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read 3062 vote 0 2008.12.31 (00:35:39)

 

멀린스키 드라마

한 젊은이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곧 체포되었고 사형집행일이 정해졌다. 그는 죽기 전에 멀리 있는 고향의 부모님을 뵙고 싶었으나 임금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사형수의 친구가 보증을 서서 대신으로 구속되었고 사형수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고향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사형집행일이 되어도 죄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친구가 대신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임금은 친구를 믿다가 목숨을 잃게 된 그 어리석은 ‘멀린스키’를 향해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

물론 독자 여러분운 이 장면에서 ‘짜잔’ 하고 사형수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형수는 곧 돌아오려고 했으나 홍수로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해 시일이 지체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신 구속된 멀린스키 친구는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친구인 사형수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에 감동한 임금이 두 사람을 모두 방면하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사형수는 돌아왔을까?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쩔텐가? 그래도 그 친구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믿음을 후회하고 땅을 쳤을까?

네가 내라는 사실을 안다면 내가 구속되고 친구가 대신 자유를 찾은 것이나 내가 자유롭게 살고 친구가 사형을 당한 것이나 실로 다를바 없다. 그것은 믿음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 멀린스키는 죠지 클루니 주연의 ‘웰컴 투 콜린우드’에 나오는 대리로 옥살이 해주는 사람. 사실은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조어. 벨리니(큰 건수) 멀린스키(대리 옥살이)

사랑은 완전성에 대한 갈망이다. 완전하지 못하다면 어떤 경우에도 비참 뿐이며 비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살아도 이미 죽은 것이다.

그 친구가 사형수를 대리하여 감옥행을 자청한 순간에 이미 완전은 성립되었으며 구원은 이루어졌다. 그는 의미라는 끈을 찾았고 그 끈을 굳게 잡았다.

믿음은 믿음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자 할 뿐, 사랑은 사랑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자 할 뿐, 구원은 구원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자 할 뿐이다.

그렇다. 신은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그 친구가 대리하여 죽음을 자청할 때 신의 창조는 성공한 것이다.

그 순간 임금은 신의 미소를 본 것이며 대신 자유를 얻은 사형수가 신의를 지켜 돌아왔는지 아니면 그대로 줄행랑을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은 자신의 걸작인 인간을 완성하고자 한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완성하는 방법으로 신의 미소에 응답하고자 한다.

과연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과연 돌아온 몽룡은 춘향에게 구박당하지도 않고 수염을 뜯기지도 않고 잘 살았을까? 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실로 춘향은 몽룡을 믿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자부심 때문에 변학도와 대결한 것이며 그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다. 춘향은 자신을 구원했을 뿐이다.

신데렐라는 짝을 잘 만난 덕에 하녀에서 공주님으로 승진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하녀의 모습으로도 공주의 모습으로도 존재할 뿐이다.

당신은 하녀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주일 수도 있고, 공주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하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뿐이다. 왕자님이 특별히 하녀를 공주로 신분상승시켜 주는 일은 결단코 없다.

영화의 대사에 따르면 콜린우드에 사는 젊은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벨리니'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신의 '벨리니(구원)'를 찾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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