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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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76 vote 0 2012.11.13 (15:14:47)

     대오(大悟) ㅡ숭산-

 

    대오란 우리가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자유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대비를 깨달아 대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우리가 매순간 진리 속에서 언제나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려듣기 쉽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인간은 각자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자신들만의 견해, 조건, 상황에 집착해 욕심, 분노, 무명을 갖는다. 생각이란 언제나 변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 변하는 생각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생각을 좇기 때문에 진리의 삶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선불교는 무명과 방황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라는 자각을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이미 완전하다. 그 점을 깨닫고 싶으면 먼저 각자의 견해, 조건, 상황을 놓아버려야 한다.

 

    맑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라.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 다음 단계는 실천이다. 순간순간 올바른 상황,상황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인식해 찰나마다 올바른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오' 말 그대로 큰 깨달음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깨달아 이 세상을 돕느냐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하고 움직이므로 영원한 것은 없다. 모양이 '공' 하고 '공'이 모양이다.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구가 하늘이고 하늘이 지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이다. 같지만 또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이름과 모양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언제나 움직인다.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한다.모든 것이 공허하므로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요, 하늘이 땅이요, 땅이 하늘이요......"이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어떤 점에서는 맞지만 여전히 생각일 뿐이다. 여전히 이름과 모양에 집착해 있는 상태이므로 개념적인 상태이며,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완벽한 공에서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다. "하늘은 단지 하늘이고, 땅은 그저 땅일 뿐" 이다. 우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완벽한 정적의 상태이다.

 

    진정한 공을 깨달음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완전하게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늘이 하늘이고 땅은 땅이다." 이것이 또 다른 이름의 순간의 세계이다.

 

    찰나찰나가 다름 아닌 세계가 진리이며 실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기능이 없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옳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진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올바른 기능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 진리를 통해 나와 중생, 이 세계를 연결시킬 것인가, 이 진리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이 실용이다. 답은 아주 쉽다. 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하 것은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승에 집착해서는 안 되지만, 예리한 눈을 가진 선사를 찾을 때까지 이 스승 저 스승 돌아다녀야 한다.

 

    첫눈에 스승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해 선수행을 하면서 많은 얘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곧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알게 될 것이다. 아무도 당신의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으니 당신 스스로 해야 한다.

 

    많은 스승들이 자기들이 깨달았다고 주장하지만 깨달음에도 수준이 있다. 첫 번째 깨달음이 있고 본래 깨달음이 있고 마지막 깨달음이 있다.

 

    첫 번째 깨달음은 '공'을, 본래 깨달음은 '여여'를 마지막 깨달음은 '즉여'를 깨닫는 것이다. 여기 사과가 하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사과라고 하면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 공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과인가, 아닌가, 만약 여러분이 바닥을 "탕"치거나 '할'하고 소리치면 이것이 첫번째 깨달음이다. 혹은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푸르다'거나 '사과는 붉고 벽은 하얗다' 라고 하면 '여여'의 대답을 준 것이다. 그러나 사과를 한입 깨물어 먹으면 바로 '즉여'가 된다.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즉여'야말로 완전한 대답이다.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아니다. 예리한 눈을 가진 선사는 이 세 가지 깨달음을 구별해 낼 줄 안다. 자유롭게 가르침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깨달음에 집착해서도 안된다.

 

    '깨달음' 은 단지 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깨닫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선 수행을 한다.부처님은 '모든 것은 이미 깨달았다'고 설파했다. 한 유명한 선사의 말대로 '생각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을 가지면 어떤 행동도 바로 '즉여'가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혹은 더욱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조차 생각이고 욕심이며,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만든다.

 

    남전선사는 "평상심이 도" 라고 말했다. 매일매일의 마음이 이미 대오이다.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뱀을 그리면서 다리를 그려넣으려 하는 것과 겉다.

