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602 vote 0 2007.01.18 (23:38:47)


한 대의 자동차가 있다고 치자. 그냥 밖에서 껍데기만 보고 ‘좋네 좋아’ 감탄사만 늘어놓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뒷좌석에만 앉아보고 ‘좋네 좋아’ 박수 치며 감탄한다.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디자인이 좋다는 건지, 차가 새차라서 그냥 좋다는 건지, 덩치가 커서 좋다는 건지, 내 것이어서 좋다는 건지 승차감이 좋다는 건지, 운전하는 재미를 안겨주는 차라는 건지 뭘 보고 좋다는 건지 그것을 따져보고 싶은 거다.

그 차가 가진 성능을 백프로를 끌어내지도 못하면서 좋아할 자격 없다. 그 차에 꼭 어울리는 실력있는 운전자여야 그 차가 가진 성능의 백프로를 끌어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도 마찬가지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유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는 거다. 그 사람이 자기 내면에 감추어 놓고 있는 것을 백프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짜다. 자유로만 가능하다.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자유는 그 차에 시동을 걸어주는 것이다.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도로를 질주할 수 있도록. 사랑은 그 차를 운전하는 것이다. 차는 멋진 코너링으로 사람에게 운전하는 재미를 안겨주고 싶어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보통 연주자가 보기에는 이 피아노나 저 피아노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뛰어난 연주자가 보기에는 좋은 피아노와 그렇지 못한 피아노는 달에서 걷는 것과 지구에서 걷는 것 만큼의 차이가 있다.

당신이 한 점을 두면 그냥 한 점을 둔 것이지만 이창호에게는 그 순간 벼락이 치고 천둥소리가 나는 한 점이다. 이창호는 그 한 점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그 바둑 한 판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고도의 긴장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밸런스와 밸런스가 마주치는 접점. 가장 좁은 지점에 가장 큰 것을 집어넣기다. 그럴 때 통한다.

361로의 바둑판 위에 밸런스와 밸런스를 촘촘히 엮는다. 작은 밸런스들을 더 큰 밸런스로 수렴한다. 판 전체를 하나의 틀로 꽁꽁 묶어버린다. 최고도의 긴장을 끌어낸다. 우주를 빅뱅의 순간으로 되돌린다. 호흡이 멈추어지도록.

그 도로 위에서 최고의 RPM으로 최고의 마력으로 최고의 급커브를 최고의 속도로 돌파할 때 그 한순간은 이창호가 우주의 빅뱅을 연출한 한 순간과 같다. 호흡이 멈추어진다. 그 순간 감정의 어떤 포우즈는 부동자세로 고도화 된다.

연주자는 낮은 음역에서 높은 음역까지 느린 호흡에서 빠른 호흡까지 그 피아노의 구석구석을 탐색한다. 그러면서 반복한다. 반복은 그 음의 조각조각들을 낱낱이 하나의 실에 꿰어내기다. 그리고 파격한다. 쾅 터뜨린다. 왈칵 토해낸다.
  
운전자는 차로 통하고 기사는 바둑으로 통하고 연주자는 피아노로 통하고 명상가는 깨달음으로 통한다. 울림과 떨림이 전파되어 통한다. 감정의 부동자세에서 울컥 하고 치받는 것이 있다. 그럴 때 전율한다.

사람이 말이 많은 것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끝끝내 미련이 있어서이다. 피아노도 말이 많다. 자기 안의 전부를 보여주고 싶어서. 자동차도 말이 많다. 제가 가진 성능의 백프로를 보여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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