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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24 vote 0 2016.02.14 (14:38:59)

 

      
    제 9편 자한子罕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말하는 일이 드물었다.


    공자는 자연스러운 일의 흐름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별도로 형이상학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었다. 깨달음 없이 형이상학을 만들면 반드시 거짓 귀신을 지어내거나 저급한 명가의 궤변으로 빠지게 된다. 형이상학의 부재는 이후 유교가 쇠퇴하고 도교와 불교가 그 빈자리를 메우는 원인이 된다. 그러자 중국은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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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네가지를 끊었으니 의도意와 무리수必와 고집固과 아상我이다.


    의意는 A를 얻기 위해 일단 B를 내세우는 식의 꼼수행동이다. 밑바닥에 저의를 감춘 것이다. 필必은 반드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조건걸기 행동이다. 생선은 절대 못먹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합리성에서 벗어난 기벽이 있는 사람이 많다. 고固는 원칙이 지나쳐 융통성이 없고 타협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我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개입시켜 판단하는 것이다.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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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왕은 죽었으나 그 문화는 남아있다. 하늘이 문왕을 버리고자 했다면 문왕의 사후에 그 문화가 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그 문화를 버리지 않고 이어가려는데 광匡 사람들이 어쩌겠느냐?“


    광匡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동요하는 제자들을 안정시켰다. 하늘이 문왕의 도를 끊고자 한다면 공자는 광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를 끊으려 했다면 진작에 끊었을 것이다. 문왕의 도가 끊기지 않고 700년이 흘러 공자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공자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줄기차게 이어가는 역사의 생명력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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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젊었을 적에 신분이 미천했기 때문에 익혀둔 기술이 많을 뿐 군자는 재주가 많을 필요가 없다. 내가 벼슬을 하지 못해서 생업을 위해 여러가지 기술을 익혀둔 것이다.


    공자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다. 지식인이라는 신분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사士는 원래 말을 몰고 활을 쏘며 임금을 호위하는 경호원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임금의 문서기록을 담당하는 사史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지식인 신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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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물어오면 나는 그 문제의 원인과 결과 양단兩端을 살펴 말해줄 따름이다."


    공자는 지식을 버리고 대신 깨달음을 쓴다. 깨달음은 일이 전개하는 패턴을 깨닫는 것이다. 일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진행하며 내부에 대칭을 이루고 축을 움직여 의사결정한다. 원인과 결과의 양단을 살피면 일의 본질이 드러나는 법이다. 공자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알 필요가 없다.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도 일의 원리를 알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은 전문적인 기술을 익힌 카센타 아저씨에게 맡겨야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사에 전화를 걸면 일단은 해결이 되는 것과 같다. 철학은 그 정도의 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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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묻기를
    “아름다운 옥을 궤 속에 감추겠는가 좋은 값에 팔겠는가?”
    공자 가로되
    “팔아야지. 나는 진작부터 제값 내고 사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의 높은 이상을 가슴 속에 숨기고 있을 이유는 없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여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할만한 뜻있는 군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를 키워서 다음 세대에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여기서 자공이 비유로 말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자공은 제법 공자와 대화가 되는 사람이다. 이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도 참으로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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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동이의 땅에 가서 살기를 바랐다. 누가 묻기를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공자 가로되
    "군자가 거처하니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동이를 한반도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 중국 동쪽에는 동호족, 돌궐족, 선비족, 몽골족, 여진족, 거란족 등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 굳이 한반도가 아니라고 말할 이유도 없다. 민족개념은 근대인의 관심사일 뿐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민족구분은 의미가 없고 문화구분에 의미가 상당하다. 공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찬양했다. 요와 순은 삼림으로 가득찼던 황토지대의 정글을 개척하고 문명을 열어젖힌 사람이다. 당시 한반도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새로 숲을 개간하여 문명을 일구는 일이라면 해볼만한 사업이다. 당시는 그것이 해볼만한 벤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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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까지 미인을 사랑하는 것만큼 덕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덕은 어떤 둘의 만남이다. 만나면 마음이 들뜬다. 미인을 만났을 때의 기쁨과 같다. 눈길을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덕이 있다. 뒤에 오는 사람이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며 쉽게 가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는 덕이 있다. 뒤에 오는 사람이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작가의 저작권이나 발명가의 특허권과 같다. 요즘은 작가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지만 옛날에는 단지 칭송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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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산을 쌓음과 같다.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도 내가 거기서 멈춘 것이며, 반대로 평지에 처음 한 삼태기의 흙을 쏟아부었다면 그만큼 내가 진보한 것이다."


