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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천분의일
read 726 vote 0 2022.07.14 (07:04:18)

Chapter8: The prospect after postmodernism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언설들의 본질은 집단의 동원력 문제다. 칸트의 이성은 엘리트를 동원한다. 기층민중을 동원하는게 사회주의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서 도시의 노동자 위주로 동원하고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농민 위주로 동원한다. 레닌주의니 모택동주의니 하지만 개소리고 그냥 형편대로 한 것이다. 20세기는 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다들 동원에 미쳐 있었다. 백만 받고 천만, 1억 받고 10억이다. 전체주의 광란이다. 젊은이들은 미친듯이 전쟁에 자원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탈근대 사상이 대두된다. 동원중독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탈근대는 20세기에 필요한 말이었다.

The essence pursued by concepts such as ideology or thought always be concluded to a matter of group mobilization. Kant's reason mobilizes the elite. Socialism mobilizes the basic people. Russia has a large land, so it mobilizes mainly workers in cities, and China has a large population, so it mobilizes mainly farmers. Both Leninism and Maoism are simply named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In the 20th century, thanks to the development of media, everyone was crazy about mobilization. One million mobilizes ten million, and one hundred million mobilizes one billion. It was an crazy era of totalitarian.The young men volunteered for the war like crazy. And postmodernism emerges as a reflection on it. It is to be wary of mobilization addiction. Postmodernism was a necessary word in the 20th century.

 

산업화로 너무 많이 동원되자 낯선 사람과 충돌한게 인종주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똘레랑스가 주장된다. 똘레랑스를 악용하는 자가 등장하자 앵똘레랑스에는 똘레랑스가 필요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탈근대든 똘레랑스든 정치적 올바름이든 시대상을 반영하는 지식인 세계의 유행어에 불과하다. 밑바닥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계몽되지 않은 우매한 대중이 뭐를 몰라서 화를 내는게 아니다. 책상물림 지식인들이 무관심할 뿐 다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마찰은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일어난다. 난민이 쏟아지고 이민이 급증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

When many people were mobilized due to industrialization, racism arose by colliding with strangers. Tolerance was claimed as a reflection on it. On the other hand, when people who abuse tolerance appeared, it was even said that intolerance did not need to be Tolerance. It is just a buzzword for a group of intellectuals who reflect the times, whether it is post-modern, political correctness, or tolerance. There is a physical collision at the bottom. It is not a matter of right or wrong. It is not that the unenlightened and foolish public get angry without knowing anything. Intellectuals trapped in ivory towers do not know, but everyone is all under stress. Friction occurs physically in the field. Refugees flood in, immigration surges and jobs disappear.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똘레랑스나 탈근대는 방어적 대응이다. 다들 미쳐서 날뛸 때 어지간히 좀 해라 하고 말리는 말이다. 그런데 차별주의는 공격적이다. 적은 현장에서 신무기로 공격하는데 우리는 살롱에 앉아서 입바른 말로 방어만 한다? 선제대응이 아니면 안 된다. 공세적 대응이 아니면 안 된다. 권력이 필요하다.

Can we solve the problem? Tolerance or post-modernism is a defensive response. When everyone goes crazy and runs around, it defensively says, "Do it properly." But discrimination is aggressive. What if we just sit in a salon and defend ourselves with aggressive words when the enemy attacks with new weapons on the field? It must be a preemptive response. It must be an aggressive response. We need power.


진실을 정면으로 말한 사람은 공자와 니체다. 다들 점잖은 척 하며 말을 돌려서 하고 지식인의 유행에 편승하는데 말이다. 그 시대에 진짜배기는 없었다. 샤르트르는 공산주의를 비판하지 못했고, 까뮈는 알제리를 배반했다. 생텍쥐뻬리는 프랑스를 탈출한 자유프랑스군과 비시정부에 남은 자들 사이에서 번민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시대를 뛰어 넘는 초인은 원래 없는 거였다. 필자도 한 때는 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지성인이 세계 곳곳에 짱박혀 있는줄 알았다. 세월이 흘렀고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운명의 굴레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어서 어설픈 삐에로가 되어 있었다. 생산력의 변화라는 에너지 흐름에 휘둘리고 있었다. 춤은 추는데 박자는 맞지 않았다. 말이 지성인이지 줄을 잘 서서 망신이나 겨우 면하였을 뿐 앞장서서 횃불을 들고 광야를 밝히는 진짜배기는 없었다.

