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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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53 vote 0 2018.10.04 (16:20:23)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은 죄다 잊어라. 그건 철학이 아니다. 이발소 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뽕짝은 음악이 아니고, 주먹구구는 수학이 아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의 전통적인 회화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으며 서양의학이 등장한 후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은 더 이상 의학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옛날에는 무당의 주술도 의학의 범주에 포함되었지만 지금은 주술을 의학으로 치지 않는다. 동의보감에는 다양한 치료용 부적이 등장하지만 지금은 한의사도 부적으로 치료하지 않는다. 옛날 철학자들의 여러 가지 언설이 당시에는 철학이었지만 지금은 철학이 아니다. 강신주들은 철학을 전공했다 해도 철학자가 아니다.


    새것이 나오면 낡은 것은 사라진다. 구조론이 새로 등장했다. 구조론에 의해 철학은 평정되었다. 사회에서는 아직도 낡은 개소리가 먹히겠지만 구조론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틀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그런 것이다. 여기서는 받아들여야 하며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은 강퇴된다. 새로운 것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틀린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틀린 수학은 수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틀린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자들이 마구잡이로 지껄여대는 이유는 누구도 맞다 틀렸다 판정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은 검증하고 과학도 증명한다. 수학은 검산해보면 되고 과학은 재현하면 된다. 강력한 검증도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철학도 구조론이라는 강력한 검증도구가 나왔으므로 이제 다양한 개소리는 제껴버릴 때가 되었다. 구조는 사건을 연결하는 단위다. 모두 연결해보면 하나의 통짜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존재는 하나의 사건이며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며 거기서 각자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철학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종교의 답은 영혼이다. 원큐에 해결한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모든 철학적 의문은 소용없게 된다. 문제는 한 방에 해결되었다. 교회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헌금을 듬뿍 내면 된다. 그러나 아뿔싸! 영혼에도 급수가 있다는 점이 문제로 된다.


    노예는 영혼이 오염된 자다. 농노는 영혼이 더럽지만 세탁할 수 있다. 기사는 영혼의 급수가 높다. 승려는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다. 영혼의 급수를 올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 결국 해결된 것은 없다. 칸트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영혼의 대체재로 이성을 제시한다. 이성은 급수를 올리기가 쉬워서 나름 히트상품이 된다.


    영혼의 급수는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지만 이성은 평민이나 농노라도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면 된다. 선을 실천하고 악을 물리치며 정의를 행하여 집단 안에서 높은 평판을 받으면 이성의 급수가 올라간다. 그러나 쉽지 않다. 집단 안에서 갈고닦은 고상한 이성을 제시하여 높은 평판을 받으려면 기득권들에 고개숙여야 한다.


    니체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집단 안에서 점수를 올리기 어려우므로 자기 안에서 사건의 완결성을 추구하면 된다는 것이 생의 철학이다. 그래봤자 오타쿠가 혼자 노는 것이니 지적 자위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댈 수 있다. 실존주의다. 니체가 개인의 가능성을 조명한다면 실존주의는 집단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무엇이 다른가? 종교가 제안하는 영혼의 급수는 태어날 때 결정되고, 칸트가 제안하는 이성의 급수는 학창시절에 교육받은 정도에 따라 결정되니 과거의 것이며, 니체가 제안한 생의 철학은 현재가 중요하고, 실존주의는 미래까지 포함되는 점이 다르다. 영혼> 이성> 생의철학> 실존주의는 시간을 투입해 사건의 규모를 키운다.


    우주적으로 시간을 연장하고 사건을 키우면 어떻게 될까? 대신 나와 상관이 없어진다. 긴밀하지 않다. 공허해진다. 철학은 영혼을 찾는 것이다. 물론 영혼은 없다. 영혼이 있으면 철학할 이유가 없다. 하느님에게 잘보여서 천국 가면 된다. 그게 거짓임을 알기에 철학을 고민하게 된다. 이성이라는 단어가 근사하지만 다를게 없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의 잘난척에 불과하다.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만 이성이 있다. 범생이들만 칸트를 좋아한다. 영혼은 결국 권력의 다른 표현이다. 권력은 노골적인 단어라서 포장지를 바꿔놓은게 영혼이니 이성이니 하는 거다. 문제는 권력이 개인이 아닌 집단에 있는 점이다. 니체를 따르다 집단을 추종하는 파시즘 된다.


