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765 vote 0 2004.08.18 (23:07:17)

만약 그대가 일생에 딱 한번 쯤.. 좌석 하나에 몇십만원이나 한다는 오페라 극장에 갈 일이 생겼다 치면.. 어렵더라도 턱시도 정장을 구해볼 일이다.

왜? 그대가 그 어렵게 얻은 비싼 자리에서 혹 그 자리를 빛나게 할 유명인사라도 만난다면, 그가 정치인이건 혹은 연예인이건 혹은 혹은 화가나 소설가이건 간에, 그대가 그 사람을 향해 짓는 표정이 비굴하거나 혹은 들뜬 표정이 되거나 간에 자연스럽지 않는다면.. 그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그 자리에 가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면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가는 것이 좋다.

이상은 이상 자신의 미학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미학은 현실과 온전히 독립하여 별도로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의 잣대로 이상을 판별하려 해서 안된다.

이상을 판단하는 데는 이상 자신의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이상 자신의 내재적인 자기 완결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상 자신의 자기 연속성과 상호간의 긴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상을 고민하여야 한다.

이상주의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 일은 아마 잘 일어나지 않겠지만.. 뜻밖에 그대가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일시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을 때.. 그대의 표정이 비굴해지거나, 안절부절 하거나, 혹은 들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은 별거 아니다. 세상 또한 별거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지푸라기 같은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한바탕 나비의 봄꿈이다. 긴장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대는 긴장한다. 그대는 잘도 적응한다. 그대는 굳이 그러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도 긴장한다. 그대는 굳이 적응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매우 적응한다. 갈곳을 잃은 해방된 노예처럼 그대 안절부절 한다.

자유가 낯설다. 자유가 어색하다. 자유가 무섭다. 문득 세상이 낯설다. 어디로 가야하지? 얼떨결에 해방된 노예인 그대는 도피하려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로 부터 말이다.

왜 이상이 필요한가? 그대의 자유 또한 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상이 필요하다. 그대 왕이 아니지만 왕의 마음으로 살아볼 일이다. 그대 예수가 아니지만 예수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볼 일이다. 그대 부처가 아니지만 부처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볼 일이다.

이상은 아득히 먼 곳에 있지만, 이상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볼 일이다.

이곳은 칸 영화제의 시상식장이다. 그대는 지금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그대 수백대의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어보여야 한다. 10억명의 시청자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야 한다. 이상이 현실이다. 이곳이 그곳이다.

오늘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의 친구 앞에서 짓는 그대의 미소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대는 현실에서 한 사람의 친구를 만나고 있지만, 실로 10억명의 시청자와 수백대의 카메라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야 한다.

마땅히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인생은 실패다. 왜냐하면 오늘 그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예수와 인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부처와 인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몇십만원을 지불한 비싼 오페라 극장에서 우연히 유명인사 히딩크씨를 만나고도 그대 불행히도 정장치람이 아니었던 이유로 어색해 하며, 쭈뼛거리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결국 인사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내일도 그대는 길에서 우연히 부처를 만날 것이다. 노자도 만나고 공자도 만날 것이다. 예수도 만나고 마호멧도 만날 것이다. 노무현도 만나고 유시민도 만날 것이다. 그대 싱긋 웃어보이고는 태연히 그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정신 차리면 보인다. 그대 마음의 턱시도가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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