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266 vote 0 2004.05.24 (11:35:33)

영화를 본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므로 영화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깨달음’에 관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두가지입니다.

1) 김기덕은 천재다.
2) 김기덕은 깨달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공중부양도 하냐?’ ‘김기덕이 부처가 됐냐?’ 이딴 식으로 딴지 거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이런 사람은 문제가 있으므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두 종류의 삿된 것이 있는데 하나는 ‘깨달음’을 지나치게 어렵고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주의입니다.

석가의 제자 500비구가 다 깨달았을 뿐 아니라 달마 이후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보통 다 깨달았습니다. 못 깨닫는 사람이 드물었지요.

깨닫는 것이 정상이고 못 깨닫는 것이 이상이죠.

두번째는 깨달음을 도술이나 마술 혹은 육체적인 어떤 현상으로 해석하려는 약장수들입니다. 눈에 헛것이 보인다든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든가 .. 외계인과 통신한다든가.. 이런 현상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지 깨달음과 무관한 겁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뭐냐?

인식론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깨달음은 간단히 말해서 ‘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보통사람은 귀납적으로 사고하는데, 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면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연역적 사고에는 반드시 일정한 툴이 소용됩니다. 그 툴을 가졌는가입니다. 그 툴을 가지면 곧 깨달은 것입니다. 즉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거죠. 그건 수학공식과 같아서 외우면 됩니다.

근데 뚜껑이 열리지 않으면 공식을 외워도 실전에서 써먹지 못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요. 뚜껑이 열린다는게 별게 아니고 현장에서의 경험입니다.

연역에는 일정한 툴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한 공식을 따라갑니다. 즉 영화 나쁜남자는, 아니 김기덕의 모든 영화는 일정한 공식을 따라가기 때문에, 다음 장면이 어떻게 갈지 대충 예상이 나오는데 그 예상대로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여간 귀납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쁜남자는 처음부터 공식을 만들어놓고 공식대로 가기 때문에, 많은 논리의 비약이 있고 내러티브가 엉성한 점이 있습니다.

틀에다 맞춘 거죠.

그러므로 나쁜남자를 비판하려면 욕할 곳은 매우 많습니다만 그건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논외’입니다. ‘그런 잡다한 거 가지고 시비하기 없기.’

중요한건 공식에 맞느냐입니다. 제가 나쁜남자를 극찬하는 이유는 공식에 맞기 때문이지 다른거 없습니다.

하여간 관객은 마지막에 몽룡이 어사출도를 놓았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 어사출도는 관객에 의해 사전에 예상된 것이죠.

왜 어사출도에 관객은 희열을 느낄까?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상은 구체적인 내용의 예상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내용까지 다 예상하고 있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죠.

그건 이런 겁니다. 예컨대 죽이 한사발 있다고 칩시다. 죽그릇의 가운데를 크게 떠내면 가운데 부분이 움푹 들어가겠지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죽들이 서서히 가운데로 밀려와서, 그 움푹 들어간 데를 메우겠지요.

영화나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춘향이 변사또에게 당하는 장면은 그 죽의 가운데를 떠낸 것과 같습니다. 관객들은 막연하게 저 빈 공간이 메워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간절히 그곳이 메워지기를 희구합니다. 그리고 메워질 것을 예상합니다.

그때 몽룡이 짠하고 나타나 어사출도를 놓으면 주위의 담장에서 육모방망이를 든 역졸들이 우르르 담을 넘어 동헌으로 뛰어듭니다. 우르르 모여드는 거에요. 즉 죽그릇의 가운데 움푹한 공간이 메워지는 겁니다.

이때 관객들은 희열을 느낍니다.

여기서 관객들의 예상이라 함은 .. 죽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갔을 때 그 부분이 어떻게든 메워질 것이라는, 혹은 반드시 메워져야 한다는 어떤 허기, 어떤 갈증, 어떤 욕구불만을 느끼는데 이것이 뇌가려움증을 낳습니다.

뇌가 간질간질한 거에요. 왜? 우리는 일상에거 그와 유사한 장면을 매우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저게 어떻게든 메워진다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그 막연한 생각이 뇌가려움증을 낳는 거에요. 그래서 지적 흥분이 있는 겁니다. 그 흥분의 크기만큼 감동이 큰 거죠.

물론 예상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막연하죠. 어떻게든 주인공이 짠 하고 나타나서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 백마탄 기사가 나타날 거라는 희망. 뭐 그런거죠. 구체적으로 내용까지 예상하면 뻔해서 싱겁고.. 그 예상은 있되, 예상이 희미해서 긴가민가 할 때.. 뇌가 간질간질한 거에요.

영화 식스센스에서 충격의 반전은 .. 사실은 관객들이 막연하게 뭔가 한방이 있을거라는 예상을 했어요.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몰랐지만.. 이 쯤에서 뭔가 뒤집어질거라는 막연한 예감..뇌가 간질간질한 거.. 생각이 날것도 같은데 생각이 안날 때.(여기서 생각이 날것도 같은 느낌의 이유?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하여간 연역은 공식이 있어서 공식대로 갑니다. 김기덕은 연역적으로 사고하는 특이한 인간입니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고 훈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때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겠지요.

귀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어떤건가 하면 장선우의 영화와 비교해 보면 됩니다. 장선우와 김기덕은 둘 다 깨달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장선우는 귀납적으로 접근하고 깨달은 김기덕은 연역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정반대로 가는 거에요.

장선우의 나쁜영화도 김기덕의 나쁜남자와 동일한 주제에 도전한건데, 반대의 결과가 나왔죠. 아 오해하면 안되는데 장선우도 내공이 약간 있어서 연역적 사고를 약간(아주 조금)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게 제대로 일관되게 안되니까 문제지.

장선우도 죽기 전에 제대로 아구가 맞는 영화를 한편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더 한다면 말에요.

하여간 깨달음은 연역적 사고이고, 연역적 사고는 훈련하면 되는거고(뚜껑이 열려야 되겠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는 겁니다.

하여간 절에서 볼 수 있는 십우도의 여섯번째 ‘기우귀가’는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인데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입니다. 나쁜 남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관객을 확인사살 하는데 왜 그 장면이 필요했던가는 보통 관객들은 네번째 득우 ‘소를 얻는다’에서 끝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그게 틀려먹었기 때문입니다.

(십우도에서 기우귀가 뒤에도 잡다한 것이 더 있는데 이는 쓸데없는 사족임. 십우도의 핵심은 단계가 있다는 것. 그 단계가 5단계인지 6단계인지는 논할 필요 없음. 원래 도교에서 8우도로 해놨는데-이것도 넘 많다- 스님들이 심심하다 보니 쓸데없이 10개로 늘여논 것임. 도교든 불교든 깨달음에 대해서는 입장이 같음)

어쨌든 십우도에서 소가 등장하는 장면은 6번째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득우에서 끝나면 이야기가 미완성이므로(다섯째 목우는 쓸데없는 것임) 마지막 확인사살까지 가야만 했던거죠.(그래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열받아 하는)

나쁜남자는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득우에서 끝나면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로 오해되기 땜시롱 그렇게 한거죠.(악은 원래 없다. 선의 실패 혹은 선의 미학적 불완전이 있을 뿐이다.)



ooo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누구도 구원될 수 없다. 예수가 말했듯이 마음으로 간음한 자도 이미 간음한 자이다. 그러므로 선과 악의 논리로는 구원의 희망이 정확히 0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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