 

 

    ###

 

 

    숭산의 설법으로 생각되는데 검색해서 찾았소. 내용은 잘못된게 워낙 많아서.. 심지어 이명박이 전매특허인 실용까지 나왔음.. 푸하하하하하.. 웃겼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하면서 성철에게 시비거는듯한 장면도 유치하고.. 찾자면 한 스무가지 이상 잘못된 곳을 발견할 수 있는데 뭐 밑줄 그어가며 일일이 반박하기는 시간낭비..

 

    성철이 금이라면 숭산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개똥 정도에 비할 수가 있소. 개똥이라도 급한대로 약에는 쓸 수 있을 것이오. 각설하고 숭산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대략 짚어보시오. 단 너무 길면 좋지 않소.

 


[레벨:30]솔숲길

2012.11.13 (15:48:21)

흰돌을 검은 돌이라 하고 

검은 돌은 흰돌이라고 말하고 있소. 

싸워봤자 집착일 뿐이고 

애초에 공하니 

걍 생각없이 살으라 하오. 

그런데 숭산은 바둑판의 존재를 모르오.

그래서 숭산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소. 


[레벨:30]솔숲길

2012.11.13 (16:02:28)

퇴계과구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2.11.13 (15:48:27)

숭산말대로

대오가 있다면, 소오도 있나?

초오도 있으면 말오도 있나?

깨달았으면 깨달았고, 못깨달았으면 못 깨달은 것인데,  

깨달음에 수준과 구분을 둔 것은 자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

 

성철이 말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의 진정한 의미는

산과 물 자체의 실체를 전제로

산 자체의 완전성, 물자체의 완전성을 말하는 것.

그 윗단계에 산과 물 자체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어우러졌을 때의 완전성이 있는 것이고, 산과 물이 대자연의 일부로서 대자연의 다른 모습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자연 자체에 완전성이 있다.

 

숭산은 완전성의 실체를 다만 미망이나 찰라로 본 것이 문제. 깨달음을 단계적 절차로 분절적으로 나눈 것이 문제. 깨달음은 내적인 것이면서도 외부와의 관계속에서 랑데뷰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깨달음을 마음의 문제로 국한한 것이야 말로, 실용을 논하다가 나사빠진 허무에 불과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11.13 (15:52:27)

 

필요와 쓸모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

필요한 것이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님.

필요한 것은 때가되면 다 쓸모가 저절로 생겨남.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11.13 (16:05:45)

" 그러나 여전히 이름과 모양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언제나 움직인다.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한다.모든 것이 공허하므로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요, 하늘이 땅이요, 땅이 하늘이요......"이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어떤 점에서는 맞지만 여전히 생각일 뿐이다. 여전히 이름과 모양에 집착해 있는 상태이므로 개념적인 상태이며,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완벽한 공에서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다. "하늘은 단지 하늘이고, 땅은 그저 땅일 뿐" 이다. 우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완벽한 정적의 상태이다.

 

    진정한 공을 깨달음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완전하게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늘이 하늘이고 땅은 땅이다." 이것이 또 다른 이름의 순간의 세계이다.

 

    찰나찰나가 다름 아닌 세계가 진리이며 실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기능이 없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옳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진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올바른 기능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 진리를 통해 나와 중생, 이 세계를 연결시킬 것인가, 이 진리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

 

...................................................................

 

숭산의 글을 구조로 풀어본다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늘이 하늘이고 땅은 땅이다. ..이는 구조의 요철의 형태를 표현한 말이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요, 하늘이 땅이요, 땅이 하늘이요.... 이는 관계를 표현만 말이다. 즉 '사이'를 나타낸다. 교류이다.

 

이것으로 끝났는데 기능을 찾는다. 쓸모를 찾는다. 이미 깨달음인데 여기서 다시 스승찾아 깨달음을 구하러 다닌다.

여기서 자기 드라마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인가해줄 자를 찾아 다닌다.

