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486 vote 0 2004.05.26 (20:58:14)

나는 어려서 죽는 것을 겁내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고는 ‘죽는 것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저 산 위에 한 떨기 꽃이 있다. 저 꽃을 내가 꺾어오지 못한다 해서 섭섭할 이유가 없다. 정작으로 섭섭한 것은 그 꽃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매우 섭섭할 일이 아닌가?

더 섭섭한 것은 그 꽃이 원초적으로 이 지구 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우 섭섭해 할 일이다.

사실 많은 것이 없다. 그래서 섭섭하다. 우리나라에는 세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가 없다.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과도 같은 대영웅도 없다. 그래서 어려서의 나는 많이 섭섭했다.

그러나 만약 세익스피어가 원초적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더라면,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이나 소크라테스나 세종대왕이나 이런 위인들이, 애초에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더 많이 섭섭해 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아버지 필립공이 천하를 다 정복하지 않고 내가 정복할 땅을 남겨두어서.”

라고 말한 사람은 정복자 알렉산더다. 다행이다. 우리에게 한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소나 돼지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도 많다.

(생각하면 이 지구 상의 그 많은 생명체들 중에서 하필이면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희소한가? 그러니 이 대한나라의 사람 중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할 것이다.)

무엇인가?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저 꽃이 꺾어져 내 품에 안기지 않았다 해도, 저 미인이 나의 친구가 아니라 해도, 저 많은 부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해도, 그것들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감격해 할 일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죽음을 겁내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 무수한 삶들이 있다. 그 삶들이 존재하여 있다는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다.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죽음을 겁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어서 다른 누군가로 태어나는 것이나, 내가 죽고 또 저기서 새로운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저 바위벼랑의 진달래꽃이 내 손에 의해 꺾여져 내 품에 안긴채로 시들어 가거나, 저 한 떨기 꽃이 꺾이지 않고 저 바위벼랑에 매달린 채로 시들어 가거나 조금도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설사 내가 죽는다 해도 무수한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있다. 무수한 보배가 있고, 권세가 있고, 힘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지극한 가치’들이 있으니 그 것들이 내 소유로 등록하지 않고 있어도, 그저 그것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히 나는 득의양양할 수 있는 것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법소유상 개시허망)
若見諸相 非相 則見如來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나니
만약에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알면 여래를 볼 것이니라.

무엇인가? 형상이 없으니 관계로 있다. 우리는 관계로 하여 온통 하나로 맺어져 있다. 그러한 맺음 때문에, 내가 없어도 나는 있는 것이며, 나는 죽어도 그대가 있으므로 하여 나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네고 네가 내다.

여래(如來)는 무엇인가? 진여(眞如) 곧 ‘완전함’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우주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 하나의 완전함이 존재하므로 하여 불완전한 내가 섭섭해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왜? 형상이 없으니 관계로 있다. 관계맺기로 하여 그 완전함과 불완전한 나는 하나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진짜로 섭섭해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완전성 자체가 원초적으로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2548년전 석가가 가져온 소식은 무엇인가? 그 완전함이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니 어찌 기분 째지는 소식이 아니겠는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는 반야심경으로 말하고 있다. 형상이 없으므로 관계(인연)가 있다. 관계로 하여 우리는 온통 하나로 맺어져 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이 우주 안에 어떤 완전성이 존재하므로 하여 섭섭해 할 이유가 없다. 그 완전함과 불완전한 나는 관계로 하여 맺어져 있으니 진실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섭섭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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