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403 vote 0 2006.10.21 (00:12:21)

다섯가지 깨달음

깨달음은 영성의 혁명이다. 영성은 의사소통 능력이다. 인간에게는 본능과 감성과 지성과 이성과 영성이 있다.

본능은 자기보호 능력이고 감성은 자기표현 능력이다. 지성은 학습능력이고 이성은 가치판단 능력이고 영성은 소통의 능력이다.

깨달음은 영성의 계발이고 영성은 소통의 능력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첫째 자기통제가 필요하고 둘째 세상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감성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이성이면 본능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영성이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욕망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은 현실공간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 그 울림과 떨림이 전파되어야 한다. 지식인의 골방에서 안 되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평정심을 깨닫기

이성은 감성을 극복하게 하고 영성은 본능을 극복하게 한다. 본능은 자아를 공격과 방어의 진지로 삼는 것이다.

욕망이 공격이면 두려움이 방어다. 인간은 욕망으로 외부세계에 참견하고 두려움으로 장벽을 쌓아 보호한다.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영성이다.

● 본능 - 두려움과 욕망, 자연스러움과 어색함, 부끄러움과 떳떳함.
● 감성 -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
● 지성 - 모방과 학습, 분석과 기억.
● 이성 - 가치관과 이상주의, 가치판단과 명령수행.
● 영성 - 의사소통. 두려움의 극복과 욕망을 통제.

깨달음의 목적은 근원의 자연스러움에 도달하기다. 자연은 본래 자연스럽다. 인간의 마음을 자연의 자연스러움과 일치시킬 때 평정심에 도달한다.

공자의 중용, 노자의 무위, 석가의 중도, 선종불교의 평상심이 한결같이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떳떳한 것이다.

추(醜)가 어색함이면 미(美)가 자연스러움이다. 두려움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욕망 앞에서 추잡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예술가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인위의 어색함을 극복하려 한다. 철학자는 신성(神聖)의 떳떳함을 추구하고 세속의 부끄러움을 거부한다.

그것은 본능에 맞섬이며 본능을 극복함이고 본능에 호응함이기도 하다. 본능을 억압함이 아니라 본능과 동반하며 그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다.

욕망을 부정함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자연의 욕망과 일치시키고 나의 이상주의를 세상의 진보와 일치시키기다. 일치할 때 전율한다.

이성은 감성과 호응하고 감성을 극복한다. 영성은 본능과 호응하고 본능을 극복한다. 욕망이 인간을 부끄럽게 하고 두려움이 인간을 비굴하게 한다.

이성은 철학으로 도달할 수 있다. 가치관의 정립으로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영성은 삶과 죽음의 문제다. 죽음의 극복은 철학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막상 내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 이성이 받아들이려 해도 본능이 막아선다. 본능의 극복은 깨달음으로 가능하다. 신의 완전성과 소통해야 한다.


사랑을 깨닫기

깨달음의 결론은 이심전심이다. 이심전심의 결론은 소통(疏通)이다. 소통의 결실은 창조다. 왜 소통하는가? 창조하기 위해서 소통한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신의 창조를 재현함에 있다. 인간은 버려진 존재다. 버려짐은 비참이다. 비참의 극복은 구원이다. 구원의 끈은 의미다.

의미의 끈을 당겨 나아갔을 때 그 궁극은 완성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버려진다. 버려지므로 비참이다.

인간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아름다움으로 완성된다. 의미의 끝은 완성이다. 완성의 빛은 미(美)다. 미의 근거는 닮음이다.

왜 아름다운가? 닮았기에 아름답다. 닮은 것은 친(親)하다. 친한 것은 끌어당긴다. 끌어당기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최종결론은 사랑이다.

깨달음의 결실은 창조다. 창조는 닮음의 창조이다. 그것은 신의 완전성을 재현하기다. 닮음은 끌어당김이며 끌어당기는 것은 사랑이다.  

깨달음의 끝은 자유다. 자유는 실천을 촉발한다. 실천해야 한다. 무엇을 실천하는가? 소통을 실천해야 한다. 울림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혼자 소리를 내는 북은 없다. 고립된 채 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고립된 은자의 깨달음이 아니라 널리 세상과 소통하자는 것이 대승(大乘)의 정신이다.

서로는 만나야 한다. 만나서 손 잡고 통해야 한다. 통해서 창조해야 한다. 창조하여 아름다워야 한다. 그 방법으로 재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다.


닮음을 깨닫기

소통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소통의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다. 상대와 닮아야 소통할 수 있다. 닮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소통은 능동적이고 실천적이다. 소통은 사회적이고 참여적이고 대중적이다. 상대방과의 사회적인 관계에 따라 소통의 주파수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관계맺기가 중요하다.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친구가 될 것인가?

상대가 남편이냐 아내냐, 어른이냐 아이냐, 윗사람이냐 아랫사람이냐에 따라 소통의 코드가 달라지고 주파수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출력이 필요하다.

남편이든 아내든 어른이든 아이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구분없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높은 출력의 파워가 필요하다.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깨달음은 세상과의 관계맺기다.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위치는 성별로도 결정되고 신분으로도 결정된다.

인종으로도 결정되고 혹은 장애자로도 혹은 정치적 소수자로도 결정된다. 그 위치는 자신이 스스로 정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자유다.

자신을 여자로, 혹은 남자로, 혹은 아버지로, 혹은 남편으로, 혹은 노예로, 혹은 주인으로, 혹은 친구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패한다.

규정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주파수가 달라져서 실패한다. 주파수를 바꾸다가 실패한다. 그 규정을 뛰어넘기 위해서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라는 이름의 높은 출력이 필요하고 파워가 필요하고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온 세상을 한꺼번에 커버할 수 있는 높은 출력이 아니면 안 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 그 규정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만큼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관계맺기는 만남이다. 깨달음은 세상과의 거룩한 만남이다. 세상 전부와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 전부와 닮아야 한다. 깨달음은 거룩한 닮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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