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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39 vote 0 2016.02.23 (21:33:34)

     

    군자의 도는 광대하고 은미하다. 어리석은 필부라도 깨달을 수 있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깨닫지 못한다. 하찮은 필부라도 실행할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행하지 못한다. 천지가 위대해도 사람에게는 오히려 한이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에 실을 수가 없고,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에 쪼갤 수가 없다. 시경에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 오른다.’ 하였으니 그 위 아래로 살펴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도는 필부에게서 발단이 되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천지를 살펴 드러난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로 호응된다. 안다는 것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다르다. 행한다는 것과 제대로 행한다는 것은 다르다. 안다는 것은 드러난 사실을 안다는 것이요, 이는 일의 결과를 아는 것이며, 제대로 아는 것은 잠복한 원인을 아는 것이니 이는 일의 원인을 아는 것이다.


    행한다는 것은 위에서 결정된 것을 아래에서 집행하는 것이요, 제대로 행한다는 것은 반대로 세상에 큰 의혹을 던져 스스로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위가 되는 것이다. 사건의 원인측에 섬으로써 위에 오르는 것이다.


    주어져 있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묻는 것이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문제를 내는 것이다. 진리로 하여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필부에게도 진리는 해당되지만, 천하의 중심에 선 자 만이 진리를 써서 사건을 새로 조직할 수 있다. 진리라는 자동차의 운전기사가 될 수 있다. 보통은 그 자동차의 승객이나 겨우 될 뿐이다.


    공자 가로되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행하되 사람에게서 멀리 한다면 도가 될 수 없다.”

   

    신선술을 연마하는 등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불로장수를 추구하는 권력자가 방사를 시켜 은밀히 연단술을 행한다든가 하는 그런 비밀스런 것이 아니다. 도는 진시황이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도는 에너지를 조율하여 일을 새로 조직하고, 그 일의 중심을 찾고, 그 일 안에서 의사결정하고, 그 일의 기세로 치고나가며, 그 일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이다. 모든 일 안에 도가 있다. 요리사에게는 요리의 도가 있다. 전사에게는 전투의 도가 있다. 문사에게는 언어의 도가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도끼자루 맞추네, 도끼자루 맞추네. 그 법칙은 멀지 않다.’고 하였다. 도끼자루 깎는 사람이 자기 손에 쥔 도끼자루를 보고도 치수를 몰라서 흘낏 눈대중하여 보되, 오히려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를 멀리서 찾지 않으니 사람으로써 사람을 다스리다가 잘못이 고쳐지면 그만둔다. 충忠과 서恕는 도에서 어긋나지 않으니, 자기에게 베풀어지기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시경은 민중의 노동요를 수집했기에 낯 뜨거운 내용이 많다. 시경의 도끼타령은 섹스를 은유하는데 공자는 이를 미화하여 예를 갖추는 것으로 설명한다. 도를 굳이 멀리서 찾을 이유는 없다. 남녀관계에도 법칙이 있으니 또한 도가 아니겠는가? 


    남녀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인 충서忠恕에 빗댈 수 있다. 충서忠恕는 남녀의 애정과 같으니 충忠은 아랫사람이 중심을 잡는 것이며, 서恕는 윗사람이 밸런스를 아는 것이다. 섹스를 해도 밑에 있는 사람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위에 있는 사람은 밸런스를 알아야 한다. 뒤엉켜 있으면 자연히 상대방의 입장을 깨닫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보면 충서의 도에 이른다. 


    부하는 상사의 일관된 입장을 헤아려야 하고, 상사는 부하의 융통성있는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충忠이다. 위에서 결정하면 아래에서 집행한다. 부하는 급박한 사정이 있어도 되도록 이 의사결정구조를 깨지 말아야 한다. 


    옳은 결정이라고 해서 밑에서 다 결정해버리면 위는 장차 의사결정하는 능력을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옳은 일일수록 위에서 결정하도록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것이 부하의 충이다. 서恕는 반대로 상사가 현장에 나가있는 부하의 곤란한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다. 현장에는 별 일이 다 있기 때문에 부하도 상당한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을 허용해야 한다.


    상사는 부하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 자신이 왜 그러한 결정을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내막을 알려주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밑에서 멋대로 행동해서 팀워크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면 부하는 반드시 월권을 저지른다. 그러므로 상사는 불필요하게 정보를 통제하여 부하를 곤란하게 만든다. 


    서恕는 윗선에서 결정된 일의 내막을 몰라서 불안해진 부하가 흔들릴 때 그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부하가 불충해서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흔들리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도록 선제대응하여 조치해야 한다. 그것이 서恕다. 


    구조론의 깨달음 역시 멀리서 찾을 이유가 없다. 깨달음은 언어 안에 갖추어져 있다. 언어 안의 대칭과 호응을 깨달으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다. 언어에는 생략과 함축이 있으므로 사람이 말을 대충 해도 행간을 읽어서 알아듣는다. 그 행간의 빈 칸에 들어 있는 숨은 전제를 찾아서 채우면 곧 깨달음이다.


    “군자의 도가 넷인데 나는 하나도 다하지 못했다.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아버지를 섬기지 못했다. 신하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임금을 섬기지 못했다.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형을 섬기지 못했다. 


    벗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먼저 베풀지 못했다. 덕을 행하며 말을 삼가고, 부족한 바가 있으면 감히 게으르지 않으며, 남는 여유가 있으면 함부로 써버리지 않아야 한다. 말은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게 하니, 군자가 어찌 성실히지 않겠는가?”  