 

 

 

[레벨:15]오세

2012.11.13 (16:24:51)

인간이 진리를 깨닫고 그 다음엔 세상을 구하고 또 그 다음엔 우주를 구하고 또 그 다음엔 우주의 우주를 구하고. 더하기 더하기 또 더하기.

깨달음이 연속극도 아니고 to be continued라니 :(

깨달음은 더하기도 아니고 연속극은 더더욱 아니오.
깨달음은 마이너스고 한장면으로도 충분히 완성되는 IMPRESSION이오. 그렇게 각인되는 완전함이 깨달음이오. 깨달음은 시간을 공간으로 압축하는 것. 봄여름가을겨울을 한컷에 담아내는 것. 그렇게 완전하기에 더할 것도 없고 덧붙일 말도 없소.

깨달음에 단계 따위는 없소. 전구에는 불이 들어오는 단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원과 연결되면 불이 켜지는 것이 깨달음이오. 봄여름가을겨울은 단계별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태양과 지구의 만남이 그려낸 공전궤도에 이미 다 들어있소.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연결된 완전성의 회로에 이미 불이 들어왔음을 보는 것이 전부요. 완전성의 궤도에 올라타 봄여름가을겨울을, 기승전결의 흐름을 타는 것이 전부요

진리는 인간의 기능을 위해서 실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오.
진리는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리에 의하여 있는 것이오. 그것은 말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쓸모있기 때문에 진리인 것도 아니오. 진리는 바위 틈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당신의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압력에 의하여 그러하듯, 태양이 당신을 덥히기 위해 타오르는 것이 아니듯 그렇게 스스로의 결을 따라 존재하는 것.

생각을 없애고 욕망을 지우고 이런 것들이 깨달음일리없소. 깨달음은 생각이란 파도를, 욕망이라는 새싹을, 가라앉히고, 뽑는 것이 아니라 서핑보트 들고 신나게 타고 한 송이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오. 그렇게 멋진 파도타기를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신에게 선물하는 것이오. 그것이 당신을 초대한 신에 대한 예의.
[레벨:15]오세

2012.11.13 (16:33:19)

전송됨 : 트위터

첨언하자면, IMPRESSION(인상)은 막(IM) 찍어누르기(PRESSION). 안으로 깊숙히 찍어눌러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 그렇게 이 세상은 통째로 신이 찍어누른 작품. 베토벤의 소나타에도, 고흐의 그림에도, 싸이의 말춤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오. 신이 원조 인상파라서 그런 것. 


신은 인상파라서 단계 따위 밟지 않소. 

실용 이런 건 안중에도 없소. 

그냥 신나서 빅뱅!

그냥 흥이나서 천지창조 꽈광!

에헤라 디야 태양 나와라 뚝닥!

지구 나와라 뚜둥~

그리고 나랑 같이 인상파 놀이 할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인간!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1.13 (16:36:20)

성철과 숭산은 무엇이 다르오?

[레벨:15]오세

2012.11.13 (16:54:34)

전송됨 : 트위터

성철은 새길 인, 인상파, 

숭산은 쓸 용, 용상파. 


성철은 새길 칼이 있고

숭산은 그게 없소. 


성철은 칼이 있으니 그냥 그 칼을 휘두르면 되오. 

하지만 숭산은 그게 없으니 그 칼을 어떻게 써먹을까 궁리하고 앉아있소. 그건 그가 칼을 손에 넣지 못하였다는 증거요. 

왜 고민하나? 칼이 있으면 휘두르고, 총이 있으면 쏴야지. 


완전성이라는 저수지에, 성철이 펌프하나 설치해서 콸콸콸 물을 틀어 놓으면, 

숭산은 그 다음에 나타나 이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짓자~ 하고 큰 소리 치는 격. 

그러니 결국 성철갑, 숭산을. 


성철은 인상snatch,

숭산은 용상clean and jerk,


인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완전성을 낚아채어 두 팔로 번쩍 들어올리는 것.

