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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652 vote 0 2008.09.26 (00:41:41)

구조론의 가는 길

과학의 사실이 모여서 철학의 의미를 이룬다. 그 철학이 인간의 삶에 반영되어 가치의 사상을 이루고, 그 사상이 사회에 전해져서 이념으로 실천되고 최종적으로는 미학의 양식으로 꽃 피운다. 그렇게 완성된다.

● 사실 ≫ 의미 ≫ 가치 ≫ 개념 ≫ 원리
● 과학 ≫ 철학 ≫ 사상 ≫ 이념 ≫ 미학
  (소승)개인의 앎≪━≫사회적 실천(대승)

앎과 행함은 다르다. 앎의 과학과 철학은 소승적인 개인의 것이며 이념과 미학은 대승적인 사회적 실천이다. 깨달음은 소승에서 대승으로 넘어가기다. 진정한 것은 미학이며 나머지는 미학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인식론의 전개일 뿐 존재론으로는 미학이 먼저다. 행함이 먼저고 앎은 나중이다. 사상의 소크라테스가 먼저고 철학의 플라톤이 뒤를 따르며 과학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뒤진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미학이면 장자의 소요(逍遙), 초연(超然)은 비타협적인 자유주의-개인주의 이념이다. 공자가 사상가라면 맹자는 철학자고 주자는 과학자다. 항상 미학이 앞서가며 길을 연다.

예수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지만 일직선으로 치고나간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 지점에서 앎과 행함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에 미학이 있다. 그를 우러르는 자들이 거기서 조금씩 빼먹는다. 조금 제하면 이념이 되고, 사상이 되고, 최후에 과학(?)으로서의 기독교 신학이 된다. 그렇게 빼먹을수록 왜곡된다. 점점 왜소해진다.

원형과 변형이 있다. 예수의 원형에서 빼먹을수록 남는 장사가 되지만 그만큼 생명성을 잃는다. 근원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거다. 그만큼 퇴행하는 거다. 인류의 역사는 거룩한 행함에서 멀어져서 앎으로 도피하는 역사다.

구조론은 나침반과 같다. 진리는 공변된 것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목수의 자와 콤파스다. 누구든 가져가서 자기 집을 짓는데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조론의 세계에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그러나 진정한 것은 따로 있다. 최종 목적지는 미학의 실천되는 세계다. 미학은 공동체 문화의 양식이다. 거기에 사조가 있고 유파가 있다. 야수파든 낭만파든 인상파든 그런 것이 있다. 무슨 이즘이 있다.

모짜르트는 태어날 때 부터 마음 속에 아름다운 집 한 채를 품고 태어났다. 그 집의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거실문을 열고, 첫째방 문을 열고, 모든 방문과 창문을 차례차례 다 열면 악보가 완성된다.

악상을 잡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음 하나 고치지 않고 주욱 써내려 가서 단번에 악보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반대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허허벌판에 처음 터를 잡고 집을 짓는다.

베토벤은 모짜르트가 열고다닌 그 집의 껍데기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짜르트의 자유로움을 담아낼 수 있도록 무수히 고쳐써야 했다. 그의 음악은 고뇌의 산물이었다. 뼈를 깎고 살을 찢어서 쓰는 것이었다.

음악성은 베토벤이 더 높다. 모짜르트는 베토벤 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베토벤이 스승이고 모짜르트가 제자다. 베토벤은 한 채의 큰 집을 지었고 모짜르트는 그 집의 실내 인테리어를 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지은 집에 모짜르트가 깃들어 산다. 아니 모짜르트의 잘 가꾸어진 실내를 보고 베토벤이 그에게 집을 지어서 선물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중 온 사람이 스승이 되고 먼저 온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다.

혜능은 미학에 도달했고 금강경은 철학이고 석가는 상대적으로 과학에 가깝다. 육조 혜능이 소크라테스고 석가는 그의 제자다. 1세기경에 금강경을 이룬 사람들이 그 사이에 있다. 석가는 그들의 제자다.

순서가 바뀔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배우고 아들이 손자에게 배울 수 있다. 확실히 육조 혜능, 달마, 성철에게는 미학이 있다. 그리고 그 미학에 도달할 때 널리 대중과 소통하는 힘을 얻게 된다.

이오덕이 권정생을 발굴했지만 진실로 말하면 이오덕은 권정생의 제자여야 한다. 고흐는 고갱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고갱은 비웃고 떠났다. 그러나 진실로 말하면 고갱은 고흐의 제자여야 한다.

고갱은 그림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유명한 평론가였다. 권정생이 실천한 진짜고 이오덕은 말로 떠든 평론가에 불과하다. 모든 평론가는 누군가의 제자여야 한다. 평론은 작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김기덕은 나의 스승이다. 구조론은 내가 먼저 이루었지만 그의 영화에는 구조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구조론의 세계에는 제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필요하다. 육조 혜능이 필요하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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