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262 vote 0 2007.05.23 (21:09:24)

 
인생이란
 
세상은 넓디 넓은데
‘나’라는 존재는 티끌처럼 작다.
그 아득한 세상 어딘가에서
‘완성’이라는 이름의 보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해서
보물이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 주는건 아니고
천천히 찾는다 해서
보물을 찾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방법은 이런 것이다.
유유자적 여행하면서
남들이 어디를 수색하느냐를 살펴보기.
사람들은 조급해하며 이곳저곳을 뒤진다.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영역을 나눠서 찾아보기도 한다.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곤 하지만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힘을 합쳐서
혹은 역할을 나누어 성과를 이뤄내곤 한다.
나 홀로 뒤처져 외톨이지만
내게도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큰 무리를 이루어
하나의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다.
그들이 다투어 오른쪽으로 몰려갔다면
보물은 왼쪽에서 발견될 확률이 높다.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에 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한걸음 뒤에서 보면 전모가 보인다.
 
넓은 초원에
사슴이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든다.
처음 사슴들은 여유롭게 풀을 뜯지만
차츰 숫자가 늘어날수록 개개인이 차지하는 면적은 줄고
그럴수록 무리가 이동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개인에게 할당된 면적이 좁아들수록
사람들은 초조해하며 허둥댄다.
오늘날 발달된 도시로 하여
개인에게 할당된 면적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무리들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빠르게 지나쳐 간 곳
그들이 초조해져서 함부로 속도를 낸 곳
그곳에 내가 찾아야 할 진짜가 있다.
 
넓은 면적을 살핀다 해서
보물을 찾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 보물을 찾는데 성공하는 사람은
한 번이라도 진짜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대 빛나는 진짜를 본 적이 있나?
진짜의 완성된 이미지를 이미 머리 속에 그려놓고 있는가?
마침내 눈 앞에 그것이 나타났을 때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며
감탄해 마지 않는 그것이 진짜라 믿는 실수를 범해서 안 된다.
무리들에 등 떠밀려 뒤돌아보며
설마 아니겠지 하고 지나쳐 가서 안 된다.
 
보물은 완성 그 자체이다!
완성은 성(聖)이다.
학자의 聖은 진리, 인간의 聖은 자유.
삶의 聖은 사랑, 구도자의 聖은 깨달음.
예술가의 성은 관객과의 소통.
지식인의 성은 이상주의, 철학자의 성은 휴머니즘이다.
 
인간의 완성은 구원에 있고
신의 완성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드러내는데 있다.
인간의 백퍼센트를 활용하는 것.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먼 곳과
가장 아름다운 곳과
가장 자유분방한 곳과
가장 시끌벅적한 곳에 함께 도달하기.
 
목수에게는 목수의 聖이 있고
석수장이에게는 석수장이의 聖이 있다.
聖에 도달할 때 통한다.
목수의 성은 거주자와 통하고
연주자의 성은 관객의 추임새와 통한다.
완성될 때 통한다.
종이 소리를 내듯이
모든 몸들이 제 울음을 토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제 울음을 토하게 이루는 것.
그것이 신의 성이다.
 
오래 산과 들에 몸을 두었다.
그 산에서 그 들에서 그 하늘아래서 그 물 위에서
신(神)의 완전성을 보았다.
언제라도 신과 소통할 수 있다면
완전성이라는 촛불을 켤 수 있다면
어디서라도 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보물찾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완성이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
중요한 것은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을 아는 것.
마침내 여행을 끝내고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아는 것.
약한 묘목을 붙잡아 세울
든든한 버팀목을 구하는 것.
휴식하고 재충전할 장소.
아이들에게 내 여행담을 들려줄 장소.
그것은 가정이기도 하고 회사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공동체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빛 나는 완전성의 신과 어설픈 그림자에 불과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내는 것.
 
인생이 긴 여행이라면
‘왜 우리는 여행하는가?’
개가 오줌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이
여행자는 도처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여행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스케일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사람은 머리에 뇌가 있다고 믿지만
몸 전체에 뇌가 분포하여 있다.
신경도 뇌의 일부이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손에도 발에도 뇌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여기 이곳에 있다고 믿지만
실은 내가 거쳐간 모든 곳에
내 흔적이 남아있는 모든 곳에
내 추억의 편린이 스며들어 있는 모든 곳에
나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곳에 내가 있다.
나의 일부가 파견나가 있다.
우리는 오늘 하루의 일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하고 돌아왔다고 여기지만
실은 내가 그곳에 나의 일부를 파견해 두고 온 것이다.
라인을 연결해 두고 온 것이다.
채널을 열어놓고 온 것이다.
산에도 들에도 바다에도
도시에도 마을에도 사이버공간에도.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 여행한다고 믿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도처에 그의 이름으로 된 도시를 건설하였듯이
나를 전개해 놓고 오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나는 한걸음 뒤쳐져 유유자적하며
군중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지금 내가 가야할 곳을 안다.
나는 나의 일부를
세상의 이곳저곳에 파출해 두고
나의 흔적을 흩뿌려놓고
라인을 연결해 놓고
채널을 개설해 두고
그것들의 좌표들을 통해
내가 지금 가야할 곳을 알아낸다.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사람들은 오늘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했다고 여기지만
신의 완전성에서 보면
성공과 실패는 뒷날의 소소한 이야깃거리일 뿐
일생동안 무수히 많은 곳에 전개해 놓아야 할
나의 촉수들 중 하나를 심어두고 온 것이다.
 
내가 전개하여 너에 이르고
네가 전개하여 나에 이른다.
네가 지금 그곳에 있음을 내가 알므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에 기시감을 느낀다.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던 것 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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