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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70 vote 0 2016.02.12 (11:10:59)

 

   
    언어의 딜레마


    말을 똑바로 하면 깨달음은 이미 그 안에 있다. 언어의 가장 큰 딜레마는 ‘누가 물어 봤냐?’다.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건다면 황당하게 된다. ‘도를 아십니까?’ 어색한 장면이다. 군자라면 피해야 한다. 언어가 당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당한 언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틀렸다. 숨은 전제가 작동한다. 이미 왜곡되어 있다. 모든 속임수는 숨은 전제를 이용한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누가 물어봤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당신은 매우 창피하게 된다. 그러나 아기가 엄마에게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엄마는 ‘아이고 우리 아기 어디 아프냐?’고 호응할 것이다. 호응해야 성공이다.


    누가 당신에게 ‘배가 아프시군요?’하고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의사로 착각하고 현금을 지불한다. 당한다. 숨은 전제에 당하는 것이다. 숨은 전제는 관계다. 아기와 엄마의 관계라면 명사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조직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배경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 이미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친절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사기꾼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거짓 철학자는 이 수법을 쓴다.


    영화감독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예술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처음의 시초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 때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니까. 나중에 분기되었을 뿐 그때는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일의 시초에 대한 확실한 관점이 깨달음이다. 


    시초에 무엇이 있는가? 고통이 있다. 고통은 누구나 공감한다. 사촌이 논을 샀다고 하면 축하하기는커녕 도리어 배아파 하지만, 사촌이 병에 걸렸다고 하면 함께 아파한다. 세월호의 고통에 모두가 공감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모두가 공유하는 원초적인 지점을 건드려서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이 나의 말에 호응하게 하는게 예술가의 테크닉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산길이 미끄러우므로 등산객이 산을 오르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 너도 그러냐?”


    이게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다. 보통은 많이 생략한다. '너도 그러냐'고 호응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호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언어의 숨은 부분이다. 작가는 독자의 동의를 기대한다. '나는 이렇게 봤는데 독자여러분은 동의하는가?' 하는 물음을 숨기고 있다. 영화감독들은 관객에 호응하기를 기대한다. 주인공의 처절한 눈빛 속에 그러한 주문이 담겨 있다.


    언어는 대칭과 호응으로 조직된다. 비오는 날의 미끄러운 길과 등산객의 오르려는 노력이 충돌한다. 대칭이다.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부분이 대칭이다. 등산할 것인가 말것인가다. 문제와 답은 호응한다. 문제는 비오는 날의 등산하기 어려움이고 답은 그러므로 등산하지 않는다이다. 내가 호응하므로 남들도 호응하면 사건이 복제된다. 언어가 복제되면 담론이 완결된다.


    영화는 복수극이다. 악당은 사건을 저지르고 주인공은 악당을 쳐죽인다. 너도 동의하냐? 관객에게 묻는다. 관객이 동의하면 흥행한다. 동의가 복제된다. 담론의 완성이다. 이 구조가 완성되면 평론가는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말한다.


    언어는 동사로 시작된다. 대칭과 호응을 조직하려면 동사 앞에 명사, 명사 앞에 주어, 주어 앞에 전제, 전제 앞에 조건문을 던져야 한다. 전제와 진술은 대칭되고 조건문과 반복문은 호응된다. 먼저 내가 호응한 다음에 남들도 호응하게 유도하면 담론은 완성이다. 정확히 5단계다.


    ◎ 담론의 복제 : 조건문 대 반복문으로 상대방의 호응을 유도한다.
    ◎ 명제 : 전제와 진술의 대칭.
    ◎ 문장 : 주어와 술어
    ◎ 어구 : 명사와 동사
    ◎ 단어 : 동사


    언어는 원래 다 동사다. 동사의 동에다 동의 동, 동동의 동, 동동동의 동, 동동동동의 동을 이룬 것이며, 대칭과 호응을 전개하여 제 3자의 복제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문을 전파할 수 있는 구조다. 동병상련과 같다. 내가 아픈데 너도 아프냐고 묻는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해야 한다. 문장의 완전한 갖춤이라야 한다. 언어의 갖춤이 없으면 ‘누가 물어봤냐고?’가 쳐들어온다. 물어보지 않은 말을 쓸데없이 하면 불필요한 자기소개가 된다. 뻘쭘해진다.


    ‘나 아프다.’ ‘누가 물어봤냐고?’ 핀잔 들으면 창피하다. 아기는 괜찮다. ‘나 아프다.’ ‘아이고 우리 아기.’ 호응이 돌아온다. 엄마와 자식으로 묶인 관계라는 숨은 전제 때문이다. 묶여있지 않은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걸 해내는 사람은 영화감독이다. 의사나 간호사 앞이라면 무방하다. 역시 숨은 전제다. ‘너는 의사고 나는 환자다.’ 하는 전제가 숨겨져 있다.


