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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255 vote 0 2005.12.10 (17:30:46)

참고로 칼럼과 관련이 있는 뉴스를 링크합니다.

이차대전 후 지난 50년 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오직 일본 한 국가 뿐이다. 또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끌어낸 나라들은 유교문화권 외에 없다시피 하다.

왜 대부분의 국가들은 실패하는가? 단지 성공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도 없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성공을 보장한다고 믿는 바보들도 있겠지만, 단지 자본주의만으로 성공한 나라들은 없다시피 하다. 성공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예컨대.. 최근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경우 자체 경쟁력에 힘 입은 것이 아니라 시장편입을 통해 성공한 케이스이다. EU가 성장하면 터키나 그리스도 그늘 덕을 보겠지만 이는 논외다.

왜인가? 남미나 아프리카, 서남아의 경우 주변에 EU와 같은 시장이 없으므로 그늘 덕을 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도, 자유무역도 제 3 세계 국가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은 깨져야 한다.)

왜 한국이 문제인가?

주요한 선진국을 제외하고, 주식회사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다.(물론 100프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재벌의 성공은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성공이 아니라 비리와 협잡을 동원한 오너 개인의 수완에 힘 입은 경우가 많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 제대로 된 주식회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왜인가?

“미쳤냐? 내 돈을 왜 남의 호주머니에 넣어두나?”

주식회사 제도란 자기 돈을 남의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도인데 이것이 이론으로나 가능한 거지, 과연 실제로 가능이나 하겠는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믿고 돈을 맡길 수 있지?

한국은 그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특이한 나라이다.

무엇인가? 자본주의 이전에.. 과연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주식회사를 만들 수 있는가? 금융제도를 작동시킬 수 있는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적, 문화적 기반의 토양이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근본문제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네덜란드인이 발명하고 영국인이 발달시킨 주식회사 제도야 말로 인류의 발명품들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합리주의라는 사상적 토대가 없을 경우 주식회사 제도의 정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청나라 때부터 이름난 거상(巨商)이 많지만 그들은 주식회사와 같은 공적인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가족회사로 간다. 가족 외에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점가에 중국의 거상 이야기가 여러 종 나와 있지만 대개 뻔한 스토리로 간다. 믿을만한 소년을 어릴 때부터 친아들처럼 키워서 관리로 만들어 출세시킨다. 말하자면 김영삼이 언론사에 YS장학생을 심어놓듯이 거대한 인맥을 만들어 놓고 그 인맥을 기반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다.

기술이나 경영은 나중 이야기고 일단 요소요소에 ‘내 사람’을 심어 두어야 한다. 그것이 중국에서 돈을 버는 절대적인 법칙이다. 물론 대만에도, 중국에도, 홍콩에도 성공한 주식회사가 있지만 그들에게 회사란 개인과 개인의 계약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확대된 가족’이다.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시골의 가난한 천재를 발굴하여 유력한 가문의 양자로 받아들여 키운 다음, 과거에 합격하면 가문 전체가 혜택을 보는 일종의 ‘과거보험’이라 할 제도 혹은 관행이 있었다.

여기서 가문이란 사돈의 팔촌 정도가 아니라, 인구 몇 백만명을 넘는 거대세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문중의 역할은 족보나 찍는 정도이지만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 일개 가문이 국가에 맞먹는 정교한 조직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가문끼리 전쟁도 한다.

이광요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이 중국 특유의 가문 시스템을 의미할 수 있다. 화교가 진출해 있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이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광요는 그와 비슷한 것이 같은 유교문화권인 한국이나 일본에도 있지 않겠나 하고 짐작하겠지만 화교권 외에는 없다.

말하자면 화교 문화권의 금융 시스템과 한국의 주식회사, 그리고 봉건영주가 주축이 된 일본의 주식회사들은 그 신용체계의 형성에 있어서 문화적 배경이 되는 뿌리와 원리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교 합리주의의 전통

한국인이 자기 돈을 남의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위험천만한 제도인 주식회사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얼마 되지 않는 특이한 민족인 이유는 왕조시대에 발달된 유교 합리주의가 그 문화적 배경을 이루어 주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남존여비하고 사농공상하며 장유유서하는 유교의 서열주의나 신분차별이 아시아적 가치가 아니라.. 유교 합리주의가 진정한 아시아적 가치인 것이며, 아니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의 보편 가치가 된다는 말이다.

영국인이 신사인 이유는 자기 돈을 남의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말도 안 되는 제도인 주식회사를 할 수 있는 정도로 계발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주식회사를 해내는 것은 특별히 계발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한인 교포들은 계모임이나 교회 조직을 통해 돈을 융자하고 창업을 하는데 이것이 쉽게 보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민족들은 하지 못한다.(유태인은 예외적이다.)