Confucius and Nietzsche spoke without hedging the truth. Intellectuals pretend to be a cultured person and jump on the bandwagon. There were no real intellectuals in those days. Sartre failed to criticise communism, and Camus betrayed Algeria. Saint-Exupery agonized between the free French who escaped from France and those who remained in Vichy France. Of course you can understand them. Because the days were like that. But there are originally no superhumans beyond the times. At one time, I thought that many intellectuals would shine all over the world like stars in the night sky. But it wasn't until time passed that I realize it. The fact that they were wandering in front of the bridle of fate. The fact that they were hit by a wagon wheel of history and became a clumsy clown. They were swept away by the energy flow of a change in productivity. They were dancing but the beat didn't fit. They were called an intellectual, but could only protect themselves in the organization, and no one took the lead in lighting up the wilderness with a torch.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였다. '자네 혹시 영웅이 되어 보지 않겠는가?' 이러면 '그래! 어쩌면 내가 영웅일지도 몰라. 까짓거 세상이 영웅을 원한다면 내가 영웅 연기는 똑부러지게 해주지.' 이러며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던 시대. 스탈린도, 모택동도, 낫세르도, 김일성도, 박정희도 영웅놀이에 분주했던 거다. 부나방처럼 뛰어들어 부나방처럼 타죽었다. 김동길, 이문열, 진중권, 강준만, 홍세화, 최장집, 마광수들의 리사이틀이 반짝 흥했을 뿐 잽싸게 본래의 바보를 회복했다. 영웅을 찾는 분위기에 주제넘게 영웅 역할에 도전했다가 시대가 변하자 꼴이 우스워졌다.

It was an era in which heroes were needed. "Wouldn't you be a hero?" And they said, "Yes! Maybe I'll be a hero. OK, if the world wants a hero, I'll play a great hero." It was an era when they were soaked in oil and jumped into the fire. Stalin, Mao Zedongdo, Natserdo, Kim Il-sung and Park Jung-hee also fell into hero play. They jumped in like tiger moths, burned to death like fire moths. The recitals of Kim Dong-gil, Lee Moon-yeol, Jin Joong-kwon, Kang Joon-man, Hong Se-hwa, Choi Jang-jip, and Ma Kwang-soo only flourished briefly. When the times found heroes, they challenged the role of heroes impertinently, but as the times changed, they returned to fools.

 

진짜는 무엇인가? 공자가 말한 것은 권력이다. 니체는 신을 물어뜯었을 뿐 인간을 그 자리에 세우지 못했다. 공자는 우상이 떠난 자리에 인간을 세웠다. 권력이 이 게임의 본질이다. 권력을 디자인하는 것은 의리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은 사기다. 시대가 먼저 변하고 철학자들이 뒤늦게 그 시대에 맞는 해석을 제출하곤 하지만 버스는 떠났다. 사상가들은 흘러간 과거를 예언했다. 선진국의 낡은 유행을 후진국에 보급하며 우쭐댄 것이다.

What is a real thing in a real world? Confucius spoke of power. Nietzsche attacked God, but he couldn't put humans in god’s position. Confucius built a human being where the idol left. Power is the essence of this game. Designing power is loyal. It is a fraud to think of ideology and thoughts. The times change first and philosophers belatedly announce interpretations suitable for the era, but the past has already left like a bus. Thinkers foretold the past. They flattered people by spreading the old trend of advanced countries to underdeveloped countries.

 

체 게바라는 60년대 낭만이다. 그때 그러고 놀았지. 마약에 취했고 혁명에 취했고 통기타에 취했고 청바지에 취했지. 그래도 좋았어. 워낙에 그런 시대였으니까. 비료가 보급되고 지구촌 인류의 어깨를 짓누르던 맬서스트랩이 깨지자 일제히 긴장이 풀린게 베이비붐 시대의 낭만이다.

Che Guevara was an embodiment of the romance of the 60s. "We played like that. We are addicted to drugs, addicted to a revolution, addicted an acoustic guitar and jeans. But we loved it. That's how it was." When the fertilizer is supplied and the malthus trap, which weighed down the shoulders of humans around the world, broke, humans were relaxed and the romance of the baby boom arrived.

 

권력은 실제로 존재하고 게임은 현장에서 일어난다. 자동차가 변하면 운전기술도 변한다. 생산력과 문화의 상호작용하는 게임이다. 그것을 디자인하는 것은 의리다. 우리는 시험을 치르듯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중에 하나를 찍으면 되는줄 안다. 앉아서 정답 찍는 것은 가짜다. 자동차는 익숙해져야 한다. 현장에서 핸들을 쥐어야 진짜다.