    언어에는 항상 생략과 함축이 있으므로 줄여서 말해도 살펴서 들어야 한다. 사기꾼은 그 숨은 전제를 이용하여 낚는다. 마치 도와줄 것처럼, 마치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묶여있는 것처럼 연출한다. 그런데 사실은 묶여있지 않다. 묶여있는 관계라야만 전제를 생략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대화하는 상대는 모두 친구나 가족이나 동료나 부하나 선후배로 묶여있다. 묶여있기 때문에 전제를 생략한다. 위태로워지고 만다. 모든 거짓 지식인과 거짓 철학자는 묶여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새누리당의 구호인 ‘우리가 남이가?’ <- 묶여있다는 말이다. 남이다. 묶여있지 않다. 그러므로 위태롭다. 반드시 숨은 전제를 살펴야 한다. 전제와 진술의 대칭을 드러내고 조건문과 반복문의 호응절차를 밟아야 한다.


    깨달음은 숨은 전제를 파헤쳐서 완전한 문장, 곧 담론의 형태로 말할줄 아는 것이다. 언어에는 항상 빠져 있는 포지션이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서 빈 곳을 채우면 저절로 완전해진다. 저절로 깨달음이다. 모든 것은 명백해진다. 너와 내가 대화가 통할 수 있게 하는 숨은 관계를 들추어내는 것이다.


   aDSC01523.JPG


   어휘력이 뛰어난 사람은 이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어서 인류가 이 부분을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지식이 언어입니다. 모든 것이 언어로부터 시작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장 연구가 뒤떨어진 분야가 언어입니다. 깨달음은 그저 말을 똑바로 하는 것입니다.


[레벨:10]다원이

2016.02.12 (14:12:47)

공감합니다. 언어가 모든 사유의 근본 도구이기에, 언어를 바로잡아야 모든 것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벨:17]눈마

2016.02.13 (09:44:39)

저도 영어가 안된다고 착각한적이 있죠. 뚜렷이 자기생각을 한문장에 담자 언어가 되더군요.
[레벨:11]큰바위

2016.02.13 (11:22:25)

"글이 거시기하니 거시기하게 잘 알아먹겠소. "


이런 말은 맥락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하지만,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해 없이 일이 진행되지요. 그러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들으면 뭔 소린지 하나도 몬알아 먹는 거죠. 


언어는 항상 문화적 맥락과 때와 장소라는 맥락이 드러날 때 소통이라는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좋은 글에 감사를 표하면서 질문 하나. 


영어와 같은 언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가 분명하고, 주어가 거의 생략되는 법이 없는데, 

한국어와 같은 언어는 주어를 생략해서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황을 파악해야지요. 


영어는 저맥락 문화 언어라고 하고 한국어는 고맥락 문화라고 하는데, 

언어에 빠져 있는 포지션이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서 빈곳을 채우면 저절로 완전해 진다는 것을 한국어에서 어떻게 찾아 넣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불완전한 언어가 잘도 소통되는 것처럼 그냥 넘어가는 게 너무 많아서요. 

사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는 거의 소통의 문제고, 소통의 부재고, 먹통이라 여겨지기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지금 닭근혜 양이 최악의 사례고 해서....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13 (18:17:44)

원문에 다 이야기되어 있습니다.

꼭 신문기사 쓰듯 6하원칙에 맞추어 쓸 필요는 없습니다.


구조론은 10하원칙을 쓰지만 대화는 두 사람이 하므로 5하만 해도 됩니다.

생략해도 말은 되는데 생략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1+1=2'라고 하면 

'1'과 '1'은 '+대칭'이고 


'1+1'과 '2'는 호응입니다. 

언어는 상대방의 호응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 시는 상대방이 호응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빈 곳을 채운다는 말은 10하원칙대로 말하라는게 아니라

영화든 시든 노래든 다 호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며 


숨은 전제는 호응을 이용해서 속이는 것입니다.

영화 히말라야처럼 사기를 치는데


좋은 영화라서 (숨은 전제) 관객이 감동했다.(진술)

이걸 거꾸로 하면 '관객이 감동했으므로 좋은 영화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근데 이렇게 말을 엉터리로 하는건 글자 배운 사람은 말 안해도 다 압니다.

약장수들이 쓰는 말 '몸에 좋다'거나 종교쟁이들의 '은혜받는다'거나 


이런 말은 전제 없이 진술이 앞에 튀어나와 있는데

이런 새뀌들은 단 매에 쳐죽여야 합니다.


말도 아닌 것을 말이라고 하니 

어색하다는거 본능적으로 느끼잖아요.


제가 항상 비판하는 자기소개형 말투도 그런 겁니다.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진술해야 하는데 마치 자기 감정이 판단기준인것처럼 말합니다.


초딩도 아니고 그냥 확.

이런건 국어수업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데.


3초 만에 수준을 들키는 건데

일일이 지적하면 상대방이 모멸감을 느끼기 때문에 말하기도 거시기하고.


언어는 그저 1+1=2 정도만 해줘도 됩니다.

대칭과 호응만 넣어주면 적어도 말할줄 아는 겁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운 불역군자호


이 문장 안에 대칭과 호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호와 락호의 대칭에 군자호의 호응이 따라붙는 거지요. 


이 자체로 하나의 기승전결을 갖춘 시가 되어 있습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대칭은 있는데 호응이 없지요. 시가 아님, 일단 500방

[레벨:11]큰바위

2016.02.14 (05:54:25)

짝을 찾되 숨은 짝을 찾아라!


답글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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