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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700 vote 0 2014.04.08 (23:13:27)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3668


    작금의 정치판 돌아가는 꼴새는 그냥 후삼국지다. 흔히 유비의 아들 유선을 바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유선은 뛰어난 군주였다. 말년에 남긴 바보 에피소드가 있지만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다. 바보인 척 한 거다.


    대부분의 군주들이 처음 3년이나 5년 정도 정치를 잘하다가 막장을 타게 되는데 유선은 재위기간만 40년이다. 이 정도면 나라가 속에서부터 썩는게 보통이다. 유비그룹에게 있어서 서촉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고, 고조 유방이 그랬듯이 일찌감치 중원으로 진출하는게 맞다.


    형주를 잃고 중원진출이 불가능해졌을 때 촉은 끝장난 것이다. 이후 제갈량이 여러번 공세를 폈지만, 한 번도 의미있게 이기지 못했다. 제갈량의 거듭된 북벌은 국력의 차이가 10 대 1로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했던 공세적 방어에 불과하다. 국가의 목표가 사라졌으므로 촉은 망하는게 맞다. 인재들은 슬금슬금 빠져나가서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역사책을 좀 읽으면 알게 된다. 역사는 결코 우연한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다. 기본 컨셉이 있고 그 컨셉이 죽으면 바로 막장 탄다. 뛰어난 로마라도 한번 황제가 암살당하면 뒤이어 등극한 황제들의 수명이 길어야 3년을 못 간다.


    콤모두스 이후에는 3개월, 2개월짜리 황제도 등장한다. 그런 줄줄이 낙마 시리즈가 한 동안 계속된다. 내놓고 하다가 들키는 동성애자 황제가 등장하는가 하면 마마보이 황제에 이어 군인황제시대로 치닫는다.


    개판 이후 왕개판 다음에, 대왕개판 이후 풍비박산개판개판으로 가는 코스다. 이러한 개판시리즈는 군주의 능력과 무관하다. 역사의 컨셉이 사라지면 이렇게 된다. 로마에는 전부 바보들만 모였나 하고 혀를 차게 된다.


    삼국지는 조조와 유비의 대결이다. 조조와 유비가 죽으면서 긴장이 풀리고 목표가 사라지자 인물은 퇴행을 거듭했다. 이후 조씨와 사마씨와 손씨의 막장경쟁은 기가 찰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유선은 얌전했다. 실은 위와 촉과 오가 다 망해버린 것이다. 유비와 조조의 대결이라는 본질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비와 조조의 대결은 무엇인가? 천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보통은 신으로부터 황제가 권위를 위임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듣기좋게 꾸며낸 말에 불과하다. 바보라서 그런 소리를 믿을 것인가?


    본질은 의사결정이다. 조조와 유비의 대결구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힘을 가진 재벌과 팀을 가진 지식인의 대결구도다. 대한민국은 본질에서 재벌과 지식인집단의 대결이다. 힘은 단기전이요 팀은 장기전이다. 단기전은 생존전략이요 장기전은 세력전략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기전에는 힘을 가진 조조가 이기고 장기전에는 팀을 가진 유비가 이긴다.


    그러나 이 규칙은 제한된 공간, 닫힌 공간, 고립된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식인의 장기전은 외부와 교통하고 개방할 때 의미가 있다. 촉은 고립되어 있다. 고립된 채로 장기전은 의미가 없다. 촉의 멸망은 필연이다. 오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손권도 막판에는 찌질이 짓이 극한을 넘어 어린아이보다도 못하게 된다. 긴장 풀리면 그렇게 된다.


    유비와 조조의 대결이라는 역사의 본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이후 컨셉을 잃어버렸다. 본질적인 대결구도가 사라진 것이다. 안철수와 박근혜는 본질이 같아서 대결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외부로 뻗어나가려면 장기전을 해야 하고 지식인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런게 사라진 것이다.


    모두에 링크한 글은 장량의 4가지 수수께끼에 대한 것인데, 특히 세 번째가 흥미롭다. 장량의 지혜는 도무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장량은 황석공이라는 노인에게서 태공병법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책은 없다.


    노인은 장량보다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었다. 다음날 장량은 새벽부터 나갔지만 역시 노인이 이겼다. 이는 한 번 역설이다. 처음 약속은 게임의 규칙을 정한 것이며, 두 번째 약속은 장량이 졌다. 노인이 자의로 규칙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장량이 이겼다. 이는 두 번의 역설이다.


    절대성이 아니면 안 된다. 한 번 역설은 상대성이고 그 상대성에 대한 상대성은 절대성이다. 모사는 상대성이다. 장량은 모사지만 모사로는 온전히 이기지 못한다. 모사로 일어난 정도전은 졌다. 그러나 장량은 잘 먹고 잘 살았다. 모사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태공병법은 노인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해야 이길 수 있다. 장량은 구조론의 방법을 쓴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가려면 흉중에 절대주의가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 모사짓이나 하다가는 정도전처럼 죽는다. 장량은 원래 도교다. 도교는 역설이다. 모사는 역설을 쓴다. 모사는 소피스트다. 


    일찍이 세객으로는 소진과 장의가 있었으나 그들의 변론술은 소피스트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도교는 역설이지만 그 역설을 넘어선다. 역설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역설은 움직이는 것으로 고정된 것을 친다. 


    역설의 역설은 움직임 안에서 또다른 움직임을 낳는다. 항해하는 배의 움직임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극복한다. 도교는 역설이고 상대주의지만 이는 하수들이 잘못 아는 것이고 도교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태산처럼 의연해진다. 


    도교는 유교에 졌다. 고조 유방은 도교사상으로 국가를 다스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나라는 흉노에 굴복하는 신세가 되었다. 왜 역설인 도교가 정설인 유교에 졌을까? 유교가 제자를 길렀기 때문이다. 장기전으로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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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 이만큼 해보고 찌그러졌는데 한국은 꽃도 피기 전에 이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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