Power actually exists, and games happen in the field. When cars change, so does driving skills. It's a game where productivity and culture interact. It is loyal to design it. We think that we can mark either socialism or capitalism on the test sheet. It is fake to select the right answer at the ivory tower. The car needs to get used to it. You have to hold the steering wheel in the field to make it real.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인간들이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 데는 어쩔 수 없다. 왜 항우는 실패하고 유방은 성공했을까?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지만 만약 일본이 친절하게 조선인을 대하면? 일본이 진정성으로 무장하고 조선인을 사랑으로 대한다면? 조선인을 전혀 차별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를 참인가? 의리가 진짜다. 부모와 자식의 의리, 부부의 의리는 무의식으로 맺어지고 호르몬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일본이 잘해도 조선인은 거부한다. ? 인간은 원래 그런 동물이다. 그게 의리다. 의리는 선천적으로 주어지고 후천적으로 맺어진다. 의리있는 팀이 이기고 의리없는 팀은 진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의리가 없다. 호르몬의 작용이 없다.

Even though a good system is created, there is no way if humans struggle and do not listen. Why did Hsiang Yu fail and Liu Bang succeed? We condemn the Japanese atrocities, but what if Japan kindly treated Koreans? What if Japan truly treated Koreans with love? What if they had not discriminated against Koreans at all? Then would you obey for the Japanese Emperor? Loyal is real. The loyal of parents and children and the loyal of couples are formed unconsciously and act as hormones. No matter how good Japan is, Koreans refuse. Why? Humans are originally such animals. That's loyal. Loyal is given by nature and acquired. Team with loyal wins and team with no loyal loses. Japan and Korea don't have the loyal as parents and children. The hormone doesn't work.

 

사자는 무리생활을 하고 호랑이는 단독생활 한다. 사파리에 호랑이와 사자를 함께 풀어놓으면 언제나 우두머리 자리는 사자가 차지한다. 호랑이가 지배한 시기도 있었지만 짧았다. 형제 호랑이 두 마리가 붙어다니면서 사파리를 지배한 시절이 있었지만 발정기가 찾아오면서 끝났다.

Lions live in groups and tigers live alone. When tigers and lions are released together on a safari, the head was always a lion. There was a time when tigers ruled for a while. Two tiger brothers dominated the safari hanging out together, but it ended with the arrival of mating season.

 

의리를 배워서 인간이 된다. 똘레랑스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탈근대니 하는 반짝 유행어로 인간성을 주장할 수 없다. 보다 공격적이고, 능동적이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물리적이고 밀도있는 방법으로 선제대응해야 한다. 사상은 관념이고 의리는 물리다. 축구는 팀플레이를 잘하는 독일팀이 이긴다. 패스를 잘하면 이긴다. 의리는 일체의 차별에 물리력으로 맞선다. 권력을 디자인하고 실력으로 적을 제압해 보인다.

You learn loyal and become a human. Humanity cannot be asserted in buzzwords such as tolerance, political correctness, or post-modernism. You need to preemptively respond more aggressively, actively, positively, progressively, physically, and densely. Thoughts are ideas and loyal is physics. In soccer, the German team that is good at team play wins. If you pass well, you win. Loyal confronts any discrimination by physical force. It design power and overpowers enemies with ability.


차별은 공격이고 똘레랑스는 방어다. 뭘 하지 말자는 똘레랑스나 탈근대로 일베의 야만을 쳐부술 수 없다. 공격적인 야만에 맞서는 보다 공격적인 문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군자의 의리로 소인배의 야만에 맞서서 이겨야 한다. 적을 제압하고 권력을 틀어쥐고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는 하나의 균형에서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또다른 균형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한다. 튀어나온 못대가리를 두들겨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정치의 다스림이다. 한국 정치의 위기는 경상도 쪽수에 의한 불균형 때문이다. 군자의 의리로 연결하여 맞서야 한다. 똘레랑스니 탈근대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는 골방 지식인의 푸념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격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단히 이겨서 인류문명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Discrimination is an attack and tolerance is a defence. It is impossible to break down the barbarism of *Ilbe by idle tolerance or post-modernism. More aggressive civilization is needed rather than confronting aggressive barbarism. You must win against the barbarism of a petty man in the loyal of the noble. You must overpower the enemy, seize power and restore balance. Politics repeats moving from one balance to another that reflects the changes of the times. It is the ruling of politics to restore balance by hitting the head of the protruding nail. The crisis in Korean politics is due to the imbalance caused by the population of Gyeongsang-do. We must confront this situation by connecting it to the loyal of the noble.Complaints by intellectuals of ivory tower such as tolerance, post-modernism, and political correctness cannot solve the problem. You have to be aggressive. You must constantly win to increase the completeness of human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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