    공자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교의 엄격한 강령대로 산 사람도 아니었다. 공자는 충신도 아니었고 효자도 아니었다. 그다지 착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다지 품성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일평생 즐거움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전쟁을 하자고 임금을 선동한 적도 있었고, 못된 사람의 밑에 가서 벼슬하려 한 적도 있었고, 유명한 미녀와 회견한 적도 있었다.


    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가르침의 사이즈가 커서 일이 점점 커진 것이다. 공자는 그저 벼슬하려 했을 뿐이나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지자 벼슬이나 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공자가 큰 가르침을 펼치니 큰 가르침이 공자를 규율한 것이다. 공자가 바른 말을 하니 바른 말이 공자를 바르게 구속한 것이다. 성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군자는 그 바탕되는 자리에 따라 행할 뿐이요, 그 밖을 바라지 않는다. 부귀를 만나면 부귀를 행하고, 빈천을 만나면 빈천을 행하고, 이방민족을 만나면 이방민족으로 행하고, 환난을 만나면 환난을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서 얻지 못하는 데가 없다.


    윗자리에서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랫자리에서는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으면 곧 원망이 없으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변화에 호응하여 천명의 흐름을 타고, 소인은 위험하게 행동하며 요행수를 바란다.

   

    ‘거이이사명居易以俟命’이 의미심장하다. 군자는 천명을 읽어 변화에 호응한다. 군자는 어떤 고정된 강령을 따르는게 아니라 일의 흐름에 맞게 행동한다. 이는 악기의 연주자가 빠른 대목에서 빨라주고, 느린 대목에서 느려주는 것과 같다. 일의 기승전결에 따라 각각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기의 단계에서는 사람을 광장에 흩어 군중의 에너지를 얻고, 승의 단계에서는 사람을 한 곳에 모아서 지휘권을 얻고, 전의 단계에서는 의사결정하여 밀당을 끝내고 선택된 하나를 밀어주며, 결 단계에서는 일의 흐름대로 순풍에 돛 달고 가는 것이다. 군자는 어느 단계든 그 상황에 맞는 대응방법이 있으므로 원망할 일도 없고 탓할 일도 없다. 일이 성공하면 이를 복제하여 널리 퍼뜨리면 되고, 일이 실패하면 물러나서 책을 저술하고 제자를 키우는 방법으로 장기전을 하면 된다.


    공자 가로되
    “활쏘기는 군자의 반성과 비슷하니 정곡을 명중하지 못하면 그 어긋남에서 돌이켜 그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사격의 영점잡기와 같다. 표적지에 탄착군이 형성되었는지를 보고 가늠자를 조정하여 명중하게 한다. 빗나감을 보고 정곡을 맞출 수 있다. 포병은 1탄을 쏘고 다음 2탄을 쏘아서 그 포탄이 떨어진 자리의 간격을 보고 3탄을 명중시킨다.


    군자의 도를 비유하면, 멀리 갈려면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함과 같고, 높이 점프하려면 몸을 낮추어 움츠리는 것과 같다. 시경에 이르기를 ‘처자의 화합이 거문고를 타는 듯하고 형제가 뭉쳐서 기쁘고 즐겁도다.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여 네 처자를 즐겁게 하라.’고 하였는 바 공자 가로되 ‘부모는 안녕하리라.’ 했다.   


    먼 길을 가려면 일단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족과 작별해야 한다. 그 전에 체력단련부터 해야 한다. 벼슬이 높이 올라가려면 남들이 트집잡지 않도록 주변을 잘 챙겨서 허물을 없애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부인과 형제와 자식의 비리도 털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해두어야 한다. 이 대목은 노자의 도덕경과 가깝다. 질투하고 헐뜯는 사람이 많은 중국적 환경에서의 중국인다운 처세술이라 하겠다.


    군자의 도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팀플레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보면 그다지 아름답지가 않다.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군자상이라면 먼저 팀워크를 다지는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강할수록 자신도 강해야 한다. 목적하는 표적만 쳐다보지 말고 그 표적의 변화에 맞서 자신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큰 일은 중도에 변하는 일이며 그러므로 중간에 몇 번씩 계획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먼저 자기자신을 그러한 변화에 강한 사람으로 단련시켜야 한다.



aDSC01523.JPG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2.23 (23:36:54)

맨 처음이 정말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안다는 것은 드러난 결과를 아는 것, 제대로 아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원인을 아는 것. 

그래서 제대로 아는 것이 어렵다. 보이지 않는 원인측을 이야기하는 구조론이 이렇게 얽히는 군요.


행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 아이히만.

제대로 행하는 것은 세상에 물음을 던지는 것. 이렇게 유태인을 죽여서 되는 것인가? 


-------------


제가 읽은 책에서는

도가 멀지 않다는 것은 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멀리 떨어뜨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 


이어지는 도끼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끼자루를 새로 만들려고 도끼로 나무를 다듬는데

2. 도끼자루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는 바로 그 나무를 다듬는 도끼의 자루를 보면 된다는 것. 

즉 위의 도가 멀지 않다는 말을 다시 이야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24 (00:42:32)

참고해서 수정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2.24 (12:46:49)

날개단듯 달리시는 글쓰기를 괜히 뒤에서 잡아끌었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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