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860 vote 0 2006.10.19 (00:13:36)

깨달음의 구조

  

참된 깨달음은 어떤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 그 자체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인식의 구조를 이해하기다.

인식은 외부에서 인간의 눈과 귀와 코로 주입되는 데이터와 자기 내부에서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가 옳게 만날 때 이루어진다.

하나의 실행파일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은 한정된다.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구동해야 한다.

깨달음은 인간의 뇌 내부에서 사용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최고수준의 소프트웨어를 일깨워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 인식되는 데이터의 패턴을 읽은 다음 과거에 동일한 데이터를 처리한 기록을 활용하여 대용량의 정보를 일거에 처리하는 것이다.

인터넷 웹페이지를 읽는 원리도 같다. 열어본 페이지 목록은 저장된다. 처음 읽는 페이지는 시간이 걸리고 열어본 페이지는 빨리 읽는다.

핵심은 패턴의 기억 및 대조과정이다. 과거의 무수한 경험을 일일이 대조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압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보의 압축을 통하여 질(質)적인 깊이에 도달하기다. 그것은 팩트와 패턴과 로직과 매커니즘과 패러다임의 집적원리로 가능하다.

그것은 정보에 대한 정보, 곧 메타정보다. 지식이 외부에서 입수되는 데이터라면 깨달음은 메타정보를 활용하여 내부에서 그 데이터를 처리한다.

인식의 진화

동물과 식물은 생태계 환경 안에서 진화해 왔다. 인간의 뇌내환경도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인식은 내뇌 생태계 안에서 진화한다.

눈과 귀와 코와 몸으로 입수한 데이터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과거에 기억된 데이터와 대조하여 패턴의 일치가 발견될 때 의미가 부여된다.  

무의미하게 축적되는 데이터들이 과거의 데이터와 대조되는 과정에서 중요도가 판별되어 메타정보로 진화한다.

데이터는 의미와 가치를 먹고 자란다. 하나의 데이터가 뇌 안에서 자리잡고 다른 데이터와 뉴런으로 이어져 짝을 짓고 관계를 맺고 성장한다.

의미와 가치를 얻지 못한 데이터들은 뇌 안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사멸된다. 대부분의 데이터들은 뇌 안에서 오래 생존하지 못한다.

하나의 정보는 다른 정보와 만나고 맞물리고 함께 설 때 메타정보로 진화한다.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고 미학적 포지션을 할당받아 소통에 기여한다.

보다 진화한 정보들은 뇌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더 많은 뉴런으로 연결된다. 깨달음은 뇌 안에서 최고단계로 진화한 메타정보다.

메타저보는 데이터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가진다. 깨달음은 메모리에 상주하면서 파일을 처리하고 운용하는 즉 역할있는 정보다.

깨달음은 뇌 안에서 최고수준의 정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다. 다른 모든 정보의 출입에 개입하며 모든 형태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관(觀)을 깨닫기

가치는 함께 서기다. 세상 앞에서 어떤 자세로 설 것인가. 신 앞에서 단독자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전부와 일대 일로 맞장을 뜨기다.

세상을 바라보되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 볼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굽어볼 것인가 혹은 대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것인가이다.

깨달음은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는 노예의 시선도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는 가부장의 시선도 아니다. 정상에서 또다른 정상을 바라보기다.

중요한 것은 세상과의 관계맺기다. 그것은 세상과의 맞짱 승부 기싸움이다. 그 승부의 결과에 따라 노예 혹은 주인 또는 친구의 관계로 정립된다.

세상과의 관계맺기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는가에 따라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사회와 역사에 대한 태도, 종교에 대한 태도가 결정된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아(自我)의 포지션이 이후 모든 지식의 출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이 관(觀)이다. 관(觀)은 자아의 눈높이다.

관(觀)은 세상을 바라보는 격이다. 제왕의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가 노예의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가이다. 깨달음은 신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존재에 대하여 인생관이 있고, 미학에 대하여 가치관이 있고, 세상에 대하여 세계관이 있다. 모두 이에 연동되어 결정된다.

진위에 대한 태도, 선악과 미추에 대한 태도, 자유와 억압, 성(聖)과 속(俗)에 대한 태도가 모두 세상과의 관계맺기에 따라 연동되어 결정된다.

깨달음이 자아의 포지션을 결정한다. 한 번 결정된 포지션이 이후 뇌 안으로 입수되는 모든 데이터를 검열하고 대조하여 처리하기 때문이다.

어느 수준의 깨달음으로 자신의 관(觀)의 눈높이를 성립시켰는가에 따라 자신의 뇌가 어떤 유형의 데이터를 저장 혹은 폐기할 것인지가 규정된다.

만약 당신이 세상 앞에서 두려워 하고 자신없어 한다면 그것은 소년기에 성립된 당신의 관(觀)이 대부분의 데이터를 잘못 처리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자아를 깨닫기

깨달음은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자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자아는 욕망과 두려움으로 형성되어 있다.

식욕과 성욕,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가치판단의 척도가 된다. 부끄러움과 떳떳함, 어색함과 자연스러움이 또한 나침반이 되고 길잡이가 된다.

그것이 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인생관이 되고 세계관이 된다. 이는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본능 수준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관이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본능이 메모리에 상주하며 모든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가 되어 감성을 통제하고 이성을 제어한다.

모든 소통하는 것에는 심과 날이 있다. 욕망과 두려움이 심이 되고 부끄러움과 떳떳함이 날이 된다. 그것을 이상주의와 가치관으로 바꾸어야 한다.

어린이의 미숙한 자아를 장례치러야 한다. 욕망을 장례치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장례치러야 한다. 이상주의의 심으로 대체해야 한다.

