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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78 vote 0 2008.04.17 (19:53:06)

두문동 선비들 그 마음 알겠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 10여년 간 몸을 산 중에 두었다. 나와 세상은 서로 맞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다. 어색하다. 불편하다. 무언가 계속 어긋난다. 친하지 않다.

세상이 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지난 10여년 간 세상과 친했다. 떳떳했다. 자연스러웠다. 편했다. 그래서 좋았다. 호흡이 잘 맞는 말과 기수처럼 신나게 달렸다.

세상과 친하지 않던 시절.. 행복했다. 혼자라서 행복했다. 세상을 걱정하지 않으니 행복했다. 신(神)을 독점해서 행복했다. 지난 10년 간도 행복했다. 신(神)의 세계를 나누어 누려서 행복했다.

세상과 친하지 않던 시절에도 나는 행복했고, 세상과 친하던 시절에도 나는 행복했다. 산 속에서 소로우처럼 살든가 혹은 도시에서 쫓기며 살든가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일까?

차이는 없다. 혼자일 때 신(神)을 독점할 수 있다면. 함께일 때 신(神)의 세계를 나누어 누릴 수 있다면. 독점할 때 신(神)의 본래와 대면해서 행복했고 나눌 때 신(神)의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여행해서 행복했다.

혼자일 때 신의 본질을 깊숙히 탐색할 수 있었고 함께일 때 신의 영역을 망라하여 탐색할 수 있었다. 전자는 내게 사무치는 전율감을 안겨 주었고 후자는 내게 황홀감과 함께 깊은 여운을 안겨 주었다.

***.. 여기서 신(神) 그 ‘완전성’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읽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나의 쓴 옛글과, 지금 이 글과, 앞으로 쓸 글들 사이의 고리를 추적하면 명확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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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추구할 만한 가치는 둘 뿐이다. 하나는 지적, 정신적 가치다. 둘은 금전적, 물질적 가치다. 전자는 신분상승으로 구체화되고 후자는 돈벌이로 구체화된다.

물질적 가치란 것은.. 결국 잘 먹고 잘 싸는 것인데..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배 고프고 힘들던 시절에는 이것이 의미가 있었지만 먹고살만한 세상이 되면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다.

병은 치료된다. 맛있는 음식은 널려있다. 가난한 나라가 더 잘먹어서 뚱보가 많다. 물질의 가치는 갈수록 무의미해진다. 후진국에서나 좀 쳐줄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정신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지금 한국인들은 물질로 정신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식들에게 돈을 들여 많은 공부를 시키는 방법으로 정신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으로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거다.

왕조시대에는 불가능했다. 양반은 돈이 없어도 양반이고 상놈은 돈이 있어도 상놈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오래 계속되지는 않는다. 돈으로 신분을 살 수 없는 시대가 온다.

왜인가? 신분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신분의 본질은 폐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계급적 신분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문화적 신분으로 바뀔 뿐이다.

인간은 원래 유유상종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끼리 모인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끼리 몰린다. 신분제도가 철폐되었기 때문에 돈으로 지위를 속이기 쉽지만 그것을 검증하는 시스템은 정교해진다.

옛날에는 계급만 잘 타고나면 멍청이도 대접을 받았지만 미래에는 억만금이 있어도 상류사회에서 왕따된다. 사회가 진보하고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은 그 돈으로 대충 위장한 가짜와 속속들이 진짜를 판별하게 하는 가려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로 검증되고 예술로 검증된다.

지금은 루이뷔똥만 끼고 다니면 대충 먹히지만 앞으로는 패션감각을 속속들이 조사당하게 된다. 아무리 고상한 척 해도 어떻게든 예술적 심미안의 부재가 드러나고 만다. 그들은 동아리에서 배척된다.

눈에 보이는 계급차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아리 짓기 구분으로 간다. 인터넷에 의해 그러한 경향은 가속화 된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뭔가를 아는 사람끼리.. 진정으로 통하는 사람끼리 모이기가 쉬워졌다.

그것을 쉽게 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고 문화인의 역할이다. 신분이라는 강제된 줄세우기에서, 돈이라는 획일적인 줄세우기를 넘어.. 취미와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줄서도록 온통 휘저어 버리는 것이다.  

피라미드 구조는 해체되고 대신 많은 동심원들이 생겨난다. 수직적 지배질서는 붕괴되지만 그 동심원들의 중심은 있고 주변도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핵심을 안고가고 누군가는 주변에서 겉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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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최고는 하나 뿐이다. 그것은 최고와의 만남이다. 정상의 지성과 만나고 통하기다. 돈으로 대충 둘러쳐서 지성인을 만날 수 있겠지만 통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과 만났을 때 할 말이 없다.

비싼 악기를 구했어도 연주하지 못한다면 허무다. 최고의 사람과 만났어도 소통하지 못한다면 낭패다. 어우러짐이 있고 낳음이 있어야 한다. 내 속에서 낳아내지 못한다면 실패다.

최고를 분별하는 눈을 얻는 것, 마침내 최고를 만나는 것, 그리고 그 정상에서 최고와 나란히 서는 것, 비로소 서로 통하는 것, 통하여서 새로움을 낳아내는 것. 그것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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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세계를 건설하여 가기.. 그것이 나의 작업이다. 삽빠들이 노력하여 근접해 오지만은 우리는 또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여 그들을 낙담하게 한다. 그렇게 쫓고 쫓기고 계속된다. 역사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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