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곡성의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사람들은 스릴러 물을 보고 범인이 누군지를 알려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가 나쁜놈인지를 찾으려 한다. 문제는 영화를 한참 보고도 감독의 의도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 일광, 처녀 죄다 범인일 수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분석은 누가 범인인지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수준을 잘 넘지 못한다. 누구도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범인이어야 한다고 두뇌가 자동으로 연산하는데, 범인이 없다고? 그게 영화야?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궤변처럼 들리겠지만 진실은 다른 차원에 있다. 이런 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어떤 두 사람이 다투고 있을 때, 과연 당신은 누가 나쁜놈인지 쉽게 특정할 수 있는가? 라쇼몽 말이다. 내가 어느 한 쪽 편을 들었을 때, 다른 쪽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낀 적이 없는가? 우리는 과연 굴뚝 속에서 모두 검댕이 묻은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알 수 있는가.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처럼 느껴진 적은 없는가. 헷갈리는 게 정상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르단 말인가? 아킬레스한테 한번, 거북이한테 한번 물어보면 그때마다 둘의 간격은 줄어들 뿐 역전이 되질 않는다. 둘다 모두 상대에 가까워질 뿐이다. 누가 누구를 제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무슨 말이냐, 애당초 우리가 빠르다고 하는 표현에는 제3의 기준이 전제된 것이다. 사실이지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가까워지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땅위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뿐, 우주라면 다르다.


우주에 점 두 개를 보고 과연 우리는 그 둘이 가까워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때 말을 잘 해야 한다. 사실 내가 그것을 보고 있는 순간 가까워지는지 말할 수는 있다. 나의 관점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점을 점 두 개만으로 좁히면 말할 수 없다. 관측자를 배제하면 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가까워지는 지 알려면 제3의 점과 두 점을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알 수 있다가 없다가 한다. 


같은 질문은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다. 어떤 두 놈의 운동을 비교하려는 상황이다. 이거 오래된 인류의 떡밥이다. 예전에 제논이 했던 질문이다. 지구에서는 땅바닥이 기본 세팅되어 있으니깐 그냥 알 수 있는디, 우주에는 땅바닥이 없다. 그 땅바닥을 뭘로 하지? 우주에서 절대적인 것은 있는가? 나도 너도 상관없는 것은? 그건 빛의 속도다. 또는 중력이다. 사실은 에너지다. 괜히 질량이 에너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빛과 중력은 그 자체로 에너지는 아니나,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에너지가 뭐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신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영원히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 바깥에 뭐가 있는지 우리는 영원히 가볼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은 추론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영원히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냥 물어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백인이 흑인에게,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속마음을 물어본들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임진왜란의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진실을 물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이 사는 물질세계에서 에너지는 자식입장에서 부모의 마음과 같다.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뿐,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다. 내가 새끼를 낳아보면 대략 그렇다고 느낄뿐. 그들의 머리속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잖은가? 재밌는 것은 영화 곡성에 나홍진이 끊임없이 제3의 존재가 뭔지를 노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에게 빛의 속도와 같은 절대적인 것이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당신이 무시하던 바로 그것.


(이 아래는 스포일러) 


독버섯.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 마을은 통째로 독버섯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그냥 다 미쳤다고. 어느 한 놈 미치지 않은 놈이 없다. 모두가 미쳐서 날뛰는데, 굳이 범인 하나를 특정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쇼몽이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과 같이 곡성은 독버섯을 원료로 만든 건강식품이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켰음을 암시한다. 다만, 관객은 범인찾기에만 집중하므로 그게 잘 보이지 않을뿐. 


정답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에 있다. 문제는 그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 눈뜨고 보는데도 안 보인다. 인간의 관심사가 상대성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 니가 날 악마라고 생각하면 내 머리에 뿔이 보이는 거야. 빛과 중력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려면 일단 그것의 추론에 다가간 매개체를 부정해야 한다. 역설법의 탄생이다. 나는 아니고, 너도 아니고,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고 있다면, 우리는 놀아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거.


진짜 범인은 대개 너랑도 나랑도 별 상관없어야 하는 것이다. 돈이 돈인 이유다. 달러의 쓰임은 불쏘시개뿐이다. 그나마 가성비도 안 나오는 게 문제다. 뒤를 닦거나 코를 푸는 휴지로 쓰려고 해도 너무 뻣뻣하다. 그래서 달러는 돈이 된다. 대신 그 돈이 누구 손에 있는 지가 중요하다. 거지의 손에 들린 달러는 의미가 없다. 이왕이면 손흥민의 손에 들려야 좋다. 그래야 너와 내가 합의할 수 있다. 상황이 납득이 된다. 그게 바로 관계다. 상대성은 반드시 절대성에 의지한다. 그런데 잘 안 보인다. 상관도 없어보인다. 과학자들이 중력의 매개체를 찾으려고 한다는데, 글쎄, 나올까? 그것을 찾는 순간 중력은 절대자의 지위를 잃어버린다. 상대성으로 편입된다. 별볼일 없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곡성의 인기를 고민해왔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서 좋아하는 건가? 그건 아닌 거 같고.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미장센이 훌륭해서 좋다고 하는 건가? 모두 아니다. 곡성에는 리얼리즘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겪어서 아는 어떤 것. 분명한 것은 곡성이 라쇼몽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라쇼몽이 교착된 상황을 보여준다면, 곡성은 교착의 해결법을 보여준다. 나홍진은 인터뷰에서도 영화의 진짜 의미를 안 밝히던데, 아마 방에서 혼자 낄낄대고 있을듯. 혼자 낄낄대기 없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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