화교들 역시 한국의 계모임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들은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놓고 한 곳에 몰려 살지만 역시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인의 돈을 융통하고 음식점을 창업하는 시스템은 그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돈을 융통하고 창업을 지원한다. 화교가 특정 지역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해 놓고 밀집해 있는 반면 한인 교포들이 폭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중국인의 가족개념은 한국인의 가족 개념보다 훨씬 넓고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중국인이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족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컨대 한국의 먹튀들은 충청도에서 해먹어도 경상도에서 뒷덜미를 잡힌다. 전라도에서 해먹고 튀어도 서울에서 잡히고 말지만 중국은 영토가 광대해서 먹고 튀면 끝이다. 다시는 만날 확률이 없다. 그 때문에 중국인들은 인간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정교한 신뢰 구축의 시스템을 발명해 놓고 있다. 중국인들은 항상 신뢰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하는 신뢰는 공적인 신뢰가 아니라 인간적인 신뢰이기 쉽다. 그 신뢰의 기초는 확대된 가족이다. 중국인이 매사에 신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만큼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인의 가족은 작다. 좁게는 4촌이요 넓어봤자 8촌이다. 일본만 해도 다르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사장도 가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직원과 사장이 터놓고 반말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간부들은 직원을 가족으로 여기기 때문에 가족처럼 돌봐주지만 동시에 가족처럼 부려먹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가족주의는 규모가 작으며, 한국의 자본주의는 가족을 떠나 더 공적이고 개방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광요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중국인 특유의 개방형 가족주의 시스템을 의미할 수 있다. 세력을 가진 대인(大人)이 똑똑한 소년을 눈여겨 보았다가 학자금을 지원하여 자기사람을 만든 다음, 관리로 키워서 이용하는 것을 이광요는 아시아적 가치라 말하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일본의 경우 주로 유능한 종업원을 사위로 삼아 가족으로 만든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식의 성공사례가 없다시피 하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자기 돈을 안심하고 남의 호주머니에 넣어둘 수 있는가? 거기에는 신뢰가 필요하고 그 신뢰를 담보하는 것은 인격이며 그 인격의 도야에 유교 합리주의가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광요는 그 신뢰를 가족의 신뢰로 좁게 해석하되, 대신 가족의 개념을 더 넓게 잡는다. 그 가족간의 상하질서를 아시아적 가치라 말 한다. 이는 틀려먹은 것이다. 혹은 중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진정한 유교는 무엇인가?

유교는 종교이기도 하지만 학문이기도 하다. 서구는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아세아는 인간을 길렀다. 한국의 유교주의가 키운 인간이 서구의 발명품인 주식회사 제도를 더 용이하게 수입하게 한 것이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이 모두 유교문화권이지만 그 유교의 가치가 적용되는 방식은 다르다. 한국의 유교는 가족을 초월한 선비 집단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인격의 훈련을 거친 선비이므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봉건적 주종관계에 토대를 둔 질서에 기반한 신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중국은 한국과는 다른 발달된 가족주의 시스템을 배경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통된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이 어떻게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쉬워 보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국가는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이슬람권에는 아예 은행업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코란에 따라 아랍의 은행은 이자가 없으므로 제대로 된 은행기능을 못하고 있다.)

은행업이 없다는 것은? 돈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존립이 불가능하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적어도 인간이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건설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한국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다.

당신은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정리하자
 

● 지난 50년간 자본주의로 선진국 된 나라는 일본 뿐이다.

●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 유교주의가 일정부분 인간을 신뢰하게 하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 한국, 중국, 일본은 전혀 다른 신뢰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 이광요의 아시아적 가치는 중국인 특유의 가족 시스템을 말한다.

● 한국 자본주의의 배경이 되는 유교 합리주의는 선비의 인격을 믿는 것으로 가족 간의 수직적 질서를 앞세우는 중국의 유교주의와는 다르다.

● 일본 자본주의는 메이지 시대에 덴노의 명령으로 영주들이 봉건적 질서 시스템을 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제 2의 창업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 중국과 대만의 자본주의는 중국 특유의 가문제도가 만든 것으로 여전히 가족과 인간관계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여부는 박정희 시대의 주식회사 창업붐 이후 제 2, 제 3의 주식회사 창업붐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DJ 시대의 벤처붐은 한국이 제 2, 그리고 제 3의 주식회사 창업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들은 박정희가 지원해서 인위적으로 키운 것이다. 30년 전에 힘을 쓰던 그때 그 재벌이 아직도 해먹고 있다. 중견기업이 새로 재벌급으로 성장한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번 재벌은 영원한 재벌이며 중견기업은 새로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 이것이 IMF 이전까지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IMF 이후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있었고 최근 IT경제의 성장으로 새로운 대기업군의 출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희망이다.(이건 일본에는 없는 특이현상일 수 있다.)

동쪽을 보라!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도식화된 논쟁에 빠져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명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주식회사 제도는 위험분산을 가능케 하는 정교한 장치이지만 많은 사회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제 3 세계의 경우 가족이나 부족의 전통을 기반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답은? 인간이다.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자원이다. 인간을 키워야 한다. 서구의 철학이나 사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인간이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부시의 야만에서 보듯이 인간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서구가 오히려 뒤져 있다. 서구가 300년에 걸쳐 이룬 것을 동양이 50년 만에 따라잡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는 본질에서 우리가 더 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눈을 동쪽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진리는 공변된 것이다. 서쪽에서 진리는 동쪽에서도 진리다. 진실된 가치라면 서구에 있는 것이 우리 안에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과 사상과 문화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재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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