용상은 일단 가슴까지 들어올렸다가 한 번 쉬고 들어 올리는 것. 


하지만 용상으로는 깨달음을 들어 올릴 수 없소. 

가슴까지 들어올리는데 한 호흡, 그리고 다시 들어올리는데 한 호흡. 그렇게 두 호흡으로는 완전성을 들어올릴 수 없소. 


깨달음은 인상의 장미란처럼 한 호흡에 번쩍 그렇게 들어야 하오. 


[레벨:30]스마일

2012.11.13 (16:46:24)

깨달음은 깨끗하게 몸단장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는 순간 그냥 끌리는 것

 

어여쁜 조카가 태어나

지구에 생명의 하나 늘었는데

지구의 무게도 늘었을까?

지구의 무게가 그대로라면

사라진 생명 있을까? 가

그냥 생각나는 것

어떤 과학적 방법이나 단계가 아니라

그냥 퍼뜩 생각나는 것

 

깨달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그 과정을 설명하라면 모름.

 

(근데 공이라는 개념이 많이 나오는데

언제 한번 설명 부탁드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1.13 (17:46:40)

색은 인연이라는 프리즘을 통과시킨 것이고

공은 그 색을 다시 프리즘을 통과시킨 것이오.

 

인연은 옛날 이야기고 현대어로는 구조론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보고 듣는 데이터가 무엇이든

인연 혹은 구조를 통과했다는 점이오.

 

색이나 공에 사로잡혀서 그 프리즘을 보지 못하면 낭패.

 

[레벨:30]스마일

2012.11.13 (18:24:34)

프리즘이 구조론에서 보면, 바운데리,  질, 마당 같은 것인가요?

그런데 좀 어려운데 좀 더 쉽게 설명해주세요.

 

"색은 인연이라는 프리즘을 통과시킨 것이고

공은 그 색을 다시 프리즘을 통과시킨 것이오"

 

인연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 색이되고 그 색을 다시 프리즘을 통호가하면 공이 된다.

그러면 공은 두번의 프리즘을 통과한 것인데, 자연현상이라 사회현상 하나를 예로 좀 들어주시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1.13 (18:29:05)

그냥 구조론을 공부하시오.

불교의 공이라는 개념은 석가가 돌아와도 설명할 수 없는 거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오.

구조론으로는 계에 밀도가 걸리면 공이고

중요한 것은 공이 무엇이냐가 아니고

색이 인연을 통과하면 공이 되고

공이 인연을 통과하면 색이 된다는 메커니즘이오.

그러므로 답은 공이나 색이 아니라 인연인데

인연을 도외시하고 공타령 색타령을 한다면 제 정신이 아닌 것이오.

인연은 과거의 용어고 현대어로는 구조론이오.

[레벨:3]이제는

2012.11.13 (17:07:14)

● 인간은 각자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자신들만의 견해, 조건, 상황에 집착해 욕심, 분노, 무명을 갖는다. 생각이란 언제나 변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 변하는 생각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을 가지면 어떤 행동도 바로 '즉여'가 된다. 남전선사는 "평상심이 도" 라고 말했다. 매일매일의 마음이 이미 대오이다.(숭산)

    ←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반복된 대응패턴(상부구조)에서 `자기 마음'이 나오고, `자기 마음'에서 `생각'이 연역된다. 따라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의 생각'을 해결하는 길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상부구조, 관계망)을 바르게 재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바른 생각'이 나오도록 해야지,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것'은 바보가 되자는 말이 아닌가 한다.
    또한 `매일 매일의 마음이 이미 대오"라고 했는데, 자기 한계에 갇힌 오락가락하는 `매일 매일의 마음이 대오'일 수 없으며, 자기 한계를 걷어내고 우주와 진리, 자연과 감응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마음이 `평상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2.11.13 (20:48:30)

그냥 동네 아저씨나 옆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글 같은데?

유명한 스님 글이란 말이오?????

놀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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