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은 인간을 덜뜨게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들뜨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상쾌한 공기?, 수려한 풍광? 아름다운 경치? 아닙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긴장하기 때문입니다.

첫소풍 때 있었던 일 기억합니까? 첫 출근 때 있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까? 첫 등교 했을 때, 처음으로 군에 입영했을 때, 처음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아마 여러분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왜? 처음이니까요. 처음엔 긴장하니까요.

인간의 쾌감은 대부분 ‘가벼운 긴장’에서 나옵니다. 첫소풍 때, 첫 수학여행 때는 본능적으로 긴장합니다. 그 긴장이 쾌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도 긴장하지요. 그래서 반갑고 기쁘지요.

여행은 즐겁지만 두번, 세번, 반복되면 시큰둥해집니다. 더는 즐겁지 않지요. 그때부터는 처음 여행했을 때의 그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서 처음 팥죽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고향의 맛을 되찾기 위해, 이 가게 저 가게를 순례하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미식가가 되어버리듯이요.

찾지 못합니다. 그 처음과 같은 설레임은, 그 처음과 같은 흥분은 다시금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여행은 별로 신통한 일이 아니에요.

왜 여행을 하는가? 저는 특별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관광에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좋다는 베트남의 하롱베이, 그 좋다는 중국의 계림,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 저는 흥미없습니다. 아프리카의 사막도 티벳의 고원도 저의 흥미를 끌지는 못합니다.

그 위대하다는 고려청자를 박물관에서 처음 보고.. “뭐야 그냥 밥그릇이잖아.” 하고 시큰둥해 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청자의 참 맛을 음미할 수준이 되려면 적어도 1천개의 그릇을 봐야만 합니다.

어느 시점부터 그릇의 흠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릇의 불완전이 눈에 띄는 것입니다. 어떤 99가 갖추어졌을 때 나의 1로 그 부족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 100이 완성될텐데.. 그 순간 그 그릇의 값어치는 100배로 증가할 텐데..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비로소 중독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간해서는 그렇게 잘 되지 않습니다. 천번쯤 보고 만번쯤 봐야 그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고 그 완전함이 맘에 그려지고, 거기에서 그 1프로를 채워줄 수 있는 나의 포즈를 자각하게 되고 그제서야 미학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예술이든 100의 완전함을 이해하고 99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나의 포즈로 그 1을 채워줄 수 있는 경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가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홍준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요. 거꾸로 ‘본 만큼 안다’가 맞습니다.

왜 여행을 하는가? 관광이 아닌 여행 말입니다. 여행은 순례입니다. 신과의 만남이지요. 자신과의 대화이구요. 영적인 체험이 목표입니다. 죽도록 여행을 하다보면 실제로 신비한 체험을 하는 수가 있어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물이 좋아서 냉수를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갈증 때문에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여행이 좋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가 들썩거려서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마시는 것입니다.

왜? 처음에는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도자기에서 100에 미달하는 99를 봅니다. 처음에는 높은 절벽과 시원한 계곡과 낙옆 쌓인 오솔길에서 그 100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낍니다. 처음엔 그렇습니다.

허나 그 어떤 것도 온전한 충족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세상.. 그 하늘.. 그 천하..통틀어서 커다란 하나의 동그라미가 찾아집니다. 그 모두가 하나의 100이 되면 거시서 결핍의 99가 발견되고 나머지 1로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그 채워지지 않은 99의 힘에 자석처럼 끌려서 나의 1은 달려가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힘에 끌려가듯이 말입니다. 그 순간 100이 완성됩니다. 리미트입니다. 극점이죠. 그 극을 넘어서면 초극입니다. 미학적 완성입니다.

바운더리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바운더리가 있고 각자는 각자의 바운더리가 있습니다. 세상은 세상의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그라미입니다.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가 있고 동그라미가 모여 더 큰 동그라미를 이룹니다.

처음엔 나의 동그라미에 집착합니다. 나의 부족한 99에 어디선가 1을 구해와서 100을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요. 99에서 나머지 1이 충족되지 않는 겁니다. 결핍이지요.

어느 시점에서 세상의 동그라미, 천하의 동그라미를 발견합니다. 나의 1로 그 세상의 99를 채워 100을 완성시킵니다.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이 그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수북한 낙엽길을 밟을 때, 새하얗게 눈이 내린 길을 걸을 때 그 99와 1의 관계를 발견하고 전율합니다.

여행은 내게 부족한 1을 구하여, 나의 99에 그 1을 보태어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그 100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의 바운더리를 발견하고 천하의 99를 발견하고 나의 바운더리 1을 온전히 그 천하에 제공하여, 나를 온전히 버림으로서 세상을 완성시키기 입니다.

[여행의 단계들]
1단계 : 맑은 공기와 좋은 풍광을 찾아다니는 관광의 단계
2단계 : 낯선 곳에서 느끼는 본능적 긴장이 주는 쾌감을 쫓는 단계
3단계 : 과거의 인상적인 추억을 거듭하여 반추하는 단골(꾼)의 단계
4단계 : 사물에서 부족한 99를 발견하고 1을 채워주고자 하는 마니아의 단계
5단계 : 천하의 99를 발견하고 나의 1을 천하를 위해 희생하는 순례자의 단계

여행은 결국 리미트와 바운더리를 깨닫기입니다. 극점에 이르렀을 때 리미트를 발견하고 그 극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바운더리가 찾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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