    실존주의 어쩌고 하지만 다분이 집단주의다. 개인을 강조하면 반항적이 되고 반사회적, 반동적, 퇴폐적이 된다. 그들은 사회와 마찰하다가 고립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답은 자명하다. 철학은 인간의 의사결정권이다. 의사결정권은 어디에 있는가? 신이 부여한다. 종교의 영혼설이다. 공부하면 점수 따서 의사결정권 획득한다.


    칸트의 이성설이다. 생각하자. 인간의 존엄성을 신이 줄 리가 없고 학교에서 줄 리도 없잖은가? 운전면허는 면허시험장에서 따지만 인간자격증은 누가 주는가? 공부 잘하면 인간자격증 주나? 그건 아니잖아. 인간자격증은 사건의 통제가능성에서 주어지며 사건의 통제권이 권력이며 그러므로 권력의지가 철학의 출발점이다.


    실존주의는 필연 사회적 권력으로 나아간다. 노자의 무리와 니체의 무리가 주장하는 권력은 대항권력일 뿐 주도권력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상대가 잘못을 저지를 때 거기에 맞서는 소극적 권력일 뿐 내가 스스로 창의하여 일을 벌일 적극적 권력은 아니다. 진정한 사건의 통제가능성 곧 인간 의사결정권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건의 완전성에서 비롯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원인에서 결과까지 간다. 시작에서 종결까지 간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간다. 질문에서 답변까지 간다. 부름에서 응답까지 간다. 권력은 부름에 호응하는 데서 얻어진다. 내게 권력이 주어지는 이유는 누군가 나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엄마가 꼬마에게 심부름 시킨다.


    꼬마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역할 안에서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꼬마의 권력은 심부름을 시킨 엄마에 의해 제한된다. 을의 권력은 갑에 의해 제한된다. 수동의 권력은 능동에 의해 제한된다. 받는 권력은 주는 권력에 의해 제한된다. 노예권력은 주인권력에 의해 제한된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부름에 응답하는 포지션에 서 있다.


    원초적인 인간의 한계다. 이 별이 내가 만든 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뜻하지 않게 불리워진 존재이며 태어날 때부터 성별과 피부색과 계급과 신분이 정해져 있다. 인간의 권력적 한계다. 철학은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불리워졌는가?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이 되는 것인가? 초딩들은 쉽겠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심부름은 맞게 하면 되고 공부는 백 점 맞으면 되고 취직은 대기업 들어가면 되고 결혼은 좋은 파트너 만나면 된다. 부름에 응답하기 쉽다. 어른은 어렵다. 어른은 불리워지는 자가 아니라 부르는 자 포지션에 서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사는가? 삶은 무엇인가? 맞대응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과 임무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게임이다. 환경과의 게임에서 내가 이겨야 한다. 하필 이 성별로, 하필 이 피부색으로, 하필 이 나라에, 하필 이 지능으로, 하필 이 신체로, 하필 이 시기에 나는 태어나 버렸다. 망한 거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거기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방법은 대표성의 획득이다. 답은 권력에 있으며 권력은 필연 집단주의를 내포한다. 집단주의는 인간을 친다. 인간이 다친다. 권력이 있으면서도 집단주의로 퇴행하지 않고 인간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광야에 맨 먼저 도착하여 깃발 꽂아놓고 부르는 사람이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기승전결로 전개하여 간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오단계로 진행된다. 질의 포지션에 서서 입자를 불러내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면서도 권력에 중독되지 않으며 집단으로 나아가면서도 집단에 종속되지 않는다. 정답은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며 호응하면 이미 권력없는 을의 포지션이며 호응하면서도 갑이 되는 것은 질에 서서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사건의 선두에 서서 다음 단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3대까지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 상부구조를 건설할 수 있다. 독립적인 에너지의 계통을 확립해야 한다. 사건을 이어갈 제자나 후배나 부하나 자식을 얻고 자식의 자식까지, 제자의 제자까지, 후배의 후배까지, 부하의 부하까지 계통을 이어야 비로소 다음 단계가 보장된다.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은 질 입자 힘까지 전개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내면에서 영혼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그런거 없고 외부에서 영혼과 동일한 것을 발견해야 하며 그것은 곧 우주이며, 그 우주 안에서의 사건이며, 그 사건의 전개이며, 그 사건의 통제가능성이며, 그것은 권력이며, 그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광야로 나아가 깃발을 꽂고 불러 일으켜세워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거기에 권력이 있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대표성이 진정한 권력이다. 내가 응답하고 내가 호응하고 내가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바보짓이며 노예짓이다. 남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점수딸 이유 없다.


