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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2753 vote 0 2014.06.19 (08:41:50)

박유하 교수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근데 이런 문제는 원래 갑론을박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원문을 자세히 읽어보고, 암튼 그렇게 공을 들여 판단할 일이 아니다. 왜냐면 답은 0.5초만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 편이 아니면 나가리다. 구경꾼? 꺼져! 훈수꾼? 꺼져! 중립? 꺼져! 
그리고 피해자들은 귀신같이 안다. 이 사람이 내 편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이 자리에 함께 서서 나의 증언을 듣고 전해줄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괜시리 쓸데없는 훈수나 두고 사라질 사람인지. 

할머니들은 0.5초 안에 박유하 교수가 자기 편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걸로 게임 끝. 
팀플레이 할 거 아니면 축구장에서 당장 꺼져야 한다. 이미 역사라는 이름의 주심은 위안부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렀고 지금 일본 대표팀(야만, )과 위안부 할머니(문명, 진보)의 전반전이 진행 중이다. 근데 쓸데없이 중간에 선수도 아니면서 끼어들어 훈수를 늘어 놓으면 곤란하다. 관중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진짜 지식인은 원래 관중이 아니라 선수로 참여하는 법이다. 물론 가짜라면 그라운드 밖에 서서 미주알 고주알 말만 늘어놓는다. 박유하처럼. 


우리 편은 누구인가? 1:1을 만드는데 동참하면 우리편이다. 

맞은 사람은 있고, 당연히 때린 사람이 있다. 여기서 맞은 사람에게는 때린 사람을 지목할 수 있는 '권'이 생긴다. 그런데 보통 맞은 사람은 약자이고, 약자에게는 보통 그 '권'이 없다. 그래서  그 '권'이 성립되려면 약자에게는 '우리편'이 필요하다. 일본군 성노예(이른바 위안부) 할머니들은 처음에는 고립된 소수로 시작했지만 차츰차츰 종교계, 언론계, 문화계, 연예계 인사들과 일반 대중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겨 세력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든 세력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와 1:1로 맞서는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1:1로 만들어야 비로서 피해자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치유가 시작되고 보상이 시작되고 용서가 가능하다. 

그래서 보통 사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1:1 구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법률적, 제도적으로도 최대한 피해자의 편에 서려 하고 일반인들 역시 피해자 쪽으로 '극단적'일만큼 편을 드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가해자와의 1:1 구도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겨우 1:1이 만들어질까 말까이다.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가해자는 더 힘이 세고 반성하지 않고 변명을 일삼는다. 

다행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국제 여론까지 끌고 들어오면서 일본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이러한 압박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축구경기에서 압박이 90분 내내 지속되듯이, 우리(문명, 진보)의 승리가 확정될 때까지 경기는 계속 되어야 하고 이때 괜히 '내 생각은 이런데?' 하면서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훌리건들은 가볍게 제압되어 경기장 밖으로 내팽겨펴진다. 

박유하씨의 글을 읽고, 오 이런 관점도 있구나,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냥 이 사람 생각이 그렇다는데 왜 그렇게들 주변에서 화를 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용히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보라. 지금 내가 할머니들과 함께 선수로 뛰고 있는지, 아니면 그라운드 밖의 관객인지 말이다. 만약 여전히 관객노릇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특히 당신이 지식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식인의 책무는 항상 역사와 문명과 진보의 편에 서는데 있다. 
그리고 지금 그 편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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