    일의 시작과 끝이다. 일은 단 2퍼센트가 부족해도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반대로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단 1퍼센트만 진행했어도 이미 상당한 성취가 있다. 그러므로 일은 일단 저지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가서 일을 벌여놓으면 천하가 뒤에 와서 그 일을 완성한다. 완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다. 일의 완성은 신의 임무이다. 반대로 일은 어떤 둘의 만남이다. 1밀 리가 부족해도 연결되지 않으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일은 완전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을 벌일 때는 일단 저지르는 것이 정답이다. 일을 마칠 때는 완벽하게 다음 단계로 연결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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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필부의 뜻은 일의 뜻이다. 일은 불과 같아서 작은 불씨만 있어도 거뜬히 천하를 불태울 수 있다. 일은 연결된다. 선비를 죽일 수는 있어도 그 뜻은 다른 이의 뜻과 연결되어 전파되어 간다. 선비를 죽이려들수록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마침내 천하를 가득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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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옷을 입고 귀한 털가죽옷을 입은 부자와 함께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자로다.”


    자로는 공자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공자의 용맹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호탕하고 즐거운 사람이나 외부에는 답답한 샌님으로 비쳐질 수 있다. 공자가 자로와 의기투합한 것은 자로에게 공자의 숨겨진 일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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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진 후에라야 솔과 잣이 싱싱한 것을 안다.“


    추사의 세한도를 떠올 릴 수 있다. 공자의 사후에 학문의 대가 끊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겪고 어렵게 살아남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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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불안하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겁내지 않는다."


    복제, 조합, 연출하는 일의 순서로 보면 어진 사람이 앞에 와야 한다.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용맹한 사람이 마지막이다. 각각 철학과 과학과 미학이 된다. 혹은 종교와 정치와 예술이 된다. 어진 사람은 종교와 철학으로 불안을 극복한다. 아는 사람은 과학과 정치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용맹한 사람은 예술가의 시퍼런 결기로 단호하게 실행한다. 그것이 미학이다. 어진 사람은 안회, 아는 사람은 자공, 용맹한 사람은 자로다. 자로가 미학을 배운 예술가는 아니지만 과단성있는 실행가라는 점에서 현대에 와서는 예술가의 포지션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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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편 향당鄕黨


    공자가 향당에 있을 때는 말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고, 종묘와 조정에 나설때는 거침없고 말하면서도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재주있는 사람은 고향사람에게 발목을 잡히는 법이다. 노무현이 고생한 것도 같고 예수가 고향사람에게 괄시당한 것도 같다. 사촌이 논을 사면 당연히 배가 아프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과거 같은 현대팀에 있으면서 더 많은 기대를 받았던 롯데의 황재균이 가만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대칭을 통해서 의사결정한다. 시골의 배타적인 부족집단 안에서 능력자가 있으면 내부의 균형이 깨져서 불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중앙에서는 능력자가 있어도 상관없다. 중앙은 변방을 거느리므로 능력자가 나타나면 지방에서 실력자를 불러와서 균형을 맞춘다.


    그러므로 서울사람은 진보적이고 지방사람은 보수적이다. 서울사람은 균형이 무너져도 어떻게든 밸런스를 회복한다. 시골사람은 내부균형이 무너지면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만 끝이 난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은 변방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방법으로 밸런스를 이루고 변방은 내부의 에너지를 외부로 배출하는 방법으로만 밸런스를 이룬다. 일본이 잘 나가다가 멈추어버린 이유는 스스로를 변방으로 여기는 심리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기업 신입사원의 임금은 한국보다 적다. 내부의 밸런스를 위해 임금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을 변방으로 여기므로 신경쓰지 않는다.



   aDSC01523.JPG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아는 사람은 향당이나 향원과 말하지 않습니다. 단 임금 앞에서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게 공자와 노자의 차이입니다. 공자는 임금이 기준이고, 노자는 촌놈이 기준입니다. 향당은 요즘으로 말하면 무뇌진보 패거리입니다. 향원은 그런 골수 패거리들이 떠받드는 자입니다. 혹은 시골의 보수꼴통 패거리나 그 수괴들도 향당이고 향원입니다. 보수로는 조중동이 향당이고 조갑제가 향원입니다. 진보에도 향당은 있고 향원은 있습니다. 통진당과 이석기가 대표적이지요. 꼴통과는 말하지 않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2.14 (16:41:58)

변방과 중앙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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