    반대로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악이니 도덕이니 평판이니 하는 것은 타인의 인증을 받으려는 퇴행행동이다. 진정한 것에는 선악이 없고 도덕이 없고 정의가 없고 평판이 없으며 다만 권력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권력자가 되려고 하면 권력의 노예되는 것이며 권력을 이기려면 공자의 극기복례를 따라야 한다.


    그것은 권력을 추구하되 권력을 획득하지 말고 타인으로 하여금 권력을 욕망하게 하는 것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이다. 본인이 권력을 획득하려 하므로 괴력난신의 삿된 길에 빠지고 만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성권력의 줄 뒤에 가서 서는 방법으로 작은 권력을 획득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노예의 길이다. 


    남을 지배하려면 동시에 남에게 복종하게 되기 때문이다. 철학의 답은 영혼이다. 내 안에 영혼이 있음과 우주에 영혼이 있음은 완전히 동일한 무게에 완전히 동일한 비중을 가진다. 우주의 영혼은 완전성이며 사건의 통제가능성이며 에너지 방향성이며 우주가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존재함이며 사건의 다음 단계가 있는 것이다.


    그 구조 안에 인간의 역할과 기여와 포지션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주와의 그리고 진리와의 또 신과의 일대일 만남이 인생의 정답이다. 대표성이다. 진리의 부름에 응답하여 호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우주를 온전히 만났을 때 하나의 영혼이 성립하는 것이다. 찾아야 할 답은 바깥에 있으며 바깥과의 관계설정에 있다.


    인생의 의미는 내 안에서 무언가 견고한 알맹이를 찾아내 타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우월함을 인증받는게 아니라 내가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 전체와 만나 대표성을 얻는데 있다. 그것이 찾아야 하는 우주의 알맹이이며 우주의 영혼이다. 우주의 완전성이다. 신의 모습이다. 우주의 나아가는 방향성이며 지속가능한 생명성이다. 


    계통을 만들고 족보를 만들어 부름에 호응해야 한다. 부름은 환경이다. 당신의 피부색, 당신의 성별, 당신의 국적, 당신의 외모, 당신의 탄생시기가 당신을 불러낸 부름이다. 당신은 그렇게 세상에 의해 불리워졌다. 마땅히 응답해야 한다. 소년의 응답은 쉽다. 심부름 하라는 대로 하고 시험은 백점을 맞으면 좋은 응답이 된다.

 

    청년의 응답은 어렵다. 서울대 합격하고 미인 파트너 맞고 대기업 직장 알아봐야 한다. 그래도 해낼 수 있다. 어른의 응답은 매우 어렵다.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남의 권력에 줄대지 말고 나의 권력을 이루어야 한다. 내 자식을 낳고 내 패거리를 만들고 내 사업을 일구고 내 제자를 키우고 나의 벌여놓은 일을 승계시켜 가야 한다.


    2대로는 부족하다. 나의 자식은 부모에게 맞서고 나의 제자는 스승에게 맞서고 나의 부하는 상사에게 맞먹으려 하니 제자리에서 맴을 돌게 된다. 머리와 꼬리 사이에 방향성이 없다. 자식의 자식까지 제자의 제자까지 3대를 가는 에너지 흐름을 조직할 때 사건은 지속가능성을 얻는다. 그럴 때 1대에 대표성 권력이 주어진다. 


    세상은 질문과 대답,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앞과 뒤,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어 완전해지는데 의미가 있다. 개인에서 멈추지 말고 세계로 사회로 나아가 사회의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사람들의 권력의지를 들추어야 한다. 내가 무언가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세상을 격동시켜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것은 떳떳하고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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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국궁진력

2018.10.05 (04:31:15)

동렬님의 글치고 뭐 하나 꼽씹어 보지 않을 글이 없지만,

본문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정말이지 제게 큰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모든 철학 통사의 첫자락에 실려,

읽는 이의 '호연지기'를 불러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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