 매기는 단순한 평가로만 사람을 보아서는 감과 기를 살릴 수 없다. 무엇보다 가정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들 자신이 판단 내리고 그 결정에 따라 움질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안목이 자란다. 아이가 설혹 거짓을 말하더라도 일단 믿어주고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전적인 신뢰로부터 자존감이 자란다. 감과 기를 살려야 무슨 일을 하더라도 창의적인 성취를 거둘 수 있다.
기를 살리려면
'우리편'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하오.
인간에겐 기본적으로 두가지 전략이 있소.
우리편에 가담하여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
반대편에 서서 안티를 걸고 주류에 대항하는 것.
어느 쪽이든 인생은 편먹기요.
세상이 적이고 내가 고립되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방어적 태도로 변하고 그 결말은 비극이오.
그것을 유발하는 것은 트라우마요.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것은 폭력 혹은 고립이오.
그러므로 기를 살리려면
세상과 친해지는 방법, 공동체와 친해지는 방법,
진리와 친해지고 역사와 친해지는 방법.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하오.
세상이 적이 아니라 우리편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오.
기를 잃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무작정 집단에 의존하고 떠넘기고 도피하고 어리광을 부리거나
또는 과도한 애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 히스테릭한 행동을 보이거나
아니면 세상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해서
자기들만의 작은 또래공동체 따위를 만들려고 하게 되오.
이때 왕따, 이지메, 패싸움 등이 나타나오.
1) 의존적이고 나약하며 거짓말하고 남탓하는 비겁한 아이가 되거나
2) 히스테릭한 애국시민이 되어 약자를 탓하고 공연히 화를 내거나
3) 패거리를 이루어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장이 아이가 되는 것이오.
자존감을 얻으려면 일단 자신에게 가진게 있어야 하오.
돈이 있거나 빽이 있거나 신분이 높거나 이런 것은 가짜이므로 오래가지 못하오.
진짜배기는 첫째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지식.. 뱀이 무섭다거나 개가 무섭다거나 이런걸 극복하기.
둘째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지식.. 리더십, 친화력, 교양, 친구 등등..
셋째 세상과 맞서는 근본적인 전략.. 신에 대한 관점, 철학, 예술 따위.
이걸 갖추면 세상이 내집과 같이 편안해져서 기가 살아나게 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