떳떳함과 부끄러움, 자연스러움과 어색함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본능과 감성과 이성이 있다. 본능이 뇌 안에서 모든 데이터를 검열하고 보고하는 최고 수준의 통제기관이다. 감성과 이성은 하부구조에 불과하다.

그것은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다. 이것이 가치판단의 90프로를 결정한다. 그것이 자아다.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내임을 깨닫기

깨달음은 신의 자아가 나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소통함으로써 가능하다. 나와 너의 경계가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자아가 나의 존재를 보호하는 집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마음을 연주하는 즉 소통의 통로가 되고 정거장이 되는 것이다.

욕망과 두려움의 본능이 자아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소통의 정거장이 아니라 공격과 방어의 진지가 되는 것이다.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은 소통이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소통, 나와 너의 소통, 나와 세상과의 소통, 나와 우주와의 소통, 신의 완전성과의 소통이다.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에 성공해야 한다. 모든 성공은 타인과의 소통의 성공으로 하여 얻어지고 모든 실패는 사회적인 소통의 실패로 하여 얻어진다.

나와 너와 통할 때 곧 내가 너임을 깨닫는다. 나와 우주와 통할 때 곧 내가 우주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서로는 하나가 될 수 있다.

통하는 크기 만큼 나는 너다. 그것은 본능의 자아를 넘어서서 이성과 감성을 통제하는 영성의 자아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본능은 자아가 외계에 대하여 공격하고 방어하는 진지가 되는 것이고 영성은 자아가 외계에 대하여 소통의 정거장이 되는 것이다.

영성을 깨닫기

인간의 마음을 통제하는 힘은 첫째가 본능, 둘째가 감성, 셋째가 이성이다. 이성은 학습된 것이고 모든 학습은 본질에서 모방된 것이다.

모방은 가장 낮은 단위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모방은 무의미한 단순 반복작업에서 기능한다. 이성은 시험문제를 푸는 단순작업에서 쓸모가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죽음의 위험 앞에서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 누군가가 앞장을 서 준다면 이를 따라할 수는 있다.

이성은 모방이고 모방은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모방할 대상이 있을 때 한해서이다.

지도자가 있을 때 인간은 얼마든지 이성적이다. 누군가가 앞에서 시범을 보여줄 때 인간은 충분히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고독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는 이성을 잃는다. 영성은 본능화 된 이성이다. 영성의 계발은 깨달음에 의해서 가능하다.

불의를 보았을 때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굶주린 사람이 배고픔을 느끼듯 정의에 굶주리고 미에 굶주리고 성(聖)에 굶주려야 한다.

본능이 감성과 이성을 통제한다. 영성이 본능을 대체해야 한다. 욕망도 극복하고 두려움도 극복하고 부끄러움도 극복하고 어색함도 극복해야 한다.

이성은 옳다고 판단해서 행동한다. 영성은 옳지 않음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영성은 얼굴에 나타난다. 비굴한 자는 비굴한 표정을 짓는다. 거룩한 자는 거룩한 표정을 짓는다. 영성이 본능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영성은 다르다. 이성은 단지 시험문제의 정답을 찍을 뿐이다. 영성은 옳지 않음에 분노하고 아름다움에 찬탄하고 소통에 전율한다.

영성이 진짜다. 불의에 분노해야 진짜고 진리를 욕망해야 진짜고 그릇됨에 어색해해야 진짜고 자연에 자연스러워 해야 진짜다.

누군가 선례를 보이면 이를 모방하고 지도자가 명령하면 추종하는 이성은 진짜가 아니다. 좋은 연주가 관객의 심금을 울리듯 몸으로 반응해야 진짜다.  

카리스마를 깨닫기

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출력과 주파수다. 주파수는 코드의 일치를 조율하고 출력은 넓은 범위를 커버하게 한다.

카리스마와 관(觀)이다. 영혼은 카리스마와 관을 필요로 한다. 관은 함께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드가 맞는 것이다. 가치관, 인생관, 역사관이다.

관을 타고 나는 것이 끼다. 끼가 있어야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이야 말로 소통의 문제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끼가 있어도 카리스마가 없으면 소통의 범위가 좁아진다. 이상주의가 없으면 끼가 있어도 가치관이 맞아도 좁은 범위에서 소통할 뿐이다.

끼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카리스마는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꿈이다. 카리스마는 이상주의고 이상주의는 꿈이다.

끼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발굴해야 한다. 카리스마는 쌓아가는 것이다. 최고의 눈높이를 얻는 것이다. 정상에서 본 풍경을 기억하는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최대출력을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꿈이고 이상주의다.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소통을 위해서는 심과 날이 필요하다. 심이 카리스마다. 심이 꿈이고 이상주의다. 날이 관(觀)이다. 관은 끼고 코드의 일치다. 함께 서기다.   

모든 소통하는 것에는 출력과 주파수가 있다. 영혼이 영혼인 것은 출력과 주파수가 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있고 관이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출력과 주파수를 얻는 것이다. 주파수는 함께 서기로 얻고 출력은 정상에서 본 풍경을 기억함으로 얻는다.

인간은 자아를 가진다. 자기보호의 두려움과 자기과시의 욕망을 가진다. 그 자아를 넘어설 때 카리스마를 얻는다. 출력을 얻는다.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

● 본능의 자아 - 욕망과 두려움의 심과 부끄러움과 떳떳함, 어색함과 자연스러움의 날을 가진다.  

● 영성의 자아 - 카리스마와 이상주의가 심이 되고 끼와 가치관이 날이 된다.

카리스마가 카리스마인 것은 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떨림들이 모여 큰 맥놀이를 만드는 것이다. 출력을 증폭할 수 있으므로 소통할 수 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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