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055 vote 0 2006.10.01 (17:23:41)

 

깨달음은 소통이다


참된 깨달음은 어떤 주어진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깨우침으로 하여 얻어진다. 그것은 인식의 구조를 이해하기다.


하나의 인식은 외부에서 인간의 눈과 귀와 코로 주입되는 데이터와 자기 내부에서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가 옳게 만날 때 이루어진다.


하나의 실행파일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는 양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구동해야 한다.


깨달음이란 인간의 뇌 내부에서 사용되지 않은 채로 잠들어 있는 고급정보 처리용 소프트웨어를 일깨워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새로 인식되는 데이터의 패턴을 읽은 다음 과거에 동일한 데이터를 처리한 경험을 활용하여 대용량의 정보를 일거에 처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패턴의 기억 및 대조과정이다. 과거의 무수한 경험을 일일이 대조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압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보의 압축을 통한 질(質) 적인 깊이에 도달하기다. 그것은 팩트와 패턴과 로직과 매커니즘과 패러다임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정보에 대한 정보, 곧 메타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 지식은 외부에서 입수되고 깨달음은 메타정보를 활용하여 내부에서 그 지식을 운용한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데이터는 귀납적 심화과정을 거치고 내부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는 연역적 운용과정을 거친다. 전자는 지식이고 후자는 깨달음이다.


뇌는 신체감관을 통하여 정보를 입수하지만 외부에서 주입되는 정보의 질에 따라 자기 내부에서 그 정보를 처리하는 수준이 달라진다.


입수되는 정보가 질적인 깊이에 도달할 때 정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로서의 메타정보인 의미와 가치와 미학과 소통이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하드웨어는 완성되어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인식과정에서 보강되어진다. 깨달음은 불완전한 자신의 뇌를 완성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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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하는 것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맞물림이 내적으로는 구조를 이루고 외적으로는 패턴을 이룬다.


존재는 서로 닮아있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에 공통된 코드가 있다. 그것은 의미(意味)와 가치(價値) 그리고 미학적 완전성과 소통(疏通)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소통이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소통, 나와 너의 소통, 나와 세상과의 소통, 나와 우주와의 소통, 신의 완전성과의 소통이다.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에 성공해야 한다. 모든 성공은 타인과의 소통의 성공으로 하여 얻어지고 모든 실패는 사회적인 소통의 실패로 하여 얻어진다.


나와 너와 서로 통할 때 곧 내가 너임을 깨닫는다. 나와 우주와 통할 때 곧 내가 우주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서로는 하나가 될 수 있다.


통하는 크기만큼 나는 너다. 우리 서로 통할 수 있을까? 서로 통하지 못하게 가로 막는 장벽은 무엇인가? 그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깨달음은 모든 존재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부분과 전체가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인생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인생의 허무를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그 허무를 극복하게 하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나는 죽고 사라지지만 내가 의미를 남길 때 나는 세상과 통한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있으므로 나는 죽지 않는다. 


깨달음은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와 너는 서로 나르지만 너와 내가 동일한 가치를 공유할 때 둘은 하나될 수 있다.


깨달음은 미학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소통의 실패는 독립적 존재의 불완전으로 하여 일어난다. 마침내 완전에 도달할 때 부분과 전체는 서로 통한다.


깨달음은 소통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부분과 전체가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통할 때 공명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세상이 낱낱의 입자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관계로 하여 맺어져 서로 맞물려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소통을 깨닫는 것이며 소통은 부분과 전체의 공명이며 부분의 완전이 전체의 완전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때 울림과 떨림이 전파된다.


미학적 완전성을 통해 존재는 소통에 성공한다. 완전은 가치의 완성이다. 그것은 진(眞)과 선(善)과 미(美)와 자유(自由)와 성(聖)에 도달하기다.


진위(眞僞) 중에서 진을, 선악(善惡) 중에서 선을, 미추(美醜) 중에서 미를, 성속(聖俗) 중에서 성을 얻을 때 완전에 도달한다.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


의미의 완전은 진(眞)이다. 관계의 완전은 선(善)이다. 가치의 완전은 미(美)다. 삶의 완전은 자유(自由)다. 존재의 완전은 성(聖)이다.


깨달음은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제각기 완전에 도달할 때 서로 소통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가 됨을 깨닫는 것이다.


네가 완전해질 때 너는 자유롭다. 너와 내가 완전해질 때 서로는 소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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