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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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797 vote 2 2015.12.18 (18:51:00)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


    서울대생이 유서를 제법 명문으로 남기고 자살해서 뉴스가 되는 모양이다. 지잡대 출신이면 한 줄도 보도가 안 되었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사회에 한 방을 먹이는데 성공한 거다.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까. 의도한 대로 말이다.


    다만 김무성들의 철가슴을 건드리지 못하고, 착한 사람의 여린 가슴만 건드렸다는게 조금 거시기하다. 하긴 가슴이 없는 놈의 가슴을 건드려 봤자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라’는 식의 빈 말은 ‘어서 죽어라’는 말과 같다. 유서에 나오는대로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필요할까? 역시 유서에 나오는대로다. 마지막에 전화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사는게 죽는 것보다 낫다'는 식의 주장은 허무하다. 낫다거나 낫지 않다거나 하는건 다 개소리다. 삶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죽음 앞에서 초연해진다. 죽음이 익숙한 그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이미 죽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뿐.


    원래 바보들은 행복하다. 강용석과 같은 부류 말이다. 마약 먹어도 행복하다. 행복 따위는 질투가 나지 않는다. 행복 따위로 설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계속 가는 거다. 달리는 말에 올라탔는데 멈춰세울줄 몰라서 계속 가는 거다.


    그렇다. 살 사람은 산다. 그들은 말에 탄 것이다. 죽는 사람은 반쯤 말에 타다가 만 사람이다. 그들은 걷는게 편하다. 그런데 남들은 타고 간다. 그래서 함께 타고 가려니 불편하다. 설렁설렁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깊은 산 중에 사는데 TV에는 ‘자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곤 한다. 일부는 여행을 떠나는데 유서에도 있듯이 계속 여행하면 살 수 있다. 여행 중에 도보여행이 최고다. 도보여행은 하루씩만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은 국토가 좁아서 별로고 중국 정도면 해볼만 하다. 자동차 여행은 계획을 하루씩 세울 수 없으므로 좋지 않다. 하루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게 걸어가는 방법의 좋은 점이다. 이틀씩 사는건 피곤하고 하루씩만 사는게 정답이다. 


    히키고모리처럼 짱박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후에 시도해볼만한 방법이다. 짱박힐 공간은 찾아보면 많다. 단 이발소를 가야하는게 문제다. 머리를 밀어버리는 방법도 있는데 매일 밀어야 하므로 그다지 추천할만한 방법은 아니다.


    남들처럼 말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이 셋만 있으면 된다. 그게 쉽지 않다는게 문제다. 왜냐하면 우울증 걸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냐고. 그렇다면? 큰 무리에 끼면 된다.


    아프리카라면 부족의 일원이 못해도 300명은 될텐데, 300명 속에 섞여 있으면 누가 시비를 걸겠냐고. 편하게 살 수 있다. 한국은 부족이 없어서 문제다. 공장에 취업하면 된다.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 섞여서 기계처럼 일하면 된다. 


    문제는 서울대생 자존심으로 공장에 취업할 수 없다는 거다. 엘리트들은 운명적으로 10명 이하의 적은 숫자와 부대끼게 되는데 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적이라면 피곤해지는 거다.


    정리하자. 인간은 삶이 죽음보다 낫기 때문에 사는게 아니고, 행복이 불행보다 낫기 때문에 사는게 아니다. 사는 이유는 말에 탔기 때문이다. 일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매끄럽게 연결되면 흐름따라 계속 가는 거다. 


    중간에 자꾸 끊어져서 멀미가 나니까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버리는 거다. 일은 계속 연결되어야 한다. 방법은 둘이다. 디버전스는 짱박히기, 여행하기, 혼자놀기, 익명의 많은 군중 속에 숨기 등의 방법이다. 


    컨버전스는 긴밀해지기, 친해지기, 탐구하기, 오덕되기, 팀에 들기, 예술하기 등의 방법이 있다. 컨버전스와 디버전스를 겸하는 것도 있다. 컨버전스든 디버전스든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해법이다.


    전략은 둘이다. 컨버전스법과 디버전스법 중에 선택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기존의 관계는 끊어버리는게 낫다. 서울대생이면 자퇴해 버리는게 낫다. 생명의 근본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므로 이 경우는 현장이탈이 최고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탈해 버려야 한다. 구조론의 방식은 진리의 팀에 드는 것이다. 여기는 선수가 70억 많아서 익명성이 보장된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사는 이유는 달리는 말에 탔는데, 그 말에서 내릴줄 모르기 때문이다. 살 사람은 큰 말과 작은 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말을 골라타면 된다. 그리고 내리기 귀찮아서 계속 가주는 거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태양은 계속 에너지를 투하하고 있다. 화살은 계속 날아가고 있다. 사건은 계속 연결되고 있다.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에너지는 계속 공급되고 있다. 계속 가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12.18 (19:13:29)

터지는 둑의 한 쪽을 막으니 다른 쪽이 터지고 다른 쪽을 막으니 또 다른 쪽이 터지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니 근본이 터지고,

에라 모르겠다. 흐르는 것은 그대로 냅두고 배나 띄우자. 세상은 흘러라. 나는 너를 타고 가겠다. 휩쓸리지 않고 바람을 타겠다.

다만 배에 빵꾸가 날까 두려운 하루.
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2015.12.18 (20:23:36)

근본은 터지지 않는 것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5.12.18 (21:53:50)

인생에 pause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play 와 stop 밖에 없어서.......ㅠㅠ

[레벨:9]작은세상

2015.12.19 (04:01:01)

참 좋은 글입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그 서울대생이 구조론을 알았더면, 동렬선생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청년의 죽음은 정말 가슴아프고 그의 생각과 품성을 보니 아까운 생각이 떠나지 않는군요.



     ‘죽을 용기로 살아보라’는 식의 빈 말은 ‘어서 죽어라’는 말과 같다


저 역시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살은 살기 힘들어서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는 동렬 선생의 말을 백번 이해합니다.  더낫고 아니고가 아니라는 것.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극도로 무의미할 때 인간은 스스로의 생명을 중단시킨다는 것.

그외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자살 그정도까지는 전혀 아니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극도로 힘들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감이 생겼고요.

동렬 성생의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글을 그동안 참 여러번 읽고 또 읽었죠.

그 생각의 중심에 들어가보고 싶어서. 어려운 것 같지만 읽을 수록, 생각할 수록 조금씩 더 들어가지는 듯 합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가지로 수년간 힘든 상황이 악화되어왔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제가 선택한 것들이 모두 디버전스, 컨버전스,

기존의 관계를 끊고 쉬운 말로 바꿔타기, 

대신 진리의 팀에 들고자 하는 바람 등등 이었어요. 그리고 그게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게 쉬운 말로 바꿔타고  그냥 관성적으로 계속 가자.. 자기만족.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 소모시키지 말고 그냥 관계를 끊자. SNS 중단.

적과는 절대 동침하지 않는다. 개무시.

전 인류단위로 생각하고 그들과 네트워킹 되어 있음에 자긍심을 갖고 살자.  존엄성 회복


신기하군요. 동렬 선생의 말대로 제가 하고 있었어요.

확실히 고통이 경감되고 삶의 의미가 살아나더라구요.  감사하게 되고..


스스로 삶을 결정한 그 친구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명복을 빕니다.



[레벨:11]벼랑

2015.12.19 (09:48:27)

자살이나 우울증 걸린 이들이 읽으면 위로를 넘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글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아나키

2015.12.20 (10:43:57)

"자살 그 차악에 선택"이란 부처님 말씀이 생각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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