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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ahmoo
read 1785 vote 0 2019.08.06 (10:13:43)

얼마 전 지붕의 목조 부분이 불에 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건축의 위엄을 전세계에 다시 상기시켰다. 랭스 대성당이나 독일의 쾰른 대성당까지 고딕 성당을 보면 신의 영역에 닿으려는 인간의 극단적 욕망을 보여준다. 빈틈 없이 수많은 조각상으로 뒤덮여 보는 이를 압도하는 파사드와 실내공간뿐 아니라,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오른 첨탑과 아득히 높은 천정 궁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초월적 집중력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러나 눈길 둘 곳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고딕건축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기둥과 아치라는 구조적 핵심을 감추고 있다. 덫씌워진 구조를 하나둘 해체하고 나면 오벨리스크와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와 같은 기둥 요소와 아치로부터 확장된 돔 요소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만든 시대는 무슨 의도로 단순한 것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엮어내었을까.
 
이들은 세속을 초월하는 표상을 통해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교황 권력의 통제권에 두려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첨탑과,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조각 장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신의 권위를 가져와 대중을 무릎 꿇리려는 위용을 표현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혁명이 있기까지 '신의 건축'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건축, 특히 조선시대 한옥 건축은 그 태도와 지향점이 사뭇 다르다. 한옥의 본질을 기와나 목구조와 같은 재료로 규정하면 안 된다. 한옥의 본질은 재료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있다. 예를 들어 볕이 잘 드는 앞마당과 숲이 있는 서늘한 뒷마당을 건축물이 막아서지 않는다. 툇마루를 열자 온도 차에 의해 공기가 저절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한옥은 공간을 채우지 않고 적절히 비워놓아 시선이나 공기나 사람의 움직임을 순환시킨다. 고딕건축이 압도적으로 채우고 솟아오르게 하고 시선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현대 건축의 대가인 안도 다다오는 동양 건축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했다. 빛과 바람과 안팎을 연결하는 풍경을 조형적으로 담아내는 일이 건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것이다.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철학이다. 본질을 감추고 포장하면 철학이 없는 것이다. 고딕의 복잡함은 그저 오벨리스크와 아치 하나로 끝난다. 현대 한옥도 기와와 공포 서까래를 얹어 구조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해야 아슬아슬한 조형적 긴장과 구조적 도전이라는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오히려 비워서 사람이 소통할 작은 공간 하나 이끌어낼 때 건축의 본질에 더 가깝다.

자연 동굴을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기둥을 세우고 중력에 맞서려고 시도하면서 인간은 신의 권력을 맛보았다. 자신의 힘을 모두 모아 더 높고 더 우뚝 세워 100층 500m가 넘는 마천루를 만들어냈다. 고딕 대성당의 권위를 만들어낸 종교의 권위는 이제 자본의 권위로 대체됐다. 신의 건축은 사람이 마주 앉을 자리 대신 권위와 경외감으로 채우려 한다.


반면 인간의 건축은 사람과 환경이 만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사람이 만나는 자리도 무척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 마치 한옥을 짓는 사람이 공기의 흐름과 습기의 영향과 빛의 상호작용을 살피고, 바깥 풍경을 액자에 담을 요량으로 창 크기와 위치를 고민하듯이 그렇게 섬세하게 공간에서 벌어질 다양한 관계의 국면을 살펴야 한다.

현대는 '인간의 건축'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권력이 대중들에게 넘어오는 시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 권력을 만들고, 그 권위로 자신들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됐다. 사용자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사용자 연대의 형성과 발전이 더욱 중요하다. 권력을 가진 대중들이 자각할 때 권력이 소수에 독점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섬세하게 반영되는 인간의 건축이 태어날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08.06 (18:09:14)

~오히려 비워서 사람이 소통할 작은 공간 하나 이끌어낼 때 건축의 본질에 더 가깝다.~

심오한 미학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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